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루몽스틸컷
한국독립영화협회
성공한 사업가에서 거침없는 활동가가 되기까지
신숙옥의 개인적 삶과 자이니치란 사회적 의제는 결코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는 이 문제가 발화하는 순간부터, 그녀에게 닥쳐온 위기와 선택, 오늘에 이르는 일련의 이야기까지를 거침없이 풀어낸다. 시작은 2000년이다. 인재육성 컨설턴트란 이름으로 여러 기업을 상대로 채용과 교육 프로그램을 제공하던 유망한 사업가였던 그녀가 도쿄시장격인 이시하라 신타로 당시 도쿄도지사의 망언에 적극 항의하면서다.
이시하라 신타로는 일본 내에서 중국인과 조선인, 대만인 등을 싸잡아 부르던 멸칭 '삼국인'이란 표현을 써가며, '대지진 같은 재해가 발생하면 이들이 소요 사태를 일으킬 수 있으니 자위대가 나서야 한다'는 망언을 해 논란이 됐다. 이에 자이니치 출신으로 성공한 인사였던 신숙옥이 공식적인 항의운동을 전개했는데, 그 길로 고객 기업사가 썰물처럼 빠져나가며 사업이 기울었다는 이야기다.
영화는 신숙옥이 이 사건 이후 아예 일본사회의 혐오와 차별 문제에 적극 목소리를 내는 활동가로 거듭나는 과정, 때마침 일어난 극우의 준동으로 그녀가 이들의 타깃이 되어 고통을 겪는 모습 등을 여러 영상자료와 인터뷰를 통해 재구성한다. 결정적인 사건은 일본 기업 DHC가 소유한 DHC텔레비전이 제작한 프로그램 <뉴스 여자>가 오키나와 미군기지 건설 반대 운동을 소개하며 신숙옥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유언비어를 유포한 것이다. 이 방송 이후 극우세력에게 좌표가 찍힌 신숙옥은 살해협박을 받는 등 고통을 겪다가 멀리 독일로 몸을 피한다.
영화 후반부는 그녀의 도피와 복귀, 그리고 DHC텔레비전을 상대로 한 4년간의 소송, 마침내 얻어낸 승소까지의 과정으로 채워진다. 전반부가 인간 신숙옥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보여준다면, 후반은 그녀의 활약이라 해도 무방할 정도. 보통 사람은 해내기 쉽지 않은 그 과정을 건너는 신숙옥의 모습이 보는 이에게 카타르시스를 안길 만큼 감격적이다.
영화 속 신숙옥은 마치 무협지 주인공을 보는 듯 당차고 거침없다. 은원을 잊지 않는 협객이 저를 가로막는 이들을 아무렇지 않게 베어 넘기듯, 거물 앞에 주눅 들지 않고 모든 문제를 돌파해나간다. 도쿄도지사 이시하라 신타로, DHC 텔레비전 사장, 그녀를 조롱한 <뉴스 여자> 진행자 및 패널들, 혐오를 감추지 않는 극우인사들까지 모두가 그녀 앞에선 조잡하고 비루하게 보일 뿐이다. 신숙옥이 있어 <호루몽>은 호쾌한 영화이며, 그녀의 독보적 캐릭터에 의지해 관객들을 매료시키고 설득해낸다.
▲호루몽포스터
한국독립영화협회
보기 드문 인물이 주는 각별한 매력
다만 주인공의 매력과는 별개로 감독의 연출이며 다큐의 구성이 마땅한 성취를 거두고 있는지 의문이다. 삽입된 북소리의 리듬감과 중간중간 들어간 한복 입은 여성들의 춤사위가 영화에 대한 관객의 이해를 증진케 하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필요한 감각을 깨워낸다고 보기도 어렵다.
구조적으로도 영화는 신숙옥뿐 아니라 그녀의 부모와 조부모까지 3대의 역사를 아우르는 설명에 상당 부분을 할애한다. 종으로는 3대의 이야기가, 횡으로는 신숙옥의 개인사며 중심이 되는 소송과정이 연달아 등장해 관객에게 너무 많은 정보를 난잡하게 내보인다는 인상을 준다. 아마도 어느 하나 빠뜨리고 싶지 않다는 욕심 때문이었겠으나, 그 탓에 관객은 모든 것이 강조된 나머지 어느 하나도 강조되지 않은 듯한 어수선함을 느끼게 된다.
제목이 된 '호루몽'조차 당시 일본 내 조선인들이 일본인이 먹지 않고 버린 내장 부위를 주워 구워먹던 요리 '호르몬'에서 차용한 것인데, 막상 영화에는 그에 대한 내용이 없다. 이 같이 작은 요소 하나까지 놓치지 않고 모두 품어가고 싶다는 감독의 욕심이 영화 내내 가득 엿보인다. 그러나 그와 같은 장치며 설정, 구조가 과연 관객에게 효과를 거두고 있는가. 대개는 그 과함으로 달성할 수 있었을 미덕조차, 이를테면 관객이 다큐가 내어준 여백을 통해 스스로 사고할 수 있을 가능성을 상실케 하고 있지는 않은지 되묻고 싶다. 전작에서도 너무 많은 장치가 도리어 어수선한 결과물을 만들었던 것을 고려하면 이번 영화 또한 감독이 도리어 영화의 장점을 가리고 있다는 인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호루몽>은 매력적인 영화다. 그 매력의 십할 중 십할이 오롯이 주인공 신숙옥에게서 나온다. 그 드문 기질과 기개는 삶을 통해 만들어진 것이기도 하지만, 타고난 것이기도 하다. 그래서 더더욱 비범하고 귀하게 느껴진다. 이로부터 관객은 신숙옥이 되지 못한 아마도 대다수의 자이니치의 처지와 그를 그렇게 방치한 우리 자신을 돌아보기도 해야겠으나, 또한 다루는 주제나 역경의 무게에 매몰되지 않는 영화적 재미 또한 누리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영화 <호루몽>의 각별한 매력이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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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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