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 편> 공연 사진
서울예술단
<신과 함께> 콘텐츠가 선택받은 이유
지난달 27일 관람한 <신과 함께>의 서사는 크게 두 축으로 이루어져 있다. 하나는 망자 '김자홍'과 그를 변호하는 국선 변호사 '진기한'의 이야기, 다른 하나는 망자를 저승으로 인도하는 '저승 삼차사(강림·혜원맥·덕춘)'와 억울하게 죽어 이승을 떠도는 '원귀'의 이야기다.
이 이야기의 근저에는 이승에서 받지 못한 보상을 저승에서 늦게라도 받아야 한다는 믿음, 이승에서의 억울함이 저승에서는 해결되어야 한다는 바람이 담겨있다. 야근과 온갖 스트레스를 견디다 간 질환으로 일찍 삶을 마감한 김자홍은 저승에서라도 보상을 받아야 하고, 원귀의 억울함은 반드시 해소되어야 한다. 그리하여 정의는 지연될지언정 언젠가 반드시 실현되어야 한다.
이승, 즉 관객이 살아가는 현실 세계에서 정의가 지연되고 있다는 개개인의 판단이 <신과 함께>라는 콘텐츠의 흥행을 만들어냈는지도 모른다.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많은 사람들이 김자홍처럼 생각한 만큼의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고, 원귀처럼 억울한 일을 당하며 살기 때문이다.
언젠가 정의가 실현된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신과 함께>는 단절보다는 연속을 택했다. 이승과 저승은 단절되지 않고 연결되어 돌고 돈다. <신과 함께>의 원형 무대는 삶이 끊어지지 않고 돌고 돈다는 걸 시각적으로 구현한 듯하다. 그렇게 뮤지컬 속 인물들은 업보는 심판을 받고, 생전 받지 못한 것은 이후 구원으로 보상 받는다.
앞서 말한 두 축의 서사는 이내 심판과 구원으로 재조립된다. 망자가 49일에 걸쳐 통과해야 하는 7개의 관문은 심판의 과정이다. 이 관문을 통과한 끝에 '잘 살았다'고 인정받는 망자에게는 구원이 허락된다. 심판을 관장하는 이는 저승 삼차사가 모시는 '염라대왕', 구원을 돕는 이는 진기한을 키운 '지장보살'이다.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 편> 공연 사진
서울예술단
사회도 심판의 대상이다
도산지옥에서는 타인의 생명을 해친 죄를 심판 받는다. 화탕지옥에서는 남의 것을 탐한 죄를 심판 받고, 한빙지옥에서는 불효의 죄를 심판 받으며, 검수지옥에서는 생전의 행실을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발설지옥에서는 타인을 속인 죄를, 독사지옥에서는 증오로 타인에게 해를 끼친 죄를, 거해지옥에서는 타인을 속여 이득을 취한 탐욕의 죄를 심판 받는다.
심판의 대상은 개인이다. 개인에게 죄를 물어 그에 맞는 벌을 내린다. 물론 저승에서도 완전히 공정한 재판은 요원한 듯하다. 어떤 법관은 할당량을 채운 이후 망자들을 다음 관문으로 통과시키고 , 변호사의 역량에 따라 재판 결과가 달라지기도 한다. 익히 알고 있듯이 김자홍이 7개의 관문을 무사히 통과할 수 있었던 건 그나마 깨끗한 삶 덕분이기도 하지만, 주인공 진기한의 탁월한 실력과 각종 묘책도 큰 몫을 했다.
저승의 사회도 삐걱대는데, 이승의 사회라고 삐걱대지 않을 이유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심판을 오로지 개인이 감당하는 건 부당해 보인다. 개인이 심판대에 올려져야 한다면, 개인이 속해있던 사회도 심판대에 올려져야 마땅하다.
필자가 생각하기에 <신과 함께>의 완성도를 높이는 건, 마지막 지옥인 거해지옥에서 사회를 심판대에 올린다는 점이다. 거해지옥을 관장하는 '태산대왕'은 김자홍의 탐욕을 질책하면서도, 탐욕을 강요한 사회 역시 지적한다. 그는 김자홍을 사회를 구성하는 톱니바퀴에 비유하며 탐욕의 죄를 덜어준다.
▲창작가무극 <신과 함께_저승 편> 공연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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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신과 함께', 저승에선 '이것'도 심판대에 올려져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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