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자 속의 양포스터
미디어캐슬
닥쳐온 AI, 닥쳐올 휴머노이드... 이 영화의 답은?
새롭지 않은가. 기계가 장악한 세계 속에서 인간의 자리를 지키려는 저항(<터미네이터> 류)이나 유인원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터전을 확보하려는 발버둥(<혹성탈출> 류)에 익숙한 관객에게 그를 전복한 고민을 보여주는 것이 말이다. 2011년 새로 출발한 <혹성탈출> 시리즈에서 첫 편인 <혹성탈출: 진화의 시작>이 일시적으로 그와 같은 상황을 구현한 게 드물게 가까운 사례일 테다.
무튼 영화는 위 두 축으로 전개되며 보는 이로 하여금 휴머노이드와 인간의 자리, 그 공존의 효과와 위협을 생각하도록 한다. AI기술이 문명의 신기원을 열고 있는 작금의 상황에서, 그를 탑재할 로봇이 각광받는 이 시대에 얼마나 시의적절한 논의인가. 한국에서 이와 가장 가까운 문제의식을 다룬 김태용의 <원더랜드>가 얼마나 허술했는지를 떠올리면 여전히 미욱한 점이 엿보이는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작업이 그래도 많은 고심 끝에 이뤄진 것임을 깨닫게 된다.
AI는 이미 세상 가운데 안착했다. 과거 인간이 담당하던 자리를 무리 없이 차지해 역할을 해내고 있다. 인간성, 또 인간만이 해낼 수 있다고 대중이 막연하게 믿어온 자리를 하나둘 자연스레 차지한다. 그는 침탈인가, 자연스런 합석인가. 공존인가, 마침내 있을 싸움의 서막인가.
제목인 '상자 속의 양'은 고레에다 히로카즈가 써낸 답변이다. 세상 가까운 두 사람, 오토루와 켄스케조차 카케루를 달리 대하였다. 우리라고 다를까. 중요한 건 카케루가 아니다. 휴머노이드, 로봇, AI, 그러니까 기술이고 사건이며 변화가 아니다. 우리의 자세, 곧 마음이다. 상자 안에 든 것은 무엇이었다.
그저 사각의 상자일뿐이지만, 어린왕자는 그 안에서 가장 온전한 양 한 마리를 얻었다. 제가 꼭 필요로 하는 것이었다. 닥쳐올 변화, 그 변화를 이끌 기술 또한 그와 같다고, 이 영화는 말한다. 상실과 상처의 해소인가, 그저 유예인가, 삶을 거짓으로 살게 하는 것인가, 나아감인가, 그중 어느 것도 아닌가, 아니면 모든 것인가. 모든 것은 일체유심조, 유심소작이다. 상자 속의 양이다. 고레에다 히로카즈의 답에 나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이고 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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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