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KBO리그 NC 다이노스와 두산 베어스의 경기가 폭염으로 취소된 4일 서울 송파구 잠실야구장 모습. 서울과 광주에 폭염중대경보를 발효함에 따라 KBO는 NC 다이노스-두산 베어스(서울 잠실구장), kt wiz-KIA 타이거즈(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의 경기 취소를 결정했다. 2026.8.4
연합뉴스
여름 들어 대한민국을 강타한 기록적 폭염이 지속되며 프로 스포츠 운영에도 비상이 걸렸다. 프로야구는 사상 처음으로 이틀간 1, 2군 전 경기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이로써 올 시즌 폭염으로 인한 프로야구 취소 경기는 8월에만 15경기까지 늘어나며, 2024년(4경기)의 전체 기록을 벌써 3배 이상 뛰어넘는 역대 최다 기록을 또다시 경신했다.
한국야구위원회(KBO)는 5일과 6일 전국 5개 구장에서 열릴 예정이던 프로야구 10경기를 모두 폭염으로 취소한다고 발표했다. KBO는 5일 "전국적으로 폭염이 지속되면서 관람객 및 선수단의 안전 위험 상황이 발생함에 따라 이를 엄중하게 인식하고 구단 단장 및 프로야구 선수협회 관계자들이 참석하는 긴급 실행위원회를 6일 개최한다"고 밝혔다. KBO는 관중과 선수단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폭염 관련 종합 운영 방침과 안전 대책을 논의하겠다는 방침이다.
8월들어 폭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전국이 들끓는 가마솥을 방불케하자 KBO 사무국은 이미 지난 1일 폭염 대응을 위한 경기 운영 세칙을 발표한 바 있다. 가장 심각한 단계인 폭염중대경보가 발효될 경우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경기를 오후 1시 이전에 취소하기로 했다. 폭염중대경보는 일 최고 체감온도 35도 이상이 이틀 이상 관측된 지역에서 최고 체감온도가 38도 이상이거나 최고기온이 39도 이상 상황이 예상되면 발령된다. 이 조치에 따라 4일 예정됐던 NC 다이노스-두산 베어스(서울 잠실구장), kt wiz-KIA 타이거즈(광주 기아챔피언스필드) 경기가 취소됐다.
하지만 KBO의 조치가 무색하게 취소되지 않은 경기에서는 바로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4일 인천에서 벌어진 SSG 랜더스와 LG 트윈스 경기에선 다수의 관중들이 온열질환 의심 증상을 보여 치료를 받았다. 특히 의식을 잃을 정도로 증세가 심했던 2명은 병원으로 긴급 이송됐다. 응급환자 대처 과정에서 경기가 약 9분간 중단되기도 했다. 폭염중대경보가 현장의 안전을 보장하는 최소한의 기준이 되지 못한다는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난 장면이었다. 결국 KBO 사무국은 기존 메뉴얼을 하루만에 백지화하고, 안전을 우선순위로 하여 폭염 대책을 원점에서 전면적으로 재검토하기로 결정했다.
축구장도 안전지대 아냐... 폭염, 경기력과 부상에 영향 줄 수도
프로축구 K리그는 아직까지 폭염 취소 경기는 나오지 않았지만 사고에 대한 우려는 마찬가지다. 지난 7월 22일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서울과 포항의 경기 도중 서울 홈 서포터석에서 한 관중이 쓰러져 경기가 잠시 중단되기도 했다. 다행히 해당 팬은 곧 의식을 되찾은 것으로 알려졌지만 K리그 경기장도 폭염 리스크의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것을 보여준다.
최근 경기장에선 온열 질환 의심 증세를 보이며 치료를 받는 관중들이 늘고 있다. 폭염 속에 90분간 그라운드를 뛰어다녀야 하는 선수들은 더 힘들다. 더위도 더위지만, 폭염 여파로 그라운드의 잔디 상태가 나빠지면서 경기력과 선수 부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점도 고민거리다.
이에 한국프로축구연맹은 혹서기 무더위 대비 차원에서 5월 말부터 9월까지 킥오프 시간을 오후 7시 이후로 늦췄고, 경기 중에는 전·후반에 잠시 경기를 중단시키고 선수들이 수분을 섭취할 수 있는 쿨링브레이크 규정도 실시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선 경기 시간을 더 늦추거나 폭염이 심각할 경우에는 취소할 수 있게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프로축구 대회 요강 제16조에 따르면 '강설, 강우, 폭염 등 악천후로 경기 개최가 불가능하면 시간 연기나 중지가 가능하다'는 규정을 두고 있지만, 실제로 프로 경기에서 실시된 경우는 드물다.
미국이나 일본 스포츠의 경우 폭염에 따른 취소 규정은 없다. 미국 메이저리그에서는 40도가 넘는 더위 속에서 경기를 소화한 사례가 빈번하다. 하지만 시설과 인프라 면에서는 한국과 수준 차이가 크기 때문에 직접적인 비교는 어렵다. 텍사스, 휴스턴, 애리조나, 마이애미 등 더위가 강한 지역의 프로 구단들은 개폐식 및 지붕형 돔구장을 갖추어 기후 문제를 해결한다. 또한 일본 NPB은 12개 구단 중 절반에 이르는 6개 구단이 돔구장 또는 개폐형 구장을 홈으로 사용하고 있어서 사실상 실내 스포츠에 가까운 만큼 혹서기 브레이크 필요성이 상대적으로 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더위 때문에 탈진하거나 어지러움증 등을 호소하는 선수, 관중들이 점점 늘어나면서 폭염 대비 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심지어 유럽 27개국에서는 지난 6월 22일~28일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누적 1만 명을 넘기면서 전역에 비상이 걸렸다.
최근 막을 내린 북중미월드컵에서는 전후반 한 번씩 선수들이 수분을 섭취하게 하는 하이드레이션 브레이크가 본격적으로 도입됐다. 일본 고시엔(일본 고교야구 전국대회)은 한여름 야외에서 경기를 강행하는 전통으로 유명했으나 최근 폭염으로 심각한 안전 문제가 제기되자, 경기 시간대를 아침과 저녁으로 나누어 진행하는 '2부제'를 도입하거나 결승전 시간을 오전으로 앞당기고 '7이닝제' 도입까지 검토하는 등 다양한 대책 마련에 나섰다.
'혹서기 브레이크'·'춘추제' 현실에 맞지 않다? 환경 변화 고려해야
일각에서는 국내에서도 달라진 기후환경에 맞춰 폭염 취소만이 아닌 '혹서기 브레이크' 전면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최근 기후 변화로 인하여 매년 7월 말에서 8월 초·중순까지는 폭염이 정점에 달하는 추세다. 프로야구는 기존에 '올스타전 휴식기'가 있지만, 기간이 너무 짧고 개최 시기상 폭염 대비와 체력 회복에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높았다. 차라리 폭염이 절정에 달하는 8월 초에 맞춰 1주 내외의 올스톱 여름 휴식기를 따로 두고, 9월 이후에 월요일 경기나 더블헤더 실시를 통하여 잔여 일정을 소화하는 방안도 검토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K리그는 아예 현행 춘추제 대신 '추춘제' 도입 여부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가을에 시즌을 개막하여 다음해 봄에 끝나는 추춘제는 유럽을 비롯한 해외축구에서 보편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추세다. 바로 한국과 기후과 비슷한 이웃나라 일본 J리그도 올해부터 추춘제로 변경할 예정이라는 것은 한국 축구가 참고할만한 대목이다.
프로축구연맹은 2024년에도 K리그 추춘제 전환 검토 공청회를 열었지만 '겨울 축구'의 위험성 등으로 인하여 "추춘제는 한국 실정과 맞지 않는다"는 반대 의견도 많았다. 하지만 기록적인 더위 앞에서 축구계 여론도 조금씩 달라지고 있다. 물론 폭염 하나 때문만은 아니고, 선수 이적 시장이나 국제축구 일정 동기화 등 글로벌 스탠다드에서도 추춘제가 더 유리한 게 사실이기 때문이다.
이제 기후 문제는 더 이상 멀리 있는 이야기가 아니다. 과거에는 더위나 추위 같은 날씨 변수도 스포츠에서 어느 정도 극복해야 할 도전으로 인식됐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스포츠도 건강과 안전이 우선이라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 현재의 폭염은 인간이 감수할 수 있는 한계를 넘어 스포츠의 경기력과 생존 방식을 흔드는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지금 이 순간도 뜨거운 폭염 아래 수많은 선수, 관중, 관계자들의 안전이 위협 받고 있다. 보다 안전한 스포츠를 만들기 위한 새로운 시스템 확립이 절실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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