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뮤지컬 <매드해터: 미친 모자장수 이야기> 공연 사진
홍컴퍼니
세상에 균열 낸 노아의 행진
열심히 일해서 실크로 된 탑햇을 쓰고 런던에 살겠다고 다짐하던 노아는 사람들이 사회에서 탈락해 거리로 내몰리는 모습을 목격한다. 자신에게 일을 가르쳐주던 선배 노동자가 직업병으로 고생하다 거리에서 쓰러져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제 노아의 바람은 그럴 듯한 모자를 쓰는 것에 머무를 수 없다.
노아는 쓸모없다며 버림받은 사람들과 함께, 쓸모없는 사람들을 위한 모자를 만들고자 한다. 그 모자는 대량 생산된 탑햇이 아니라, 사람들의 필요와 각자의 사연을 반영한 '세상에서 하나뿐인' 모자다. 이제 노아는 사람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모자를 만들고, 쓰고 행진하며, 판매한다(극 중에서 이 이야기는 현실과 환상의 경계를 오간다. 경계를 파악하는 건 관객 각자의 몫이다).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는 자본주의 사회가 인간의 욕망을 특정한 방식으로 유도하고, 끝내 특정한 틀 안에 가둔다고 주장했다. <매드해터> 속 사람들이 탑햇을 원하고, 또 탑햇으로 돈을 버는 세태는 들뢰즈와 가타리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된다.
이런 세상에 균열을 내는 건 노아 같은 사람들이다. 자본주의 사회가 허락하고 장려하는 욕망의 틀에서 벗어나, 새로운 욕망을 쫓고 마음껏 돌아다니는 노아의 '저항'이 헥터의 세상에 균열을 냈다(들뢰즈와 가타리는 이를 '노마디즘'이라고 명명했다).
하지만 <매드해터>는 마냥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지 않는다. 헥터의 세상에 분명 균열이 생겼지만, 노아에게도 분명 상처가 생겼다. 모자를 만들고 쓰고 행진하던 노아의 동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버렸다. 세상 사람들은 노아를 향해 미쳤다며 손가락질했다. 그런데 노아는 노래를 하고 춤을 춘다. 노아는 무엇을 향해 춤을 추었는가, 지문에는 이렇게 적혀있다.
"어둠이 노아를 삼킨다. 노아는 (···) 자신의 자유를 지키기 위해 햇볕을 따라 자리를 옮기는 춤을 춘다."
왜 하필 노아는 모자를 택했을까, 극의 말미에 노아의 친구 조슬린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굴뚝 청소에서 해고된 소년에겐 이게 런던에서 살 수 있는 유일한 가능성이었거든."
▲뮤지컬 <매드해터: 미친 모자장수 이야기> 공연 사진
홍컴퍼니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공유하기
열네 살 소년은 왜 모자 쓰고 춤추며 행진했나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