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즈 <맨 끝줄 소년>장면
넷플릭스
허문오의 아내 조현숙(진경)은 이 시리즈에서 가장 현실적인 인물이다. 그녀의 직업은 심리상담사다. 다른 사람의 상처를 이해하고, 부부 갈등을 상담하는 일을 한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남편은 점점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간다. 자신과 남편의 부부관계는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점점 구렁텅이로 빠져든다. 해결해보려 애를 쓰지만, 돌아오는건 냉담한 허문오의 반응 뿐이다. 이유도 모른채 남편에 의해 바닥으로 내던져지는 현숙의 상실감은 커져간다.
처음에는 단순한 집착처럼 보였던 허문오의 변화는 시간이 갈수록 가족의 일상을 무너뜨린다. 그는 눈앞의 사람보다 이야기 속 인물들에게 더 많은 감정을 쏟고, 현실보다 이야기의 다음 장면을 더 궁금해한다. 심지어 앞에서 같이 식사를 할 때도, 그는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 앞에 앉은 사람의 말을 무시해버린다. 현숙은 그런 남편을 붙잡아 보려 하지만, 이미 허문오의 마음은 현실이 아니라 이야기 속으로 깊이 중독되어 버렸다.
어쩌면 조현숙은 이 작품이 가장 안타깝게 바라보는 인물인지도 모른다. 이야기에 중독된 사람은 자신만 무너지는 것이 아니다. 그 주변 사람들도 함께 소외된다. 결국 이야기는 현실을 풍요롭게 만들기도 하지만, 현실을 외면하게 만들기도 한다. 현숙이 느끼는 상실감은 남편을 잃어버린 감정이 아니라, 현실을 잃어버린 사람을 바라보는 슬픔처럼 다가온다.
이야기는 인간을 어디까지 끌고 갈 수 있을까
<맨 끝줄 소년>은 단순한 미스터리 스릴러가 아니다. 이 작품은 '이야기'가 무엇이고, 우리는 왜 '이야기'에 집착할 수 밖에 없는지를 해부한다. 우리는 왜 이야기를 만들고, 왜 이야기에 빠져들며, 왜 그것을 현실보다 더 믿게 되는가. 시리즈는 그 질문을 허문오와 이강이라는 두 인물을 통해 끝까지 밀어붙인다. 이야기가 주는 힘은 이 시리즈 내내 끝까지 강력하게 이어진다.
무엇보다 놀라운 건 배우들의 연기다. 최민식은 허문오라는 인물이 조금씩 무너지는 과정을 압도적인 설득력으로 보여준다. 권위적인 교수에서 시작해 자신의 자존심을 하나씩 내려놓고, 결국 이야기 앞에서 한 명의 독자가 되어버리는 변화는 그의 눈빛과 표정만으로도 충분히 전달된다. 최현욱 역시 전혀 밀리지 않는다. 말수가 많지 않은 캐릭터임에도, 상대를 이야기 속으로 끌어들이는 묘한 분위기와 미소만으로 극의 긴장을 만들어낸다.
허준호, 김윤진, 진경, 한지은 역시 각자의 위치에서 이야기에 현실감을 더한다. 특히 선민희를 연기한 한지은은 진실과 허구의 경계를 흐리는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표현하며 작품의 미스터리를 더욱 깊게 만든다. 누구 하나 과하게 튀지 않으면서도, 각자의 감정을 설득력 있게 쌓아 올린다.
연출 역시 인상적이다. 시리즈는 반전이나 자극적인 사건에 집중하기보단, 이야기에 빠져드는 인간의 심리를 따라간다. 현실과 허구의 경계가 조금씩 흐려지는 과정은 관객 역시 허문오와 같은 위치에 서게 만든다. 어느 순간 우리는 이야기를 따라가는 것이 아니라, 다음 이야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되어 있다. 허문오와 같이 이강의 재미있는 이야기에 빠져 따라가다 보면, 강력한 현실이 마지막에 기다리고 있다.
<맨 끝줄 소년>이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 않다. 우리는 정말 이야기를 소비하고 있는 걸까. 아니면 이야기를 핑계 삼아, 마음속 깊이 숨겨두었던 자격지심과 열등감을 계속 꺼내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닐까. 남과 비교하며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 우리는 오늘도 또 다른 누군가의 이야기에 감정을 쏟는다. 그리고 그 이야기를 통해, 결국 가장 오래 들여다보는 것은 타인이 아니라 자기 자신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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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와 시리즈 속 감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보다,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브런치에 영화 감성 리뷰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 속 감정을 담은 첫 에세이집 《그럴 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를 출간했습니다.
레빗구미라는 이름으로,
영화가 남긴 감정과 삶의 이야기를 오래 기록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