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호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04.
"아까 그 놈은 지 새끼를 찾으려고 그랬던 거네."
후반부에 밝혀지는 외계인의 목적은 그동안 보아온 영화를 근본적으로 다시 쓰게 만든다. 이들이 호포항을 찾아온 이유는 정복도 학살도 아니며, 목수 양배(음문석 분)에 의해 죽임을 당한 아이를 찾고 살리기 위함이다. 외계인의 시선에서 본다면 호포항 사람들은 마을을 침범 당한 피해자가 아니라, 아이를 죽인 종족이자 그 아이를 찾으러 온 가족에게 총을 겨누는 존재다. 인간에게는 침공처럼 보이던 사건이 외계인에게는 구조와 수색, 나아가 애도의 과정일 수 있다. 다시 말해, 극 중 모든 추격과 전투는 그 사실을 모르는 쪽의 시선으로만 편집된 결과에 가깝다.
반전 따위가 아니다. '외계인이 인간을 공격했다'는 문장이 주체가 바뀌면서 '아이를 찾던 외계인이 자신을 공격하는 인간에 맞선다'로 고쳐졌을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호포항 사람들에게만 모든 잘못을 뒤집어씌울 순 없겠으나, 인간이라는 종 전체가 완전히 무고한 자리에 머물 수는 없다. 마을을 지킨다는 영웅적 행동 역시 더 큰 시야에서는 오해를 확대하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양배라는 인물 또한 거악을 계획한 빌런으로 단순화할 수는 없다. 양배가 모든 사건의 원인이면서도 전형적인 악당처럼 보이지 않는 까닭은 <호프>가 비판하는 대상이 개인의 사악함이 아닌 타자를 이해하지 못하는 무지여서다.
05.
"이건 말도 안 돼요. 있을 수도 없어요."
그런 양배의 행위가 영화의 가장 안쪽에 감춰진 채로 위치하고 있다는 사실은 중요하다. 여기에 영화가 이 세계를 바라보는 방식이 존재한다. 관객이 두 시간이 넘도록 마주하는 것은 양배의 행동이 만들어낸 결과지, 그 행위 자체가 아니다. 원인이 아닌 결과를 먼저 보여주고 그 결과를 원인처럼 믿게 만드는 방식이다. 영화의 프레임 내부가 폭발과 총격과 같은 폭력으로 가득하지만, 그 폭력을 발생시킨 최초의 오해나 상실이 보이지 않는 것과 비슷하다.
그 결과 사람들은 눈앞의 공격만을 기억하고 자신이 받은 피해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구성한다. 상대편에도 잃어버린 아이와 돌아가야 할 가족, 실패한 희망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배제해 버리는 것이다. 현실의 우리와 크게 다르지 않아 보인다. 이렇게 보자면, 영화 <호프>는 인간이 타자를 어떻게 인식하는지, 그 관습적인 행태를 극단으로까지 치밀어 보여주고자 하는 영화에 가깝다.
영화의 마지막 10분이 지난 140여 분과 동떨어진 것처럼 보이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두 집단의 전투가 끝난 뒤에야 영화는 비로소 그 전투가 속해 있던 더 큰 이야기의 일부를 꺼내 보인다. 일부 속편을 위한 예고처럼 느껴지지만, 그보다는 지금까지 인간의 프레임만이 전부라고 믿어온 관객을 화면 바깥으로 밀어내는 처음이자 마지막 시점 이동이 된다.
영화 <호프>는 보이지 않는 괴물의 존재를 드러내고자 하는 영화가 아니다. 오히려 괴물의 모든 형상과 행동을 보여준 뒤에도 여전히 보이지 않는 것이 존재할 수 있음을 증명하는 이야기다. 괴물이 존재한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 아니라, 내가 보지 못하는 쪽에도 하나의 완전한 이야기가 존재할 수 있음에 대한 믿음.
▲영화 <호프> 스틸컷
플러스엠 엔터테인먼트
06.
그렇게 미끼를 따르는 동안 감춰져 있었을 뿐이지, 극 중 모두에게는 각자의 희망이 존재한다. 마을을 구하고자 하는 호포항 사람들의 희망, 살아 돌아오고자 하는 숲속 청년들의 희망, 그리고 아이를 살리고자 하는 외계인의 희망이다. 다만, 서로의 자리에서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을 각각의 희망이, 동시에 성립할 수 없는 형태로 마주치면서 이 모든 비극이 시작된 것이나 다름없다. 이 영화가 과연 희망을 말하는가? 자신이 누군가에게는 괴물이 될 수 있음을 인정하기 전까지는 요원한 단어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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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 만에 꺼낸 '호프', 무엇을 감추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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