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스클로저 데이포스터
유니버설 픽처스
영화보다 더 충격적인 현실을 안다면
스노든 사건은 사실상 미국에서 비슷한 행위가 발생할 경우 정부에 반하는 행위를 한 사람이 탈출할 길을 막는 결과를 초래했다. 미국, 심지어 2차 대전 이후의 세계질서를 대놓고 망가뜨려가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미국에 맞서 국가반역자로 공표된 이를 보호할 세력은 어디에도 없다. 망명에 망명을 이어가며 도피한 스노든조차 제 몸 둘 곳을 찾는 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수많은 나라가 미국의 압력에 굴복해 그 망명신청을 거부했다. 전쟁을 염두에 두고 있던 러시아가 아니었다면, 스노든의 운명은 달라졌을 테다.
그래서 영화는 초능력을 택한다. 팔란티어 기술을 활용한 미국 내 이민자 단속이나 베네수엘라 대통령 납치 및 이란 수뇌들의 암살에서 보듯이, 수년 전과는 비할 바 없이 발달한 기술력이 스노든과 같은 도주를 상상하기 어렵게 한다. 현 체제 안에서 다니엘과 마가렛 같은 이들이 초능력 없이 추적을 피한단 건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바로 이 지점에서 문제가 생성된다. 정부의 추적을 무위로 돌릴 만큼 대단한 초능력이 번번이 위기를 벗어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하는 것이다. 보는 이가 매순간 허탈함을 맛보는 건 자연스런 일이다. 긴박한 추적극이어야 할 것이 때가 되면 예정된 퇴로로 퇴각하는 일의 연속처럼 느껴지기 십상이다. 약속대련을 보는 듯 긴장이 팍 식는다. 현실 속 역량의 불균형을 고려한 안배가 도리어 균형이 깨진 듯한 인상을 안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다만 대중의 현실감각이 실제 현실과 상당한 격차를 갖는 까닭으로, 고심 끝에 내렸을 선택이 도리어 쉬운 선택처럼 느껴지는 것이다. 쉬운 비판인 걸 알면서도 스필버그라면 달리 풀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하는 일말의 아쉬움은 기대와 신뢰의 다른 이름이겠다.
영화는 또한 부족한 극적 긴장을 이어가기 위해 두 도망자 다니엘과 마가렛 곁에 모자란 동행을 붙인다. 소위 공포영화의 발암캐릭터를 연상시키는 이들이 탁월한 역량을 갖춘 이들 옆에서 가랑이를 잡고 늘어진다. 특히 잭슨은 1990년대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 옆 금발미녀가 담당했던 역할을 성별만 바꿔 그대로 보여준다. 그때 그들처럼 미모조차 없는 잭슨의 발암행각을 보고 있자면 와이엇 러셀이 방패를 집에 두고 온 로마 보병처럼 쏟아지는 비난에 무방비로 놓일 것이 걱정되기에 이르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디스클로저 데이>는 잘 만든 영화다. 같은 이야기를 다른 감독이 찍었다면 어떤 영화가 됐을지 생각해보는 것만으로도 쉬이 마주하기 어려운 비범함을 곳곳에서 대면하게 된다. 스필버그가 스필버그한 장면들 말이다. <파벨만스>의 마지막 장면이 알린 그 특별한 연출의 흔적들이 이 영화 곳곳에 적잖이 깃들어 있다. 팔순을 앞둔 스필버그의 연출이 저기 라스트댄스를 추는 메시나 손흥민의 월드컵 경기를 보는 듯이 아깝고 귀하다. 작은 흠에 집착해 훌륭함을 보지 못한단 건 대체 얼마나 어리석은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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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