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 <맨 끝줄 소년> 스틸컷
넷플릭스
드라마 제목 <맨 끝줄 소년>은 처음에는 학생 이강을 가리키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끝까지 보고 나면 '맨 끝줄'에 앉아 있었던 사람은 오히려 허문오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명문대 교수라는 지위도, 자신을 사랑하는 아내도 그의 결핍을 채워 주지 못했다. 그는 끝내 자신의 삶에서 한 번도 주인공이 되지 못했다고 믿는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강을 통해 잊고 있었던 존재, 김수훈의 삶을 다시 들여다보게 된 순간 허문오는 자신이 갖지 못한 첫사랑과 가정, 작가로서의 성공과 명성을 모두 쥐고 있는 김수훈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힌다. 이강의 과제 속 이야기는 허문오에게 자신을 특별하게 만들어 줄 처음이자 마지막 기회처럼 다가온다. 그 순간부터 그는 이야기를 읽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의 결핍을 증명해 줄 가능성에 매달리는 사람이 된다.
아버지의 상태가 좋지 않아 요양원에 와 있다는 이강의 연락에도 허문오는 안부보다 먼저 "야, 우리 이야기는 어떻게 하고?"라고 묻는다. 학생을 걱정하는 스승의 역할보다 다음 이야기를 듣고 싶은 욕망이 앞선 것이다. 이강과 연락이 끊기자 그의 일상도 흔들리기 시작한다. 오랜만에 걸려온 이강의 전화에 "과제는 언제 낼 수 있는데?"라고 재촉하고, 수업 중에도 이강의 연락만을 기다리다 "과제 제출했습니다"라는 메시지가 도착하자 이유도 설명하지 않은 채 휴강을 선언한다.
평범한 현실과 특별한 작품 사이에는 메울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허문오는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하고 빈자리를 메우려다 자신이 지켜야 할 선을 넘고 만다. 학생 한 명에게 특별 수업을 제안하고, 다음 원고를 위해 경진대회 문제를 빼돌리는 등 넘지 말아야 할 선을 하나씩 넘는다. 그리고 그 선택은 결국 그의 평범한 삶마저 무너뜨린다.
가치 있는 작품이 되려면 평범함을 넘어 특별해야 한다.
<맨 끝줄 소년>은 누군가에게는 별것 아닌 삶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인생을 뒤흔드는 서사가 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이강은 허문오에 의해 '그다지 가치없는 글감'이 되어 버린 자신의 삶'에 대한 좌절감을 원동력 삼아 명문대에 입학한다. 반면 허문오는 김수훈이 추천사를 거절하며 던진 자신의 재능을 폄하하는 한마디를 끝내 떨쳐 내지 못한 채 두 번째 소설을 완성하지 못하는 실패한 소설가로 남는다.
허문오는 특별한 이야기를 원했던 것이 아니라 특별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어쩌면 그 차이가 이 작품이 말하는 결핍과 욕망의 본질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맨 끝줄 소년>은 이강을 통해 우리에게 질문한다.
"당신의 이야기는 어떻습니까. 당신의 이야기는 특별합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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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여기, 우리의 힘을 믿으며 진짜 나를 찾기 위해 읽고 쓰는 사람. 미국 동부에 머무르며 한 국제기구에서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