▲귀향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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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한국영화의 자세
영화, 특히 한국 독립영화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는 데 있어 적잖은 역할을 담당했다. 대표적인 것이 1997년 발표된 변영주의 <낮은 목소리 2>가 되겠다. 1993년 작 <아시아에서 여성으로 산다는 것>에 이은 연작으로, 할머니들의 진술과 그들의 현재를 가까이서 다뤄내 한국과 일본 양국에서 상당한 파급을 일으켰다. 특히 여성계를 중심으로 영화를 대중 일반에 소개해야 한다는 운동이 일어나 한국 다큐멘터리 가운데 처음으로 일반극장 개봉에 이른 점도 기록할 만하다.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다룬 적잖은 영화가 한국은 물론 세계 독립영화계에서 꾸준히 제작돼 왔다. 도이 도시쿠니의 <기억과 산다>, 박수남의 <침묵>, 미키 데자키의 <주전장>, 송원근의 <김복동>, 이석재의 <코코순이>, 최예린의 <할머니를 만나는 날> 등이 서로 다른 시각에서 위안부 문제를 대하는 다큐멘터리들이다.
극영화도 없지 않다. 2017년 김현석의 <아이 캔 스피크>, 2018년 민규동의 <허스토리> 등이 위안부 문제와 그 공론화 및 법적 다툼 과정을 극화해 대중 앞에 선보인 작품들이다. 그리고 이에 앞서 시민 모금으로 제작돼 화제가 된 작품이 한 편 더 있으니 바로 조정래의 <귀향>이다.
2016년 2월 개봉해 독립영화로선 드물게 358만 명을 모은 이 영화는 바로 전 해 있었던 박근혜 정부와 아베 신조 내각 간 '한일 위안부 합의'로 어느 때보다 들끓었던 국민적 공분 속에서 대중의 발길을 극장으로 이끌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최종적이며 불가역적으로 종결되었음을 선포한 이 합의는 정작 피해 당사자들을 배제하고 이뤄졌다는 점에서 비판받았다. 불과 합의 두 달 뒤 개봉한 <귀향>이 이와 맞물린 관심을 받은 건 자연스러운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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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돌아온 '귀향', 이유는?
시민 모금으로 제작된 <귀향>의 흥행은 얼마쯤 예고된 것이었으나 동시에 상당히 놀랍기도 했다. 티켓 구매 및 대관 응원 열풍이 잇따르며 사회운동으로의 영화 배급 및 상영이 여전히 유효하단 사실을 입증해냈던 것이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일본의 역사왜곡, 전쟁범죄 등에 대해 널리 알려져 있음에도 불구하고 극영화로 만들어 흥행한 사례가 그리 많다고는 할 수 없던 한국 영화산업 가운데서 이와 같은 작품의 성공은 이후 <아이 캔 스피크>와 <허스토리>로 이어지는 비슷한 소재를 가진 작품의 제작으로 이어지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할 수 있겠다.
<귀향>이 개봉한 지 꼭 10년이 된 올해, 광복절이 있는 8월을 맞아 확장판이 새로이 공개돼 관객과 만난다는 소식이다.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로, 본편에는 없는 약 6분가량의 편집분을 덧붙인 러닝타임 132분짜리 본이다. 영화 전체로 보았을 땐 사실상 동일한 내용이어서 감독판이라고 부르기도 어려운 것이지만, 한국뿐 아니라 일본군 위안부 강제동원으로 고통 받은 다른 아시아권 피해자의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삽입해 사회적 의미를 추가했다고 전한다.
사실상 재개봉에 가까운 확장판 개봉은 난처한 상황에 처해 있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새롭게 관심의 불씨를 지피려는 운동적 목적을 염두에 둔 작업으로 보인다. 올해 3월 또 한 분 할머니가 돌아가시며 생존한 피해자는 이제 다섯 명 뿐인 상황이다. 2015년의 정권 차원의 합의로 결성된 화해·치유재단은 3년 만에 해산이 결정됐고 피해자들에 대한 배상금 지급 또한 그대로 멈춰버리고 말았다. 속절없이 시간만 흐르는 가운데 한국과 일본을 둘러싼 복잡한 국제정세며 군사와 경제 등의 사안까지 얽혀들며 위안부 문제의 해법은 더욱 요원해져 보이는 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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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은 돌아오지 못했으나
<귀향>은 어떤 영화인가. 영화는 태평양 전쟁이 한창이던 1943년, 경상남도 거창군에 사는 순박한 소녀 정민(강하나 분)과 그 부모의 행복한 일상을 비추는 것으로 문을 연다. 아는 세상이라곤 거창에서도 시골마을인 한디기골이 전부인 이 소녀를 어느 날 갑자기 들이닥친 일본군이 끌고간다. 그로부터 예고된 비극, 위안부 성노예의 고난길이 열리게 되는 것이다.
정민 뿐 아니라 전국 각지에서 끌려온 고작 십대 중후반인 소녀들이 기차에 실려 만주 어느 곳에 내리고, 관동군 위안소에 배치돼 현지 일본군의 욕구를 푸는 성노예로 착취당하는 과정이 참담하기 그지없다. 희망이라곤 보이지 않는 삶 가운데서도 서로를 보듬으려는 소녀들의 모습과 영화가 제목으로 빼어단 '귀향'까지의 막막함 사이를 메우는 것이 쉽지 않은 일이다.
한편으로 영화는 1990년대 노년이 된 영옥(손숙 분)을 주인공으로 한 시점을 두고, 이를 과거의 고통스런 역사와 교차편집해 이야기를 풀어간다. 동사무소에서 위안부 피해자 신고를 받던 때로, 이제 막 위안부 문제가 공론화되기 시작한 당시의 상황 또한 자연스레 드러난다.
영옥은 앞선 시점의 주인공인 정민과 함께 위안부로 끌려간 아픈 기억을 갖고 있다. 영화는 그녀가 알고 지내는 무녀(황화순 분)를 찾아 아픈 기억을 가진 이들의 한을 풀어주는 굿을 하는 과정을 담아낸다. 요컨대 과거의 치유되지 못한 상처를 굿으로나마 씻어주는 것이다. 돌아오지 못한 몸 대신 혼이라도 불러와 '귀향'을 이루는 게 이 영화의 서사가 되겠다.
▲귀향: 언니야 이제 집에 가자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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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의 명과 암, 그 귀환에 주목하며
<귀향>이 영화적 미학을 구현하거나 표현과 서사에 있어 탁월한 작품이라고는 말할 수 없겠다. 앞선 줄거리와 설정만으로도 예상할 수 있듯,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은 전형 중에서도 전형이라 할 만큼 진부하고 표현 또한 아쉬움을 넘어 나태한 지점이 여럿 있는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고통을 보여주기 위해 잔혹한 상흔을 그대로 재연할 필요가 있는가'하는 윤리적 문제를 거의 고민하지 않은 듯 반복된 강제적 성관계 묘사 등을 자극적으로 연출한 지점 등은 비판의 소지가 있다고 여긴다.
일제 순사나 1943년의 마을, 관동군과 독립군으로 추정되는 집단의 묘사 등에 있어서도 고증을 사실상 도외시한 선택이 아쉬움을 더한다. 관객을 묶어내고 부추기는 작품을 넘어 시간이 흘러도 그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는 작품으로 남기 위해 매체적 훌륭함을 구할 필요가 있었다면 더 좋지 않았을까 싶다.
그럼에도 <귀향>이 의미 있는 작품이란 건 분명하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가 사회적 사안으로 떠오른 뒤 30여년이 흘러 생존자 대부분이 사망하는 오늘에 이르기까지 한국 영화가 이를 얼마나 다루었는지만 생각해보아도 그 사실이 명확해진다. 그 완성도와는 별개로 비추고 다루어내는 시도만으로도 시각과 자세는 변화하고 나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생기는 것이다.
<귀향>의 성공 이후 <아이 캔 스피크>와 <허스토리> 같이 상업영화계에서 주목할 만한 작품이 나온 것도 의미 있는 지점이다. 제작비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시민모금까지 해서 만들어진 이와 같은 사례는 영화란 매체가 대중에 미칠 수 있는 파급과 그 필요에 대한 갈증을 느끼도록 한다. 영화가 사회에 미칠 수 있는 영향과 그를 가능케 할 수 있는 역량이 있다면, 그에 따른 책임 또한 있는 것이다. '오늘의 한국 영화는 그 책임을 다 하고 있는가' 묻고 싶은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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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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