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초롬 안무가 프로필
옥상훈
함초롬은 한국무용으로 춤을 시작한 뒤 중학교 3학년 때 현대무용으로 방향을 바꿨다. 안무와 연출을 오가며 자연과 과학, 철학과 사회현상을 몸의 언어로 연결해왔다. '코스모스인아트'에서는 움직임을 영상과 소리, 다양한 물성과 결합하며 무대의 경계를 넓혀갔다.
그는 자신을 "세상을 관찰하다 못해 호기심이 넘치는 창작자"라고 소개한다. 궁금한 것이 생기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다. 잠시 멈춰 사물을 들여다보고, 자료를 찾으며 자신만의 연구를 시작한다. 그렇게 모은 기억과 질문은 머릿속 도서관에 한 권씩 꽂힌다. 작품을 만들 때면 오래전에 바라본 사물과 나눴던 대화, 어느 날 읽은 문장과 미처 풀지 못한 질문을 다시 꺼낸다.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물질과 철학을 연결하고, 그 사이에서 공통점과 차이점을 발견하는 것이 그의 창작 방식이다.
2021년 국제현대무용제 모다페(MODAFE)에서 선보인 〈성숙〉도 그 연장선이다. 작품은 나약함과 강인함이 한 몸 안에서 충돌하고 공존하는 과정을 다뤘다. 신작 〈K I W A〉에 등장하는 불안한 개인과 서로를 지탱하는 몸 역시 갑자기 생겨난 질문이 아니다. 존재와 성장, 관계에 대한 오랜 탐구가 기와라는 물성을 만나 새로운 형태를 얻은 셈이다.
한때 그는 누구나 인정할 만한 '잘난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성공한 컨템포러리 작품의 공통점을 분석하고, 세련되고 트렌디한 결과를 만들어내는 데 관심을 기울였다. 작품은 자신의 역량과 존재를 증명하는 수단에 가까웠다. 그 방향을 바꾼 작품이 2023년의 〈Mind the Gap〉이었다. 당시 함초롬은 세대 차이로 인한 혼란을 겪고 있었다. 이해되지 않는 일이 생기면 어떻게든 이유를 찾으려는 사람이었지만, 자신보다 위아래 세대가 바라보는 세계는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제자가 스승을 무용수로 섭외하는 다소 발칙한 선택을 했다. 중요한 것은 결과보다 과정이었다. 잘 만든 작품을 보여주는 것보다 다른 세대가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를 알고 싶었다. 작업 기간 내내 스승과 얘기를 나눴다. 때로는 또래 세대를 대신해 "우리 세대는 이런 생각을 한다"고 설명하는 변호인이 됐고, 스승 세대의 이야기를 들은 뒤에는 그것을 동료들에게 전달했다.
"다른 사람을 제 시선 안에 넣고 함부로 해석하지 않게 됐어요. 그 사람은 왜 그렇게 바라보는지 더 물어봤죠. '나'를 중심으로 움직이던 시야에 비로소 '우리'가 보이기 시작했어요."
자신을 증명하려는 창작은 그렇게 다른 존재와 함께 살아가는 방식을 묻는 작업으로 옮겨갔다.
할머니의 얼굴에서 발견한 진심
▲함초롬 안무가의 '춘자' 공연
잔나비와 묘한계책(송우람)
〈Mind the Gap〉에서 시작된 변화는 2025년 〈춘자〉에서 더욱 깊어졌다. '춘자'는 함초롬 외할머니의 이름이다. 작품은 외할아버지의 장례식 날 외할머니와 나눈 대화에서 시작됐다. 외할머니는 함초롬 부부가 왜 아직도 아이를 갖지 않는지 물었다. 요즘 젊은 사람들은 왜 아이를 낳지 않는지 궁금해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때 함초롬은 기분이 좋지 않았다. 개인의 선택과 희생을 쉽게 말하는 전형적인 세대의 간섭처럼 느껴졌다. 그러다 고개를 들어 외할머니의 얼굴을 마주했다.
그 순간 같은 말이 다르게 들렸다. 외할머니는 가정의 소중함과 아이를 키우는 기쁨을 강요하고 있지 않았다. 자신이 살아오며 경험한 행복을 손녀에게 권하고 있었다. 맛있는 것을 먼저 먹어본 사람이 "너도 한번 먹어보라"고 하듯 환한 얼굴로 자신의 기억을 건네고 있었다.
"오해하고 있던 사람이 오히려 저였어요. 할머니는 희생을 강요하려던 것이 아니었어요. 자기가 알고 있는 행복을 제게 권하고 있었던 거죠. 그걸 알아차리는 순간 부끄러워졌어요."
이 경험은 말의 내용만큼이나 말을 건네는 사람의 삶과 표정을 바라보게 했다. 같은 문장도 누가, 어떤 시간을 살아온 뒤, 어떤 마음으로 말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의미가 될 수 있었다.
〈춘자〉는 출산을 둘러싼 세대 갈등을 옳고 그름의 문제로 나누지 않았다. 가족과 돌봄, 출산과 비출산을 선택한 사람들의 서로 다른 삶을 무대 위에 나란히 놓았다. 공연 중간에는 관객에게 '엄마월급제가 필요하다면 얼마가 정당한가'라는 질문도 던졌다.
미혼자와 기혼자, 아이를 낳아본 사람과 아이를 성인까지 키운 사람의 답은 모두 다르다. 그러나 함초롬은 어느 하나만 옳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결론은 달라도 각자의 이유에는 그만한 삶이 놓여 있었다. 그는 여기서 예술이 지닌 힘을 본다. 누군가에게 정답을 주기보다 자신과 비슷한 고민을 하는 사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하는 힘이다. 공연을 보던 관객이 "맞아, 나도 그랬어"라고 말하는 순간 무대와 객석 사이에는 설명하기 어려운 위로가 생긴다.
한 장의 기와가 지붕이 되기까지
▲함초롬 안무가의 '춘자'
잔나비와 묘한계책(송우람)
〈K I W A〉는 전통 소재인 기와의 아름다움을 보여주기 위한 작품이 아니다. 함초롬에게 기와는 지금을 살아가는 인간의 관계를 설명하는 구조이자, 빠름과 효율의 시대 속에서 잊혀져 가는 '수고로움'을 다시 바라보게 하는 물성이다.
흙에서 시작된 기와는 처음부터 단단한 형태가 아니다. 흩어진 흙은 사람의 손과 발, 몸의 압력을 지나 하나의 기왓장이 된다. 그렇게 만들어진 기와 한 장은 흙보다 단단해 보이지만, 동시에 쉽게 깨질 수 있는 연약한 개별 존재이기도 하다. 그러나 기와는 서로의 곡선과 무게를 따라 겹쳐지고 맞물릴 때 비로소 지붕이 된다. 한 장으로는 비와 바람을 막을 수 없지만, 여러 장이 서로를 누르고 받치며 이어질 때 누군가를 보호하는 구조가 된다.
그는 이 구조가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 닮았다고 본다. 과학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다양한 세대가 같은 시대를 살아가지만, 사람들은 오히려 더 작은 단위로 나뉘고 있다. 팬데믹과 전쟁처럼 개인의 힘으로는 어찌할 수 없는 사건도 계속된다. 그런 시대를 버티면서 미래를 꿈꾸기 위해서는 서로 기대고 받치는 구조가 필요하다. 빠르고 자극적인 정보가 주목받는 시대일수록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중심을 견디는 존재의 중요성도 커진다.
빠른 답보다 늦은 망설임
〈K I W A〉에는 인공지능 시대에 인간이 무엇으로 구별될 수 있는지를 묻는다. 그가 주목한 감각은 '망설임'이다. 이는 김애란 소설가의 인터뷰에서 마주한 말처럼, 타인의 슬픔을 다 알 수 없어 말을 삼키는 시간, 혹여 상처를 줄까 봐 대답을 늦추는 시간, 나의 선택이 다른 사람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 지 한 번 더 헤아리는 시간에 가깝다.
정확하고 빠른 답이 능력으로 평가되는 시대에 그는 늦게 대답하는 인간을 바라본다. 망설임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 여러 가능성을 살피는 적극적인 시간이다. 함초롬은 '따뜻한 망설임'이라는 표현이 모호하다면 이를 '수고로움'이라고 부르고 싶다고 말했다. 자신의 선택이 불러올 결과를 여러 방향에서 바라보는 수고, 상대의 처지를 한 번 더 생각하는 수고, 완벽한 답이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면서도 앞으로 나아가려는 수고다.
"인간은 늘 옳은 선택만 하면서 살 수 없잖아요. 성공을 통해서도 성장하지만 실패를 통해서도 성장하고요. 완벽해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기준 안에서 조금씩 완전해지려는 과정이 인간다움이라고 생각해요."
그에게 '기계 같다'는 말은 흠 하나 없이 완벽한 대상을 바라볼 때 사용하는 표현이다. 반대로 '인간적이다'라는 말은 모순과 실패를 품은 채 자신의 방향을 찾아가는 존재에게 붙는다.
오래 씹어야 맛이 나는 작품
▲한초롬 안무가의 'Mind the gap'
잔나비와 묘한계책(송우람)
제목은 〈KIWA〉가 아니라 〈K I W A〉다. 무슨 차이가 있을까. 알파벳 사이에 일부러 간격을 두었다. 관객은 K, I, W, A를 하나씩 바라본 뒤 낯선 영어 단어처럼 발음하고, 그제야 '기와'라는 우리말에 도착한다. 처음에는 물음표였던 제목이 발음하는 순간 느낌표로 바뀐다. 함초롬은 공연에서도 비슷한 경험이 일어나기를 바란다. 무대 위 장면들이 처음에는 낯설고 분리돼 보이지만 어느 순간 서로 연결되면서 관객 안에서 하나의 의미가 되는 것.
그는 5초 안에 다음 장면으로 넘어가는 숏폼 시대에 '오래 씹어야 맛이 나는 작품'을 만들고 싶단다. 이전 작품에서 사용했던 빠른 장면 전환도 줄이고, 하나의 장면이 오래 이어지는 것처럼 보일 만큼 집요하게 시간을 붙잡아볼 생각이다. 이것은 시간의 쌓임을 가시화 하여 오래 견디는 몸의 노래를 보여주고자 하는 시도다.
지난 7월초 춘천에서 진행된 '아르코 댄스 업라이즈' 창작워크숍에서는 서울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자연의 소리와 질감을 만나고, 기와와 연결될 새로운 물성을 오래 관찰했다. 흙과 돌에서 채집한 소리, 실제 이끼, 무용수들의 호흡과 속삭임, 창작과정을 기록한 영상도 작품 안으로 들어온다. 본 사업에 선정된 다른 안무가들이 몰입을 만들어내는 방식에 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도 그에게는 창작의 일부가 됐다. 다른 창작자의 방식을 듣고 자신의 고민을 건네는 과정 역시 혼자서는 만들 수 없는 또 하나의 지붕이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몸은 쉽게 지치고 흔들린다. 그러나 한 몸이 다른 몸의 무게를 받아들이는 순간 이전에는 없던 움직임이 만들어진다. 함초롬이 〈K I W A〉에서 보여주려는 것은 거창한 결론이 아니다.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면서도 곁을 떠나지 않는 몸, 답을 서두르지 않고 한 번 더 망설이는 사람, 상대의 무게를 없애는 대신 함께 견딜 수 있는 자세를 찾는 관계다.
어쩌면 공존은 서로를 가볍게 만들어주는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각자의 무게를 인정한 채, 어쩌면 수고롭게도 작은 개인이 만나 함께 무너지지 않을 모양을 찾아가는 일에 가깝다. 한 장일 때는 위태로웠던 기와가 다른 기와를 만나 지붕이 되는 것처럼.
▲함초롬 안무가 프로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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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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