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여름> 스틸
시네마토그래프
영화는 강원도 홍천군 어느 마을의 한 해 농사 흥망과 자연 절기를 유려하게 화면에 펼친다. 순환을 천천히 따라가는 것만으로 도시 거주자들이 잊어버린 고대의 감각이 부활하는 듯하다. 물론 기껏해야 한두 세대 전까지만 해도 누구나 체화했던 경험이다. 그만큼 한국 사회는 숨쉬기 힘들 만큼 급변하는 참이다. 누군가에게 이 작품은 그냥 보기만 해도 치유의 기능을 수행할 듯하다. 우리가 먹는 쌀을 농부들이 저렇게 열심히 심고 가꾼다는 '발견'의 순간이다.
이야기는 분명 유구한 농사 전통과 마을 공동체 현실 풍경에 많은 걸 빚졌다. 출연진의 절대다수를 점유하는 비전문 배우=마을 주민들은 면사무소 직원과 농부, 정자에서 휴식하는 노인, 축사 인부와 음식점 손님, 장례식장 하객으로 '영화의 풍경'이 된다. 그들은 자연과 더불어 <지난 여름>의 '수호 정령'인 셈. 영화의 마무리에서 각인하듯 새겨진 글귀, 영화 촬영 완료 후 개봉 직전까지 5명이 고인이 되었다는 공유는 단순 정보를 넘어선 예우로 받아들여진다.
감독이 굳이 픽션 드라마 형식을 고수한 데엔 분명한 목적의식이 느껴진다. 대도시 일상에 길든 관객은 자주 목가적 전원이나 오지 생활에 대한 환상을 품는다. 이런 경향은 역설적으로 도시 집중이 가팔라질수록 비례하듯 심화한다. 낭만 넘치는 귀농 귀촌 삶은 현실은 기대와 동떨어졌다는 간증과 참담한 실패 사례로 마무리되곤 한다.
배우 연기와 편집 초점을 통해 영화는 강원도 시골 전원 풍경을 넋 놓고 바라보던 관객의 현실 감각을 일깨운다. 우리는 작품을 통해 무엇을 포착해야 하고 놓치면 안 될 건 어떤 지점인지 이정표를 제시하듯 감독의 개입이 엄습한다. 그저 자연 다큐멘터리에 푹 빠져 '힐링'하고 싶은 기대를 배반하지만, 현실 한국 농촌을 묘사하기 위해선 놓칠 수 없는 비수다. 간혹 물과 기름 같은 이물감도 전해지지만, 대체로는 다큐멘터리 풍 화면과 적절히 역할을 분담한다.
민우가 퇴근 후 어른들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 자리엔 텔레비전이 빠질 수 없다. 뉴스에선 한국이 초고령화 사회로 엄청난 속도로 진입하고 있다는 염려와 더불어 OECD 내 최고치의 자살률을 기록한다는 음울한 통계를 보도한다. 그는 성호의 가게에서 금붕어를 사와 자신의 방 책상 위 작은 수조에 풀어 넣는다. 친구는 물고기는 밥만 잘 주면 별로 손갈 게 없다며 격려했지만, 사람은 금붕어가 아니다. 민우는 어항 속 금붕어처럼 지낼 순 없는 노릇이다.
변화하는 사회 현실
▲<지난 여름> 스틸
시네마토그래프
민우는 출근하기 위해 마을버스를 탄다. 면 경계를 따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횡단하는 광경이 반복된다. 마치 영겁의 시간에 갇힌 느낌이다. 권태로움 때문에 그는 성호와 자주 술을 마신다. 집은 안락해도 지루하고 답답한 공간이다. 그런 애증의 기운은 드라마 부분에서 두드러진다. 어머니 제사상에 생전 좋아하신 치킨 하나 올리는 것도 아버지는 탐탁잖게 여기며 '홍동백서'를 강조한다.
출가한 누나는 오랜만에 함께 뜨는 밥상에서 동생에게 참견을 서슴지 않는다. 아마 민우는 권태 자체인 면사무소 일을 그만둘 생각인 듯하다. 어쩌면 마을을 떠날 속셈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누나는 요즘 일자리 구하기가 얼마나 힘든지 강조하며 동생이 철없다고 타박한다. 그런 훈수와 간섭은 아버지는 물론 동네 주민들이 주고받는 덕담 사이에 은연중 배어 있음이 어렵지 않게 발견된다. '작은 사회'의 그림자는 이 평화로운 동네에도 어김없이 숨어 있는 것.
성호네 목장에선 정기적으로 소를 출하하고 매일 관리해야 한다. 고단한 일이다. 축산 역시 벼농사처럼 운에 좌우되는 진폭이 날로 커진다. 일손 구하기 힘들고 장성한 아들이 '투잡'을 뛰어야 구멍이 나지 않는다. 성호는 이주노동자와 함께 작업 후 배달음식을 먹는다. 농사를 위한 계절노동자도 이주민 없이는 돌아가지 않는다. 오히려 도시와 대공장보다 더 필수 불가결 요소다. 전혀 어울리지 않아 뵈는 사회 변화는 이 시골 사회에도 은연중에 파급 도상이다.
<지난 여름>은 과감한 형식 실험을 통해 '두 마리 토끼'를 놓치지 않으려 한다. 극영화의 현실성 추구의 한계를 돌파하고 도시인이 잃어버린 경험을 잠시나마 복원한다. 한국독립영화가 사실주의에 몰두하며 노출하던 관습성을 뛰어넘으면서도 다큐멘터리의 전형성 역시 갇히지 않으려는 욕망이 분출한다. 겉보기엔 한없이 소박하고 관조적인 카메라 너머에 만만찮은 창작자의 욕망이 선연한 작업이다.
<작품정보>
지난 여름
Last Summer
2023 한국 드라마
2026.08.05. 개봉 76분 12세 관람가
감독/각본 최승우
출연 김민혁, 문영동, 김현섭 외
제작 파편화
배급 시네마토그래프
28회 부산국제영화제 크리틱b상
12회 무주산골영화제 영화평론가상
▲<지난 여름> 포스터
시네마토그래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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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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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치미 뚝 떼고 1년 농사 훔친 감독이 노린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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