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블러드 카운테스'의 주인공 이자벨 위페르의 기자회견
임순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에서 '블러드 카운테스' 상영 후 가진 기자회견에서 위페르는 "울리케 오팅거 감독을 오래전부터 존경해 왔다"며, "이번 작품은 단순한 흡혈귀 영화가 아니라 신화와 유머, 예술이 결합된 독특한 작품이라는 점에 매력을 느껴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그녀는 "오팅거의 영화가 현실과 환상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독창적인 세계를 갖고 있으며, 그런 도전에 기꺼이 참여하고 싶었다"고 밝히고, 악인이나 논란이 많은 인물을 자주 연기하는 이유에 대해 "배우는 인물을 재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을 이해하는 사람"이라며, "배우의 역할은 등장인물을 심판하는 것이 아니라 이해하려 노력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위페르의 연기는 감정을 숨기는 데서 출발한다. 슬픔도, 분노도 크게 표현하지 않는다. 오히려 감정을 억누르는 순간이 더 큰 긴장감을 만든다. 이러한 스타일은 '피아니스트', '엘르', '의식(La Cérémonie)'에서 극대화된다.
그녀는 선과 악으로 쉽게 구분되지 않는 인물을 자주 연기하는데, 살인자, 피해자, 가해자, 욕망에 사로잡힌 여성까지도 단순한 악인이나 희생자가 아닌 입체적인 인간으로 표현해 내, 도덕적으로 복잡한 인물을 설득력 있게 만들며, 감독의 세계관을 자신의 몸으로 구현하는 능력이 탁월하다는 평가를 받는 배우다. 오팅거 감독은 위페르의 얼굴을 하나의 풍경처럼 촬영하며, 배우의 표정 자체를 영화의 서사로 삼는다.
▲영화 '블러드 카운테스를 연출한 울리케 오팅거 감독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울리케 오팅거(Ulrike Ottinger) 감독은 독일 뉴 저먼 시네마(New German Cinema)를 대표하는 여성 감독이자 사진작가, 화가, 무대미술가다. 베르너 헤어초크, 빔 벤더스, 라이너 베르너 파스빈더 등과 같은 시대를 활동했지만, 누구와도 닮지 않은 독자적인 영화 세계를 구축한 작가로 평가받는다.
1942년 독일 콘스탄츠에서 태어난 그는 뮌헨에서 미술을 공부한 뒤 1960년대 파리에서 판화와 회화를 연구했다. 이 시기 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와 철학자 루이 알튀세르의 강의를 들으며 예술적·철학적 영향을 받았고, 회화와 사진, 퍼포먼스를 넘나들다 197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연출에 뛰어들었다.
1980~1990년대에는 극영화와 다큐멘터리를 넘나들며 아시아와 유럽 여러 지역을 장기간 취재한 작품들을 발표했고, 베를린국제영화제 카메라상(Berlinale Camera) 등 다수의 공로상을 받았다. 그의 작품들은 뉴욕현대미술관(MoMA), 퐁피두센터 등 세계 주요 미술관과 영화제에서 지속적으로 회고전을 열 만큼 높은 예술적 평가를 받고 있다.
대표작으로는 여성 해적을 통해 권력과 욕망을 그린 컬트 영화 < 마담 X >(1977), 술에 취한 여성의 베를린 방황을 그린 블랙코미디 <티켓 어브 노 리턴>(1979), 버지니아 울프의 <올랜도>를 자유롭게 변주한 초현실 판타지 <프릭 올란도>(1981), 미디어와 소비사회를 풍자한 작품 < Dorian Gray in the Mirror of the Yellow Press >(1984, 한국의 혼례문화를 탐구한 다큐멘터리 'The Korean Wedding Chest'(2009) 등이 있다.
▲영화 ‘블러드 카운테스’의 한 장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오팅거 영화는 이야기보다 이미지와 공간의 힘을 믿는다. 그녀의 영화에는 화려한 의상, 과장된 분장, 연극적인 세트가 등장하며, 각각의 장면은 마치 살아 있는 회화처럼 구성된다. 그래서 그의 작품은 '영화를 본다'기보다 움직이는 미술관을 거닌다는 느낌을 준다.
그녀의 영화는 논리적인 이야기 전개보다 꿈과 환상, 유머와 과장, 기괴함을 즐긴다. 등장인물들은 현실과 신화를 자유롭게 넘나들고, 영화는 종종 오페라나 퍼포먼스를 연상시키는 장면들로 채워진다. 이러한 독특한 미학 때문에 오팅거는 유럽 영화계의 가장 급진적인 실험영화 작가 가운데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오팅거의 작품에는 강인하고 독립적인 여성들이 중심에 서며, 성별과 정체성, 권력 관계를 고정된 틀에서 벗어나 바라본다. 그녀의 초기 작품들은 페미니즘과 퀴어 감수성을 여성과 소수자의 시선으로 담은 대표적인 예술영화로 꼽힌다. 오팅거는 1990년대 이후에는 다큐멘터리 작업이 늘어나며, 몽골·중국·한국·북극 등 여러 지역을 직접 답사해 그곳의 의식, 전통, 삶을 긴 호흡으로 기록했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개막식에서 공로상을 수상한 이자벨 위페르
임순혜
<블러드 카운테스>는 오팅거가 오랜만에 선보인 본격 극영화로, 뱀파이어 전설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고딕 미술과 바로크적 색채를 적극 활용하며, 공포를 유머와 풍자로 뒤집고, 이자벨 위페르의 절제된 연기를 통해 신화와 현실을 교차시킨, 그의 세계관이 집약된 작품이다. 피를 빨아 생명을 연장하는 괴물의 이야기가 아니라, 시간과 권력, 욕망, 그리고 예술의 생명력을 질문하는 철학적 우화에 가깝다.
영화평론가들은 오팅거를 흔히 '영화감독이라기보다 시각예술가', '움직이는 회화를 만드는 작가'라고 부른다. 그의 영화는 대중적인 서사보다 이미지와 상징, 의상과 색채가 먼저 말을 거는 작품들이다. 그래서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이 아니라 현대미술 전시와 오페라, 퍼포먼스를 동시에 체험하는 듯한 경험을 선사한다.
▲영화 '블러드 카운테스' 기자회견에서의 주인공 배우 이자벨위페르
임순혜
전설 속 블러드 카운테스는 젊음을 유지하기 위해 피를 갈망하는 존재다. 하지만 오팅거는 이를 문자 그대로의 공포가 아니라, 현대 사회가 끊임없이 추구하는 젊음과 아름다움, 소비와 권력에 대한 집착의 은유로 바꿔 놓았다.
영화 속에서 카운테스는 단순히 희생자를 사냥하기보다, 현대 도시를 관찰하고 사람들의 욕망을 응시한다. 결국 그녀가 발견하는 것은, 현대인들 역시 서로의 시간과 에너지, 감정을 끊임없이 소비하며 살아간다는 사실이다. 즉, 영화는 "누가 진짜 흡혈귀인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결말에서 카운테스는 전통적인 뱀파이어 영화처럼 처형되거나 완전히 승리하지도 않는다. 오팅거는 선과 악의 승패보다, 시간 속에서 신화가 어떻게 살아남는가에 관심을 둔다.
카운테스는 마지막까지 현대 사회를 떠돌며 현실과 전설의 경계를 흐린다. 이 결말은 "괴물은 사라지지 않는다"는 뜻이라기보다, 인간의 욕망이 존재하는 한 신화 역시 계속 새로운 모습으로 되살아난다는 메시지로 읽을 수 있을 것이다.
<블러드 카운테스>는 장르적으로는 공포영화이지만, 독일 표현주의 영화의 음울한 미장센, 루이스 부뉴엘을 연상시키는 초현실주의적 풍자, 페데리코 펠리니를 떠올리게 하는 카니발적 환상성이라는 세 가지 영화 전통이 만난 작품이라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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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미디어기독연대 대표, 표현의자유와언론탄압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운영위원장, 언론개혁시민연대 감사, 5.18영화제 집행위원장, 전 NCCK언론위원장, 전 방송통신심의위원회 방송특별위원, 전 방송통신위원회 보편적시청권확대보장위원, 한신대 외래교수, 영상물등급위원회 영화심의위원을 지냈으며, 영화와 미디어 평론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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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현실주의 판타지, 정치적 풍자 뒤섞인 '블러드 카운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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