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승 안무가 프로필
옥상훈
폭력을 무대에 올리는 일은 쉽지 않다. 과거에 벌어진 일을 그대로 재현하면 출연자가 폭력적인 상황에 다시 노출될 수 있다. 반대로 상징과 은유에만 기대면 실제 고통을 아름다운 장면으로 소비할 위험이 있다.
누군가의 증언을ㅗ 어디까지 사용할 것인지, 익명성을 어떻게 지킬 것인지도 고민해야 한다. 무대에 서는 퍼포머의 동의와 안전, 작품 안에 존재하지 않는 피해자를 대신해 말하는 문제도 피할 수 없다. 이세승은 아직 정답을 찾지 못했다고 했다.
"정답은 없고 오답은 분명한 문제 같아요. 쉽지 않습니다."
작품의 주제가 정의롭다고 해서 창작 과정까지 저절로 윤리적이 되는 것은 아니다. 폭력을 비판하면서 무용수의 몸을 안무가의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한다면 작품은 스스로 던진 질문과 충돌한다.
"움직임을 개발하고 무대에서 선보일 몸짓을 찾아가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작업의 과정이 걸치고 있는 몸과 몸짓의 윤리성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해요."
그가 '아르코 댄스 UP:RISE' 제작진과 동료 안무가들에게 묻고 싶은 것도 이 지점이다. 각자는 주제를 어떻게 구체화하는지, 무용수들과 어떤 방식으로 협의하는지, 안무가의 권한과 무용수의 동의 사이에서 어떤 방법을 찾고 있는지 나누고 싶다고 했다.
〈군기의 역사〉는 공연으로 끝나지 않을 예정이다. 그는 동료 무용가들의 경험과 전문가들의 연구를 모아 개인의 기억을 공동의 역사로 기록하는 책도 구상하고 있다. 그가 쓰려는 역사는 누가 더 힘들었는지를 겨루는 '라떼는 말이야'식 무용담이 아니다. 영광스러운 순간과 성공한 사람만 기록하는 역사도 아니다.
"역사는 영광스러웠던 순간들로 점철되기 쉬워요. 하지만 어두웠던 부분도 존재했다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어요. '좋은 게 좋은 거지'라고 말하며 묻어버리기보다는 껴안고 가야 해요."
그가 말하는 '껴안는다'는 것은 잘못을 덮거나 없던 일로 만들자는 뜻이 아니다.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며 그 흔적이 현재의 몸과 관계 속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는지 확인하자는 말이다. 그 질문은 결국 한 사람의 몸에서 시작한다.
나는 왜 공연장에 가기 싫은가. 누군가를 만나기도 전에 왜 몸부터 긴장하는가. 나는 무엇을 배우며 무용수가 됐고, 그 집단에 남기 위해 무엇을 말하지 못했는가.
개인의 질문은 학교와 학원으로, 스승과 제자의 관계로, 선배와 후배의 질서로 이어진다. 그리고 마침내 한국 무용계는 어떤 춤추는 몸을 만들어왔는가라는 질문에 도착한다. 춤은 공연이 끝나면 사라진다. 그러나 춤을 만든 제도와 관계의 흔적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군기의 역사〉가 무대 위로 불러내려는 것은 이미 끝난 과거가 아니다. 지금도 인사하는 자세와 낮아지는 목소리, 이유를 묻지 않는 침묵, 공연장으로 향하기를 망설이는 마음속에서 이어지고 있는 역사다.
이세승 안무가는 그 역사를 다시 몸 위에 올리려 한다. 폭력을 재현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이상 같은 몸을 만들어내지 않기 위해서다. 이제 무용계가 답할 차례다.
"우리는 앞으로 어떤 몸을 춤추게 할 것인가?"
한편, '아르코 댄스 UP:RISE'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가 아르코·대학로예술극장에서 진행한 무용 기획·제작 프로그램으로 중견 무용 창작자의 장작 영역을 확대하기 위해 마련됐다. <군기의 역사>를 포함해 선정된 작품들은 오는 11월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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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