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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그게 중요해?"... <호프>가 폭로한 맹신하는 사람들의 최후

[리뷰] 영화 <호프>

26.07.22 13:35최종업데이트26.07.22 13: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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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호프〉가 시작되면, 관객은 만나기도 전에 한 사람을 믿게 된다. 해술 아저씨(임현식 분)다.

외딴 바닷가 마을 호포항. 찢겨 죽은 소를 두고 마을 청년이 말한다. 북한에서 넘어온 호랑이 소행일 거라고. 근거는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는 것. 그 이름 한마디에 마을은 더 따지지 않는다. 이 마을에서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는 말은 신뢰와 증명을 드러낸다. "그 사람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라고 믿는다. 마을은 그를 판단을 통째로 맡겨둔 권위의 자리에 올려두었다.

영화 중반, 해술 아저씨가 처음 화면에 등장한다. 권위는 무너진다. 산에서 뭘 봤다는 이 노인은, 정작 진술은 안 하고 똥 마려웠던 이야기로 시간을 끈다. 입으로는 그것이 셋이라면서 손가락은 하나를 더 편다. 엉성하고 코믹한 노인이다.

여기에 이 영화가 감춰둔 질문이 있다. 저런 사람을 마을은 왜 떠받들었을까. 답은 간단하다. 마을은 그가 '무엇을' 어떻게 말하는지 본 적이 없다. '해술 아저씨'라는 이름만 봤다. 〈호프〉는 외계 괴물의 영화이기 이전에 누가 말했느냐로 굴러가는 마을을 배경 삼는다.

두 번의 인용, 같은 반응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는 해술 아저씨의 이름을 두 번 활용하는데, 방식은 정반대다.

첫 번째는 가짜를 말할 때다. 소 앞에서 청년들은 호랑이를 입에 올리며 해술 아저씨를 판다. 그런데 정작 자기들끼리는 해술 아저씨에게 그런 말 들은 적 없다고 실토한다. 호랑이는 그들의 추측이었고, '해술 아저씨'는 위조로 얹은 서명이었다.

두 번째는 진짜를 말할 때였다. 해술 아저씨는 자신이 본 '그것'이 산속에 몇 마리 더 있다는 진짜 목격담을 전한다. 그의 말은 진실이었다. 다만 눈여겨볼 건 해술 아저씨의 말이 마을에 퍼지는 경로다. 그의 목격담을 받아 적은 순경 성애(정호연 분)는 범석(황정민 분)에게 옮긴다.

해술 아저씨가 한 말도 안 한 말도 마을에 돌았다. 가짜도 통하고 진짜도 통했다. 애초에 아무도 내용을 검증하지 않으니 가능했다. 화자가 미덥지 않을수록 오히려 '해술 아저씨'라는 이름의 힘만 도드라진다. 내용의 진실보다 누가 말했는지가 더 중요했다. 다음에 해술 아저씨의 말이 틀려도 마을은 똑같이 믿을 것이다. 출처만 보는 눈에 진실은 실력이 아니라 요행이다.

질문을 막는 두 개의 문장

범석은 이 영화에서 거의 유일하게 묻는 사람이다. 뭐가 소를 죽였나. 이 총들은 어디서 났나. 그는 출장소장답게 원인과 출처를 따진다. 그리고 그때마다 마을은 두 개의 문장으로 그의 입을 막는다.

첫 번째는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는데요"라며 출처를 믿을만한 사람 이름으로 특정한다. 게다가 전언인 이상 옮긴 사람은 책임에서 빠져나간다. 내가 그랬다는 게 아니라 해술 아저씨가 그랬다니까, 틀려도 내 탓이 아니다.

두 번째는 더 노골적이다. 트럭에 올라탄 범석이 "그 많은 총이 어디서 났느냐"고 따지자 무장한 노인들이 "지금 그게 중요해?"라고 되받는다. 잠시 뒤엔 순경 성애의 차 뒷좌석에 실린 무기를 보고 또 묻자 성애가 답한다.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민간인 노인도 공권력인 순경도 같은 문장으로 같은 질문을 막는다. 묻는 자는 완전히 혼자다.

첫 번째가 질문에 가짜 답을 채웠다면 이건 질문 자체를 지운다. 얼핏 지당하게 들린다. 눈앞에 괴물이 있고 당장 살아야 하니까. 그러나 이 말이 반복될수록 드러나는 것은 이 마을이 한 번도 원인을 궁금해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실제로 그 많은 총들이 어디서 났는지 영화는 끝내 밝히지 않는다. 이것이 각본의 구멍인지 감독의 설계인지는 알 수 없고 따질 필요도 없다. 분명한 것은 그 답을 요구하는 질문이 인물들의 입에 막혔다는 사실이다. 원인을 묻지 않는 마을에서 원인은 그냥 없는 것이 된다.

여기서 나홍진 감독의 전작이 겹쳐 떠오른다. 〈곡성〉의 그 유명한 "뭣이 중헌디?"는 곁가지에 매달리는 자에게 중요한 것을 보라는 요구였다. 그런데 10년 뒤 〈호프〉에서 감독은 같은 관용구를 뒤집는다. "지금 그게 중요해?" 이번엔 중요한 것을 묻지 말라는 명령이다. 〈곡성〉이 진실을 못 보는 자를 꾸짖었다면 〈호프〉는 진실을 물으려는 자를 막는다. 감독의 비극이 '못 보는 자'에서 '안 묻는 자'로 옮겨온 것이다.

왜 하필 외계인이었나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이 이야기에 왜 하필 외계인이 필요했나. 간첩이든 산짐승이든 무엇으로도 이 마을은 똑같이 굴러갔을 것이다. 그런데 나홍진 감독은 굳이 외계 크리처를 세운다.

외계인은 인간이 가장 손쉽게 "알 수 없다"고 단정할 수 있는 존재다. 말이 다르고, 생김이 다르고, 왜 이곳에 왔는지 모른다. 물러설 때 '어차피 안 통해'라는 자포자기만큼 좋은 핑계가 없다. 감독은 바로 그 핑계를 극한까지 밀어붙인 뒤, 그런 태도가 핑계에 불과했다고 폭로한다. 영화 후반부, 외계인도 언어가 있고 잃어버린 아이가 있었다는 게 드러난다.

마을이 무엇을 해야 했다고 말하려는 게 아니다. 언어도 통하지 않는 존재를 눈앞에 두고 공포에 질려 방아쇠를 당기는 건 어쩌면 인간이 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일인지도 모른다. 영화는 이들이 어디까지 다다르는지 끝까지 응시한다. 저것이 무엇인지 확인, 검증하기도 전에 '괴물'이라는 이름부터 붙여버린 순간, 한 가족(외계인)을 통째로 지워버렸다.

묻기를 그만두지 못한 사람

 영화 <호프> 스틸컷
▲영화 <호프> 스틸컷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묻는 사람, 범석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그가 남달리 지혜롭거나 용감해서가 아니다. 그는 내내 두려워하고 쩔쩔맨다. 묻는 것도 대단한 게 아니다. 총이 어디서 났냐, 이건 다 뭐냐. 눈앞에 괴물이 있는 판에 절차나 따지는, 어쩌면 하찮은 물음이다. 마을이 "지금 그게 중요해?"라고 되받을 때 그 말이 얼핏 옳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다만 그는 그 하찮은 질문을 이상하리만치 놓지 못한다. 걷어차여도 다시 묻고, 막혀도 기어이 들여다본다. 그러다 뜻밖의 것들과 마주친다. 괴물의 얼굴에 맺힌 눈물. 마을 사람 양배(음문석 분)가 냉동고에 숨겨둔 작은 사체. 그리고 순서를 알게 된다. 저 바깥의 괴물이 먼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것을 승리라고 부르긴 어렵다. 그가 옳은 질문을 골라낸 것도 아니다. 그저 묻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고 그 성가신 기질이 그를 어쩌다 그 자리까지 데려갔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도착한 곳도 정리된 답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성애가 묻자 범석은 이렇게 답한다.

"모르겠어. 머릿속이 정리가 안 돼."

마을은 한순간도 모름을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이름을 붙였다. 반면 진실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끝내 모르겠다고 말한다. 묻기를 그만두지 않은 대가로 그가 얻은 것은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그대로 안고 가는 일이었다.

극장 밖의 호포항

그러나 범석 같은 사람은 이 마을에서 그 하나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실제로 굴린 것은 그의 미결이 아니라 마을의 즉답이었다. 그리고 그 즉답의 방식은 스크린 안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점점 그 마을을 닮아 간다.

누군가 확인되지 않은 한마디를 던진다. 저 사람이 이렇다더라, 저 일이 저래서 벌어졌다더라. 출처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그 말이 '누가' 했느냐에 따라, 어느 편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내용을 따지기도 전에 믿고 움직인다. 삽시간에 한 사람이, 한 사안이 규정된다. 무엇을 봤는지가 아니라 누가 그랬다더라가 방아쇠를 당긴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도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그 말을 꺼낸 '누가'는 끝내 특정되지 않고 옮긴 사람들은 저마다 빠져나간다. 나는 그랬다는 게 아니라 어디서 봤을 뿐이라고. 그리고 이 구조에 이의를 달려는 사람에게는 늘 준비된 문장이 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이 그거 따질 때야?

솔직히 이 마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확인하지 않은 말을 옮긴 적이 있고 '누가 그러던데'로 내 판단을 대신한 적이 있다. 〈호프〉가 무서운 것은 저 마을이 유독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저 마을의 방식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다.

그러니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남는 것은 외계인도 괴물도 아니다. 하나의 물음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누가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믿고 있나. 그 물음을 입에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지금 그게, 중요해?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4indie)에도 실립니다.
호프 나홍진 황정민 조인성 정호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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