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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타스틱 영화제에서 상영된 '내 이름은', 씁쓸함이 남는 이유

[김성호의 씨네만세 1393] 30회 BIFAN '찾아가는 동네 영화관' <내 이름은>

26.07.12 13:11최종업데이트26.07.12 1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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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성 강한, 그중에서도 공포와 호러 장르에 특화됐단 평을 들어온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다. 수많은 영화제가 난립하다시피 일어난 세기초, 이 영화제가 제 자리를 확고히 점하는 데 선명한 색깔은 결정적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나 오늘에 이르러 장르적 색채가 도리어 영화제의 확장성을 옭아매는 제약이 아니냔 비판이 나온다. 그들만의 축제일 뿐, 시민사회와 함께 호흡하지 못한다거나 하는 이야기가 대표적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를 대표하는 작품들은 좋게 말해 '판타스틱'이란 수식어가 붙을 만큼 장르성 강한 작품들이다. 평이한 사고와 감각으로는 이르지 못할 만큼 독창적이고 기괴한 영화가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창을 통해 한국에 닿게 된다는 이야기다. <렛 미 인> <맨 인 더 다크> 등 이 영화제를 통해 한국에 선보여 화제가 된 작품들을 보자면 그 성격이 어떤지 짐작할 만하다. 한국 작품으로는 <김복남 살인사건의 전말>이 14회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여우주연상을 차지했다.

그 때문일까.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선택을 받은 작품이 한국에 정식 배급되는 경우가 그리 흔치는 않다. 개인적으로 이 영화제에서 선보인 작품 가운데 가장 훌륭한 작품으로 <데블스 배스>를 꼽는데, 이 영화 또한 한국에 정식 개봉기회를 2년째 잡지 못하고 있다. 장르성 강하다는 말은 반대로 풀자면 다수 대중이 아닌 소수 마니아에게 호소한다는 뜻과 다르지 않다. 상업적 성공을 바라는 수입배급사의 선택을 받기가 쉽지 않은 이유다(관련기사: 자살할 수 없어 살해를 선택한 자들 https://omn.kr/29iga).

내 이름은 스틸컷
내 이름은스틸컷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부천의 선택 받은 '내 이름은'의 가치

'찾아가는 동네 영화관'은 시민사회, 나아가 대중일반과 동떨어져 있다는 평가로부터 탈피하기 위한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의 시도다. 한편으로는 과거 영화를 다시 상영하는 섹션을 통해 예산을 절감하는 효율 또한 있다. 올해 총예산이 65억 원 규모로, 전주국제영화제를 제칠 만큼 규모를 갖춘 이 영화제가 유의미한 해외 작품 발굴이 부진한 상황에서 철 지난 영화를 다시 트는 섹션을 늘려가는 것이 타당하냐는 비판에도 이유는 있을 터다. 그러나, 또 바로 그런 이유로 더 넓은 공감과 이해를 구하는 작업이 간절하기도 하다.

<내 이름은>은 올해 '찾아가는 동네 영화관'에서 소개된 33편의 작품 가운데 하나다. '사랑이 머문 자리', '영화의 이름으로', '단편의 넓이와 깊이'로 구분된 세 개 섹션 가운데 '사랑이 머문 자리'에 자리했다. 영화제는 '가족에 대한 사랑, 동료애, 우정 등 우리 삶 속 다양한 형태의 사랑을 담은 영화들을 만나는 섹션'이라며 '마음을 울리는 따뜻한 이야기 속에서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되새겨 본다'고 그 의미를 설명했다.

작품은 수미상관의 형식을 갖췄다. 영화가 도입부터 그를 예고하는데, 사연 많아 보이는 할머니가 제주도 보리밭 가운데서 춤사위를 보이는 것이다. 사연 있어 봬는 이의 동작을 보인단 건 지금부터 그 사연을 풀어내겠단 뜻이다. 그리하여 모든 사연을 이해했을 땐 달리 보이도록 하겠단 것이다. 수미상관의 기본, 같은 장면을 달리 바라보도록 함을 목표하겠단 선언이다. 그로부터 영화는 보리밭에서 춤을 추는 여자 최정순(염혜란 분)의 이야기를 펼친다.

내 이름은 스틸컷
내 이름은스틸컷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폭력은 얼마나 쉽게 대물림되는가

주지하다시피 제주 4·3사건을 다룬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4·3사건을 정면에서 다루지 않는다. 한 걸음 떨어져 빗겨나 보이기를 택한다. 영화엔 모두 세 개 시점이 등장하는데, 하나는 관객이 사는 현재이고, 하나는 영화가 문을 연 20여 년 전 1998년이며, 다른 하나는 제주의 한 서린 1949년이 된다. 말하자면 액자 안에 액자가, 다시 그 안에 액자가 든 이중액자 구조의 문학적 설정을 빌려왔다. 오랜만에 비행기를 타고 고향인 제주로 온 중년의 인권변호사 영옥(유준상 분)이 친구 민수(오지호 분)와 소영(오윤아 분) 부부를 만나 회포를 푸는 이야기로부터 이들의 학창시절, 다시 그 너머의 비극으로 이야기가 이어진다.

중심이 되는 건 1998년이다. 영옥(신우빈 분)과 민수(최준우 분)는 열여덟 고등학생이다. 새학년 새학기 서울서 전학 온 부잣집 아들 경태(박지빈 분)가 이들 앞에 나타난다. 제주 시골마을에 오랫동안 지켜졌던 암묵적 질서가 단박에 깨진다. 경태는 양아치다. 서울서도 사고깨나 쳤다는 그가 오자마자 학교 짱을 박살낸다. 한국 문학의 명작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속 엄석대의 상위호환쯤이 될까. 제주에 큰 카지노를 짓는 사업가의 아들인 데다 주먹도 잘 쓰는 경태에게 누구도 감히 대응할 수 없다. 경태는 영옥을 반장으로 앉혀 반을 제 마음대로 움직이는 한편, 꼿꼿하여 제 뜻을 따르지 않는 민수를 어떻게 손봐줄까를 고민한다.

영화의 중심 줄기는 1998년 고등학교 학급의 분란이다. 그 시절 남학교는 법과 질서는 멀고 주먹은 가까운 수컷들의 장이다. 경태는 먹이사슬의 가장 위에 있는 포식자다. 군림하고 세를 과시하길 즐기는 그는 제주에 오자마자 겪었던 제주 양아치들의 질서를 그대로 학교 안에 구현한다. 다툼이 생기면 번갈아 따귀를 치도록 하는 일, 그 흔하고 적나라한 폭력적 순간이 학급 안에서도 질서로 자리한다. 영화는 초반 경태가 겪은 제주 당구장에서의 싸움과 이로부터 가져온 학급 안에서 동급생끼리 따귀를 때리도록 하는 일을 통해 폭력이 얼마나 쉽게 대물림되는지를, 또 시대가 얼마만큼 폭력적인가를 드러낸다.

내 이름은 스틸컷
내 이름은스틸컷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제주의 비극과 오늘을 잇는 방식

절친했던 영옥과 민수의 관계가 경태로 인해 균열이 간다. <내 이름은> 속 1998년의 주된 이야기는 힘으로 군림하는 압제자와 그에 대항하지 못하는 소시민들, 그러나 마침내 일어나는 혁명적 극복까지의 서사가 차지한다. 30년 쯤 늦어버린 청춘영화적 서사가 오늘에 이르러 의미가 있는지를 물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이는 제주의 비극으로 이어가기 위한 장치일 뿐, 그 이상이 아니다.

영옥에게는 엄마 정순이 있다. 엄마가 아니라 할머니처럼 보이는 늘그막한 정순이지만 영옥에겐 더없이 좋은 엄마다. 온갖 고생을 마다 않고 영옥을 길러낸 정순은 1998년 제 인생에서 전기가 될 변화와 마주한다. 서울에서 정신과 의사 희라(김규리 분)가 새로 오며 담당의가 바뀌면서부터다. 햇살 찬란한 날이면 해리증상이 일어나 일상생활을 하지 못하는 정신질환자로 약을 타야만 하는 정순에게 희라는 새로운 치료법을 제안한다. 최면을 통해 문제의 원인에 다가서보자는 것. 그로부터 평생 알지 못했던 가려진 기억이 펼쳐진다. 영화가 마침내 이르고자 하는 것이 정순의 삭제된 기억이다.

요컨대 영화는 정순이 차츰 제 삭제된 기억을 향해 나아가는 여정으로 꾸려진다. 그 과정에서 정순과 그 아들인 영옥의 이야기가 병렬적으로 펼쳐진다. 서로 별개처럼 보이는 두 개의 이야기가 어느 순간 접점을 갖는 과정은 그대로 영화의 승부수가 된다. 그 과정이 조금쯤 감상적이며 진부하게 연출되긴 하지만, 그 발상만큼은 무시 못할 힘이 있다. 무엇보다 병렬적으로 자리한 두 개의 이야기, 정순의 기억찾기와 영옥의 항거하기가 모두 극적 재미를 갖고 있어 다소 평이한 연출에도 집중력을 유지할 수 있는 완성도를 가졌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포스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포스터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판타스틱영화제는 과연 판타스틱한가

'4·3사건의 비극성을 어떻게 표출하는가'는 영화의 핵심적 고민이었을 테다. 영화가 학교폭력이며 기억찾기로부터 출발한 게 아니라 역사적 사건을 재조명하고 알리며 그 의미를 환기하는 데 있음이 명확하지 않은가. 감독은 정면에서 문제를 다루지 않기를 택하였다. 그는 일견 현명한 선택이다.

영화 속 영옥의 어린시절, 그러니까 1998년은 한국이 막 기억 찾기를 시작한 때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 뒤 국민의 정부가 4·3 특별법을 추진하고 그 결과로써 과거사 진상규명 및 노무현 대통령의 사과까지 이어지게 된 때문이겠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은 멀었고 오래 닫혀 석화된 피해자들의 입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영화 속 정순의 기억 찾기가 결코 만만치 않은 것처럼, 한국사에서도 4·3의 기록은 빛 받는 곳에선 삭제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덮여 있다 해서 그 고통이, 비극이 어찌 사라질 수 있을까. 정순의 해리증상이 수시로 올라오는 것처럼. 1998년 정순의 기억찾기가 국가의 과거사 다시보기와 그토록 절묘하게 맞닿는다.

올해 4월 작은 규모 개봉에도 22만 관객을 동원하며 화제를 일으킨 <내 이름은>이다.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는 이 작품을 '찾아가는 동네 영화관'이란 이름으로 부천시민 앞에 내보였다. 영화제 상영관이 부천시청 인근 지역에 집중돼 있어 원도심 주민들에게도 행사를 함께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요구에 응답한 결과다. 다만 이 같이 선정한 작품이 과연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본연의 색깔과 부합하느냐는 의문은 남는다. 어차피 극장 등 상영공간을 찾아 작품을 보는 관객들은 이 영화가 아니라도 영화를 볼 수 있는 환경에 있다. 그들에게 영화제 딱지가 붙은 이 영화가 주는 감상은 무엇일까. 그 감상은 과연 판타스틱한가. 내가 묻고픈 게 바로 이것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BIFAN 내이름은 정지영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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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