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회사 그만두고 산으로 간 아들, 아버지가 한 선택

[극장가는 길] 극단 손수 <사랑입니까?>

26.08.10 13:23최종업데이트26.08.10 13:23
원고료로 응원
연재 "극장가는 길"은 어둠이 번지는 저녁, 극장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객석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며 교차하는 숨소리, 조명기 점멸,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세계 변화의 순간을 길어내고 이를 기록한다. 나는 지역의 연극과 축제의 현장을 묵묵히 걷고 보면서 그 무대의 잔상과 스쳐간 감정과에 대해 적으며 동시대적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기자말]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가 공연된 소극장 마당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가 공연된 소극장 마당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가 공연된 소극장 마당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가 공연된 소극장 마당조훈성

'소극장마당'에서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가 무대에 올랐다. 제목만 보고 가족애를 확인하고 화해에 이르는 작품일 거라 미리 짐작했다. 그러나 이 연극은 '사랑이 무엇인가'라는 낭만적 질문이 아니라 너무 쉽게 '사랑'이란 단어를 말해왔다고, 그리고 그 말은 상대를 향한 공감과 이해가 아니라 단정과 단절의 언어였다고 말하고 있다. 이 작품은 2012년 월드2인극 페스티벌 대상작인데, 오늘 이 연극 역시 단 두 인물,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를 통해 가장 친밀한 가족관계 안에서 벌어지는 소통과 감정 표현의 실패를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다.

이야기는 무난히 사회생활을 하던 서른두 살의 아들 강용진(지민기 연기)이 갑자기 어느 날 모든 인연을 끊고 산으로 들어가면서 시작한다. 그는 텐트 하나에 의지해 자연 속에서 홀로 살아가는데, 아버지 강만열(김용우 연기)은 아들의 사진 한 장을 들고 전국의 산을 헤매다가 마침내 아들이 머무는 산속에서 부자 상봉을 한다. 우연한 듯 필연적인 대면에서 부자는 서로 다른 삶의 방식과 세계관을 드러내며 갈등하게 된다.

아버지 강만열의 입장에서는 아들의 산행은 '도피'이며 망가지고 낙오된 삶이다. 안정된 직장과 사회적 관계를 버리고 산속에서 홀로 살아가는 아들의 삶은, 아버지가 믿어온 정상성의 보편적 질서에서 벗어난 선택이기 때문이다. 반면 아들에게 도시는 자신을 규정하고 소비하며 길들이는 공간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그가 선택한 산속의 자연인의 삶은 무책임한 이탈이 아니라, 타인의 시선과 사회적 역할로부터 거리를 두려는 절박한 탈주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아들은 사회가 요구하는 삶의 궤도에서 잠시일 수도 있고, 어쩌면 영원히 기존 사회에서 벗어나 이탈함으로써, 비로소 '자신'의 정체성을 제대로 찾을 수 있을 것이라 여긴다.

노마드적 삶에 대한

연극에서 말하는 '노마드'의 의미는 단순히 정처 없이 떠도는 사람이라는 사전적 정의에 머무르지 않는다. 노마드적 삶은 고정된 사회정체성, 즉 일정 거주지, 안정된 직업, 사회적 관계의 일반화된 규범을 거부하고 주체적 선택에 의한 이동과 변화 속에서 자기를 스스로 구성하려는 태도라 말할 수 있다. 아들의 텐트는 집을 잃은 사람의 임시 거처가 아니라, 어디에도 완전히 귀속되지 않겠다는 존재 주체의 선언이기도 하다. 그에게 산은 문명 이전의 순수한 낙원이나 도망자가 숨은 도피처가 아니라 사회가 정한 성공과 실패의 규정에서 벗어날 수 있는 최소한의 거리가 있는 사회 밖 자연이다.

하지만 〈사랑입니까?〉는 아들 강용진의 노마드적 선택을 섣불리 낭만화하지도 않는다. 사회와의 절연이 곧 자유를 보장하는 것은 아니며, 산 속의 고립이 해방을 뜻하지도 않는다. 아들의 삶은 제도와 규범을 벗어나 스스로 바로 서고자 하는 실험인 동시에, 타인과의 관계를 견디지 못한 상처의 결과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극중 '노마드'와 '건달'의 어원 및 의미 변화를 둘러싼 대목은 이 문제를 환기한다. 한때 자유로운 이동성이나 비정주성을 지시하던 말은 사회적 질서 안에서 무위(無爲)의 무책임, 낙오와 일탈의 낙인으로 변질되기 때문이다. 작품은 바로 그 언어의 변화를 통해, 누가 누구를 정상과 비정상의 경계 밖으로 밀어내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자크 아탈리'의 <호모 노마드, 유목하는 인간>(웅진지식하우스, 2005)에서는 인간을 본래 이동하며 경계를 넘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온 존재로 바라본다. 여기서 유목성은 특정 유목 집단의 생활양식만이 아니라, 정주 중심 사회의 주변부에서 이동과 변화를 통해 살아가는 인간의 역사적 조건을 말하며, 유목이냐 정주냐의 이분법이 아니라 다양한 경향을 지적하고 있다. 그래서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드, 즉 앞서의 인간 유형이나 라이프스타일의 이름이라기보다 사유와 삶의 운동 방식으로서의 '노마드'와 차이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사랑입니까?>에서 '강용진'의 노마드적 삶은 한곳에 머무르지 않는 물리적 이동이 아니라, 자신을 규정해 온 가치와 관계의 배치에서 벗어나 다른 삶을 시도하는 운동으로 봐야 하는 것일까?

극중 '강용진'이 산으로 들어가는 행위는 '유목성'의 경향이라기보다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노마드, '탈영토화'로 읽어야 할 것 같다. 아버지가 말하는 정상성과 일반성의 범주, 다시 말해, 직장·가족·사회적 성공·가장으로서의 역할처럼 한 사람을 안정적으로 묶어 두는 삶의 질서라는 영토를 떠나 텐트라는 임시적 거처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그러자면 아들의 새로운 '재영토화'가 뒤따라야 하는데, 이전의 삶의 틀을 벗어났다면 그 자리에 새로운 관계·습관·공동체·창조적 실천이 구성되어야 한다는 말이기도 하다. 하지만 극중 아들의 텐트는 자유로운 노마드의 기지가 될 수도 있지만, 관계가 완전히 끊긴 채 자기 안으로만 침잠하는 고립의 장소로만 보여진다. 이는 산으로 떠나는 것만으로는 노마드적 삶이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을 말한다.

은둔, 그 고립과 소외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공연이미지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공연이미지조훈성

<사랑입니까?>에서 우리가 놓쳐서는 안 되는 부분이 바로 이러한 고립과 소외의 역설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극중 아들은 '노마드' 보다는 '은둔'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모든 사회적 접속을 끊어 자기 안에 폐쇄되면서 도시의 억압적 관계에서 벗어난다. 아버지와의 관계에서도 오직 단절과 거부의 언어를 반복하고 있다.

그래서 그는 정착 사회가 요구하는 규범을 벗어나지만, 앞서 말한 '재영토화'로 나아가지 못하고 아직까지는 타인과 함께 살아갈 새로운 관계 윤리를 세우지는 못한다. 따라서 그의 고립은 사회에 적응하지 못한 한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가중시켜 왔던 개인에 대한 압력이 더 도드라지게 부각될 수밖에 없다. 이제 현 사회는 이전보다 더 끊임없이 유연하게 이동 가능하게 하며 자기계발하는 인간을 요구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안정된 직업·가족·소득 등을 갖는 정주적 개인을 정상적 관계로 말하고 있다.

이러한 상반된 요구 속에서 각각의 개인 가운데 누구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못하고, 자유를 찾아 이동하다가 오히려 소외될 수 있다는 것이다. 극중 부자간의 대화 속에서 우리는 바로 이 공동체에 안정적으로 소속되지 못하는 이동에서 그 고립과 소외를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이 연극의 파탄의 정점은 '탈주선'이라 할 수 있는 억압적인 질서에서 빠져나가는 아들의 도피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가능성이 아버지의 충격적 '음독 자살'이라는 장면으로서 극적으로 파괴되고 소멸되는 마지막 종반부에 있다. 연극에서 이러한 아버지의 자살은 단지 극적 충격을 위한 사건이 아니라 부자 모두가 새로운 관계를 구성하는 데 실패했음을 보여주는 비극적 표지일 수밖에 없다. 아들은 기존의 가족 질서에서 탈주했으나 새로운 관계의 장을 열지 못했고, 아버지는 아들을 되돌려 놓으려 했으나 아들의 낯선 존재 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한 사람의 '떠남'과 다른 한 사람의 '붙잡음'은 모두 상대와 연결되는 길을 잃은 채, 마침내 죽음과 상실이라는 파국으로 끝나게 된다.

<사랑입니까?>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대화는 겉으로는 유쾌하고 따뜻한 리듬을 갖고 있다. 자식을 걱정하는 아버지의 잔소리에는 생활인의 익살과 애정이 묻어나고, 아들은 그 잔소리를 참견으로 받아치며 자신의 삶을 고집한다. 그러나 웃음의 표면 아래에는 좀처럼 메워지지 않는 균열이 있다. 아버지는 사랑하기 때문에 돌아오라고 말하지만, 아들은 그 사랑이 결국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는 방식이라고 느낀다. 아들은 이해받기를 바라지만, 자신의 선택이 아버지에게 남긴 소외와 상실을 충분히 들여다보지 못한다. 두 사람은 서로를 위한다고 말하면서도 각자의 방식만을 고집한다. 이해하려하기보다 설득하려 하고, 대화하기보다 상대의 삶을 결정짓기 급급하다.

비극은 사랑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연출은 이러한 관계의 충돌을 과도하게 감상적으로 봉합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쾌함과 따뜻함 뒤에 사회적 풍자 의식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가장 가까운 관계이지만 정작 서로의 내면을 알지 못한 채, 책임과 기대의 언어만 주고받기 쉽다는 것을 이들의 첨예한 갈등을 통해 선명하게 보여준다. 아버지의 '너를 위해서'와 아들의 '나를 내버려 둬'가 끝내 만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의 비극은 사랑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아버지의 '너를 위해서'와 아들의 '나를 내버려 둬'가 끝내 만날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작품의 비극은 사랑이 없어서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사랑을 표현하고 받아들이는 방법을 찾지 못하기 때문이다.

극의 종반부에서 아버지의 음독으로 이어지는 파국은 다소 낯설고 급격하게 다가올 수 있다. 한 시간 남짓한 공연 안에서 축적된 갈등이 극단적 결말로 수렴하는 과정은 관객에게 충분한 정서적 완충의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러한 충격적인 결말은 화해의 가능성을 쉽게 허락하지 않겠다는 작품의 태도를 여실히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끝까지 화해할 수 없는 관계의 평행선을 달리는 두 사람의 대화를 우리는 객석에서 그대로 목도했기 때문에 아버지가 아들의 눈앞에서 생을 끊고, 아들이 다시 지하철역의 평범한 직장인으로 돌아와 "사랑입니까?"라고 독백하는 마지막 장면은 특히 씁쓸할 수밖에 없다. 아들은 결국 자신이 벗어나려 했던 세계로 돌아왔고, "사랑입니까?"의 질문은 관객에게 그대로 넘겨진다.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 커튼콜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 커튼콜조훈성
강만열 역의 김용우 배우와 강용진 역의 지민기 배우는 서로 다른 각자의 삶의 온도를 자연스럽게 맞물리게 한다. 아버지의 역을 맡은 김용우는 아들을 향한 애정과 답답함, 생활인의 현실감을 안정적으로 구현하며 아버지의 복합적인 감정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지민기 배우는 도시의 규범에서 벗어나려는 아들의 낯선 기질과 노마드적 태도를 무리 없이 드러낸다.

두 배우의 호흡은 전반적으로 자연스럽지만, 일부 장면에서는 대사 전달이나 동선이 더 섬세하게 조율되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인물 간 긴장과 감정의 층위가 중요한 작품인 만큼 거듭 상연될수록 그 호흡의 깊이가 달라질 수 있을 듯하다. 산속 솔로캠핑의 공간을 구현한 무대디자인은 청년의 고립과 자족, 불안정한 자유를 소극장이라는 공간적 제약에서 효과적으로 시각화한다.

'당신'이 떠올랐고, 지금 '나'는 또 어디에 있는지

〈사랑입니까?〉는 산으로 떠난 아들을 되돌려 세우는 이야기라기보다, 한 사람이 자신의 삶을 선택할 권리와 그 선택을 견디지 못하는 가족의 불안을 함께 바라보는 작품이다. 아들의 노마드적 삶은 사회를 떠나기 위한 선택이지만, 결국 그가 떠날 수 없는 관계의 문제를 더 선명하게 드러낸다. 사랑은 상대를 내 곁에 붙잡아 두는 일이 아니라, 그가 선택한 낯선 삶을 이해하기 위해 잠시 자신의 바람과 집착을 내려놓는 데서 시작될지도 모른다.

마지막에 남는 "사랑입니까?"라는 질문은 그래서 사랑의 고백이 아니라, 끝내 서로에게 닿지 못한 사람들이 남긴 가장 아픈 물음이기도 한다. 아들의 산행은 기존 질서로부터의 탈주라고 할 수 있지만 새로운 관계와 삶의 가능성이 만들어내지 못한다면 이는 고립과 소외, 나아가 파국의 도화선이 될 수도 있음이다. 예술을 한다는 이에게 스스로 또 아픈 연극일 수도 있다. 문득, 지금은 곁에 없는 '당신'이 떠올랐고, 지금 '나'는 또 어디에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공연 포스터
극단 손수의 <사랑입니까?>(김나정 작, 윤민훈 연출)공연 포스터조훈성

극단 손수 〈사랑입니까?〉
2026.8.5.~8.9. 소극장마당

작_김나정
연출_윤민훈
출연_김용우 · 지민기

극단손수 윤민훈 김나정 노마드 사랑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