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스타

본문듣기

주먹 휘두르는 김부장이 주는 쾌감, 다른 아빠들은 어쩌나

[리뷰]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

26.07.07 11:02최종업데이트26.07.07 11:02
원고료로 응원
납치된 딸을 구하기 위해 은퇴한 특수요원 아버지가 다시 총을 든다. 〈테이큰〉이 각인시킨 이 구출극의 골격은 이제 낯설지 않고 화제의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도 그 계보 위에 서 있다. 이런 주인공에게 힘의 결핍은 없다. 짓밟힌 약자가 이를 악물고 힘을 길러 가해자를 무너뜨리던 '성장과 설계'의 사적 응징극과 달리, 김부장(소지섭 분)은 처음부터 완성된 전사다. 시청자가 지켜보는 것은 그가 강해지는 과정이 아니라 감춰 둔 힘을 푸는 과정이다.

이 변화는 관객의 자리가 달라졌음을 보여준다. 힘을 기르며 눈물을 삼키는 지난한 빌드업을, 이제 많은 시청자는 굳이 다 통과하고 싶어 하지 않는다. 현실의 정치와 불황 속에서 이미 충분히 지연되고 유예된 일상을 견디는 이들에게 허구의 시간마저 인내를 요구하는 것은 가혹하다. 이야기 안에서만큼은 지체 없는 해방을 바라는 마음은 조급함이라기보다 지친 사람의 정직한 요청에 가깝다.

그러나 〈김부장〉은 이 즉각적 쾌감에만 머물지 않는다. 힘의 결핍이 없다고 해서 이 남자에게 결핍이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가 가지지 못한 것은 힘이 아니라 신분의 자유다. 압도적 무력을 지녔으면서도 정작 제 이름 하나 온전히 갖지 못한 자, 그것이 김부장이다. 딸의 평범한 일상을 위해 능력을 봉인하고 소시민의 틀에 스스로를 가둔 것도 그 부자유의 다른 얼굴이다. 숨긴 힘을 꺼내는 이야기처럼 보이지만 봉인되어 있던 것은 힘이 아니라 이름이었다. 그리고 이 차이야말로 〈테이큰〉의 익숙한 골격 위에서 이 작품이 자기만의 깊이를 얻는 지점이자, 이 열광의 속내를 여는 열쇠다.

봉인된 이름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SBS

그 이름의 정체는 김부장의 내력에 있다. 그는 북한이 길러낸 특수공작원이었다. 남파되어 임무를 수행하다 작전이 어그러진 뒤, 그를 보낸 조국에게 버림받고 대한민국으로 귀순한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쪽을 위해 북으로 침투하는 북파공작원이 된다. 한 몸으로 남과 북 양쪽의 공작원을 살아낸 것이다. 지금도 그를 쫓는 것은 그를 버린 북한 대남 조직이고, 그를 감시하는 것은 그를 거둔 대한민국 특임국이다. 남과 북 어느 쪽도 그를 온전히 자기편으로 두지 않는다. 그 오랜 세월 그를 부른 것은 이름이 아니라 '66'이라는 코드명이었다.

그러니까 김부장의 삶은 '평범한 가장의 위장'이기 이전에 경계인의 은신이다. 그가 넥타이를 매고 저축은행 부장으로 살아가는 것은 소시민 흉내가 아니라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못한 자가 택한 마지막 국적, 곧 가정을 지키는 일이다. 죽은 아내 림유진(서지혜 분)이 남긴 유언은 그래서 이 드라마의 진짜 열쇠다. "과거는 잊고 민지의 아빠로 살아 달라." 이 말이 봉인한 것은 그의 무력이 아니라 그의 내력, 그의 코드번호, 그의 지워진 이름이다.

여기서 이 작품 고유의 축이 선다. 국가가 호명한 폭력과 아버지가 선택한 폭력. 전자는 그를 소모품 번호로 만들었고 후자는 그를 처음으로 한 사람의 이름, 곧 누군가의 아빠로 만들었다. 드라마가 그의 찢긴 양복 아래 흉터를 첫 회 최고의 장면으로 밀어 올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흉터는 지워 달라던 과거가 몸에서는 결코 지워지지 않았음을 말한다.

물론 표면의 쾌감은 익숙하다. 평범한 저축은행 부장이 정체를 드러내고 적을 궤멸시키는 순간, 웹소설이 '힘을 숨긴 최강자'라 부르는 그 카타르시스가 작동한다.

하지만 이 작품에는 그 장르 공식만으로는 다 담기지 않는 결이 있다. 김부장의 각성은 '내가 사실 제일 셌다'는 자기과시가 아니다. 그것은 잊기로 서약한 과거를 스스로 파기하는 행위이고 되찾은 힘만큼 다시 쫓기는 몸이 되는 선택이다. 딸을 구하려 봉인을 풀 때마다 그는 지켜 온 위장을 잃고 유진에게 한 약속을 어긴다. 해제는 승리가 아니라 대가다. '힘숨찐'의 쾌감 아래에는 청산할 수 없는 과거를 짊어진 남자의 자기 파괴가 깔려 있다. 이 이중성을 보는 순간 드라마는 통쾌한 활극에서 한 겹 더 내려간다.

이 모든 폭력의 방아쇠는 학교폭력이다. 가해 학생의 아버지 주강찬(주상욱 분)은 자기 딸의 범죄를 덮으려 권력과 조직폭력을 동원해 김부장 부녀를 벼랑으로 민다. 특권이 처벌을 회피하는 방식, 가진 자가 제도를 사병처럼 부리는 풍경. 이것은 지금 우리 사회가 매일 목격하는 장면이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의 카타르시스와 그 위험이 함께 드러난다. 학교도 경찰도 내 아이를 지켜 주지 못한다는 감각이 팽배한 시대에 〈김부장〉은 '압도적 무력으로 내 울타리를 직접 지킨다'는 판타지를 정확히 겨냥한다. 이 드라마가 주는 쾌감의 정체는 정의의 실현이라기보다 제도를 건너뛴 사적 응징에 가깝다.

다만 이 통쾌함에는 그늘이 따른다. 김부장이 이길 수 있는 것은 그가 예외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그만큼 강하지 못한 대다수의 '민지'들은 어떻게 되는가. 이 판타지는 그들에게 잠깐의 대리만족은 될지언정, 현실의 방패가 되어 주지는 못한다. 활극의 쾌감이 짜릿할수록 그 쾌감이 닿지 않는 자리도 함께 넓어진다.

연대의 그늘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
SBS 금토드라마 <김부장>SBS

이 작품이 건드린 정서에는 또 다른 결이 있다. 김부장은 혼자 싸우지 않는다. 태권도장을 꾸리던 오랜 친구 성한수(최대훈 분)와 옛 동료 박진철(윤경호 분)은 평범한 이웃으로 살아가던 중, 그를 위해 다시 무기를 잡는다. 각자도생에 지친 시대에 흩어져 있던 백전노장들이 누군가를 지키자며 다시 뭉치는 '아빠 연합'의 그림은 묘한 향수를 자극한다. 개인이 개인을 지켜 줄 수 있다는 그 온기는 분명 따뜻하다.

다만 그 온기는 위로인 동시에 체념이기도 하다. 이 연대는 아무나 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범상치 않은 힘을 숨긴 채 살아온 소수만이 서로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 앞서 물었던, 특별하지 않은 대다수의 '민지'들에게는 이런 연대조차 닿지 않는다. 바꿀 수 없다면 초월적 개인들의 연대에라도 기대겠다는 마음, 그 안온함의 이면에는 공적 세계에 대한 깊은 냉소가 웅크리고 있다.

〈김부장〉은 잘 만든 활극이다. 평범한 가장의 얼굴과 봉인을 푼 자의 얼굴 사이를, 소지섭은 과장 없이 오간다. 봉인과 해제가 교차하는 리듬도 헐겁지 않다. 그러나 이 드라마의 쾌감 아래에는 통쾌한 위로만으로는 다 덮이지 않는 질문이 남는다.

봉인되어 있던 것이 힘이 아니라 이름이었다면, 이 이야기의 진짜 주제는 통쾌한 응징이 아니라 어느 국가에도 속하지 못한 자가 마침내 '아빠'라는 이름 하나로 서려는 안간힘이다. 그리고 그가 그 이름을 지키려 다시 무기를 들 수밖에 없었다는 사실, 법도 학교도 국가도 그를 대신해 주지 않았다는 그 사실이야말로 이 신드롬이 위로가 아니라 비명임을 말해 준다.

지연된 정의가 정의가 아니라는 말은 맞다. 그러나 개인의 주먹으로 앞당긴 정의 또한 정의가 아니다. 그것은 정의가 사라진 자리를 잠시 데워 주는 불씨일 뿐이다. 우리가 김부장에게 열광하는 동안 정작 물어야 할 것은, 왜 이 사회에는 이토록 많은 김부장이 필요해졌는가다.
덧붙이는 글 이 기사는 필자의 브런치(@4indie)에도 실립니다.
김부장 소지섭 최대훈 윤경호 드라마리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숨겨진 행간을 걷습니다 |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나만의 답을 찾습니다 | 시선이 머문 자리에 색이 피어납니다 | 기사 너머의 풍성한 색깔들, 브런치에서 확인하세요 >> https://brunch.co.kr/@4in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