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 장면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영화가 가장 놀라운 순간은 마지막이다. 그동안 인간을 따라가던 시선은 갑자기 외계인 마베이요(마이클 패스밴더)와 조르(알리시아 비칸데르)에게로 향한다. 관객은 지금까지 그들을 인간을 위협하는 존재로만 바라봤다. 그래서 마지막 장면은 이상한 느낌을 준다. 처음으로 그들의 사연과 감정을 들여다보게 되는데, 그 순간 관객은 어떤 상황인지 혼란을 느낀다.
그들의 눈앞에서 거대한 외계 함선은 추락하고, 아이를 잃은 슬픔은 깊다. 그들의 세계 역시 무너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도 마베이요와 조르는 절망 속에서 서로의 의지를 다잡는다. 현실을 부정하기보다 받아들이고, 지금 자신들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특히 자신의 심장을 꺼내는 마베이요의 선택은 단순한 희생이라기보다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결심처럼 느껴진다. 바로 그 순간 화면에 떠오르는 제목 'HOPE'. 영화는 마지막이 되어서야 비로소 제목의 의미를 관객에게 건넨다.
흥미로운 것은 이 장면에서 희망을 품는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 외계인이라는 사실이다. 그동안 인간들은 괴물을 쓰러뜨리고 나서 잠시 안도하지만, 점점 희망을 잃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범석은 '정리가 안 된다'는 말을 반복하면서 그저 달려갈 뿐이다. 희망을 잃어가는 인간과, 절망 속에서도 다시 의지를 세우는 외계인의 모습은 선명한 대비를 만든다.
그래서 영화의 중심은 마지막에 인간에서 외계인으로 옮겨간다. 우리는 지금까지 인간의 시선으로만 이야기를 바라봤지만, 영화는 마지막 몇 분에 그 틀을 뒤집는다. 처음에는 괴물이라고 생각했던 존재 역시 가족을 잃고 슬퍼하며, 다시 살아갈 이유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 순간 영화는 침공 영화에서 벗어나 하나의 생명에 대한 이야기로 확장된다.
결국 영화가 말하는 희망은 승리해서 얻는 감정이 아니다. 모든 것이 무너졌을 때 현실을 받아들이고, 다시 앞으로 나아가겠다고 선택하는 의지에 가깝다. 희망은 종족의 문제가 아니라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것. 그래서 영화의 마지막은 외계인을 보여주고 있지만, 결국 우리 인간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희망은 절망이 끝난 뒤에 오는 것이 아니다
<호프>는 단순한 외계인 침공 영화가 아니다. 영화는 인간과 외계인의 대결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실상은 절망 앞에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를 들여다본다. 희망은 승리했을 때 생기는 감정이 아니라, 모든 것을 잃었다고 생각하는 순간에도 다시 앞으로 나아가려는 의지라는 사실을 이야기한다.
나홍진 감독의 연출은 이번에도 압도적이다. 영화는 한 시간 가까이 외계인의 실체를 쉽게 보여주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 존재를 향한 공포와 서스펜스를 끝까지 유지하는 방식은 그가 가장 잘하는 연출이다.
첫 번째 추격 시퀀스는 숨을 쉴 틈조차 없을 정도로 긴장감이 뛰어나고, 숲속에서 이어지는 액션 역시 압도적인 몰입감을 선사한다. 마지막 도로 추격 장면은 다소 길게 느껴지고 일부 CG가 눈에 띄는 아쉬움은 있지만, 영화 전체가 만들어내는 긴장감은 쉽게 무너지지 않는다.
홍경표 촬영감독의 카메라는 거대한 재난을 단순히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직접 체험하게 만든다. 완성도 높은 미술과 음향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를 흐리며 관객을 영화 속으로 끌어들인다. 특히 나홍진 감독 특유의 공간 활용은 이번 작품에서도 빛난다. 평범한 시골 마을은 어느 순간 인간이 가장 두려워하는 공간으로 변한다.
배우들의 연기 역시 훌륭하다. 황정민은 평범한 인간이 절망 속에서 무너지는 과정을 설득력 있게 표현하고, 정호연은 강렬한 에너지로 영화의 중심을 잡아준다. 특히 조인성이 말을 타며 총격전을 펼치는 장면은 영화 전체를 통틀어 가장 인상적인 액션 시퀀스 중 하나다. 압도적인 스케일과 배우의 존재감이 완벽하게 맞물린다.
물론 호불호는 분명 갈릴 작품이다. 이야기의 결말이 모든 질문에 답을 주는 방식은 아니며, 일부 CG 역시 완벽하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어떤 관객은 이 영화를 보고 '미쳤다'고 극찬할 것이고, 또 다른 관객은 같은 표현으로 혹평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홍진 감독은 또 한 번 지금까지 한국 영화에서 보기 어려웠던 스케일과 상상력을 스크린 위에 펼쳐냈다.
결국 <호프>가 던지는 질문은 절망적인 재난 속에서도 인간은 희망을 품을 수 있는가일 것 같다. 그리고 우리는 모든 것이 무너졌다고 느끼는 순간, 과연 다시 앞으로 나아갈 의지를 만들 수 있을까. 영화가 말하는 희망은 결과가 아니라 선택이다. 어쩌면 그 선택은 영화에서 외계인이 먼저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호프>는 마지막 장면이 끝난 뒤에도 오래 마음속에 남는다. 꼭 극장에서 이 거대한 공포와 희망을 직접 마주해보길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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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와 시리즈 속 감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보다,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브런치에 영화 감성 리뷰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 속 감정을 담은 첫 에세이집 《그럴 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를 출간했습니다.
레빗구미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남긴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오래 기록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