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영의 노력포스터
필름다빈
아쉬움을 넘어서 의미를 더듬는다
아쉽게도 영화 <소영의 목적>이 그와 같은 성취를 달성하고 있다고 말하기는 어렵겠다. 장애와 비장애를 구분하는 편한 태도, 그리하여 장애를 다룬 작품을 무작정 가치 있고 의미 있다고 높이는 자세를 벗어나면 이 영화의 유효함을 얼마 찾아볼 수 없는 때문이다. 영화 속 소영의 노력은 코나투스라 할 만한 상승에의 과정을 얼마 품고 있지 못하다. 소영과 희정의 몇 차례 대화로만 짐작하기엔 무용이 가진 가능성과 도전들이 충만했을 것이기에 그 표현이 관객에게 닿지 않는단 사실이 아쉽기만 하다.
무용이 그러하듯, 영화 또한 관객에게 닿으려는 유효한 표현의 수단과 방식을 고민해야 한다. 다큐가 그저 기록에만 머물지 않고, 예술이라 불리는 데는 표현과 수용으로 일어나는 변화의 가능성이 주요하게 평가되는 때문이다. 바로 그 지점에서 <소영의 노력>이 가진 여러 형식적 특성, 이를테면 소영이 직접 찍은 촬영분을 영화 뒷부분에 포함한다거나 공연장면이나 그를 유추할 수 있는 의미 있는 동작을 배제한 것, 또 감독이 전면에 드러나며 공연을 연습하는 장면으로 많은 분량을 채운 것 등이 어떤 효과를 일으켰는지 비판적으로 돌아볼 밖에 없다. 찍고자 하는 욕망 너머 관객에게 닿으려는 열망이 얼마 보이지 않는 때문이다.
그럼에도 <소영의 노력>은 주목할 지점이 있는 작품이다. 장애인 무용수를 전면에 내세운 장편 다큐멘터리가 어찌됐든 작은 규모라도 정식 개봉을 통해 일반 관객과 만나려는 시도를 감행한다는 점이 특히 그렇다. 또한 다큐가 그저 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무용과 결합해 나름의 효과를 구했다는 점 또한 흥미롭게 다가온다. 다큐, 그리고 영화의 경계는 어디인가. 경계를 확정할 수 없는 영상예술의 한 분과가 우리 가운데 좀처럼 보여지지 않는, 그러나 보여야 마땅한 장애인의 이야기를 전한다. 그 자체로 이 영화 또한 나름의 노력을 품고 있다고 나는 믿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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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