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그렇다면 묻는 사람, 범석을 조금 더 들여다보자.
그가 남달리 지혜롭거나 용감해서가 아니다. 그는 내내 두려워하고 쩔쩔맨다. 묻는 것도 대단한 게 아니다. 총이 어디서 났냐, 이건 다 뭐냐. 눈앞에 괴물이 있는 판에 절차나 따지는, 어쩌면 하찮은 물음이다. 마을이 "지금 그게 중요해?"라고 되받을 때 그 말이 얼핏 옳게 들리는 것도 그래서다.
다만 그는 그 하찮은 질문을 이상하리만치 놓지 못한다. 걷어차여도 다시 묻고, 막혀도 기어이 들여다본다. 그러다 뜻밖의 것들과 마주친다. 괴물의 얼굴에 맺힌 눈물. 마을 사람 양배(음문석 분)가 냉동고에 숨겨둔 작은 사체. 그리고 순서를 알게 된다. 저 바깥의 괴물이 먼저가 아니었다는 것을.
이것을 승리라고 부르긴 어렵다. 그가 옳은 질문을 골라낸 것도 아니다. 그저 묻기를 그만두지 못하는 사람이 하나 있었고 그 성가신 기질이 그를 어쩌다 그 자리까지 데려갔을 뿐이다. 그래서 그가 도착한 곳도 정리된 답이 아니다.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서 앞으로 어떻게 하면 되겠냐고 성애가 묻자 범석은 이렇게 답한다.
"모르겠어. 머릿속이 정리가 안 돼."
마을은 한순간도 모름을 견디지 못하고 곧바로 이름을 붙였다. 반면 진실 가장 가까이 다가간 사람은 끝내 모르겠다고 말한다. 묻기를 그만두지 않은 대가로 그가 얻은 것은 명쾌한 해답이 아니라 정리되지 않는 머릿속을 그대로 안고 가는 일이었다.
극장 밖의 호포항
그러나 범석 같은 사람은 이 마을에서 그 하나뿐이었다. 이 이야기를 실제로 굴린 것은 그의 미결이 아니라 마을의 즉답이었다. 그리고 그 즉답의 방식은 스크린 안에만 있지 않다. 우리가 사는 세계도 점점 그 마을을 닮아 간다.
누군가 확인되지 않은 한마디를 던진다. 저 사람이 이렇다더라, 저 일이 저래서 벌어졌다더라. 출처는 분명치 않다. 그런데 그 말이 '누가' 했느냐에 따라, 어느 편에서 나왔느냐에 따라, 사람들은 내용을 따지기도 전에 믿고 움직인다. 삽시간에 한 사람이, 한 사안이 규정된다. 무엇을 봤는지가 아니라 누가 그랬다더라가 방아쇠를 당긴다.
나중에 사실이 아니라는 게 드러나도 대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처음 그 말을 꺼낸 '누가'는 끝내 특정되지 않고 옮긴 사람들은 저마다 빠져나간다. 나는 그랬다는 게 아니라 어디서 봤을 뿐이라고. 그리고 이 구조에 이의를 달려는 사람에게는 늘 준비된 문장이 있다. 지금 그게 중요해? 지금이 그거 따질 때야?
솔직히 이 마을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많지 않다. 나 역시 확인하지 않은 말을 옮긴 적이 있고 '누가 그러던데'로 내 판단을 대신한 적이 있다. 〈호프〉가 무서운 것은 저 마을이 유독 어리석어서가 아니라 저 마을의 방식이 우리에게 너무 익숙해서다.
그러니 영화가 끝나고 극장을 나설 때 남는 것은 외계인도 괴물도 아니다. 하나의 물음이다. 나는 지금, 무엇을 '누가 그랬다'는 이유만으로 믿고 있나. 그 물음을 입에 올리려는 순간, 어디선가 익숙한 목소리가 앞을 가로막을 것이다.
지금 그게, 중요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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