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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사위 '질들이기' 위한 충정도식 환대, 의미가 남다르네

[극장가는길] 2026충북민족극한마당, 극단 배꼽의 연극 <서울촌놈_질들이기>

26.06.15 11:57최종업데이트26.06.15 11: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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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극장가는 길>은 어둠이 번지는 저녁, 극장을 향해 걷는 발걸음에서 시작된다. 객석과 무대에서 벌어지는 밀고 당기며 교차하는 숨소리, 조명기 점멸, 사라졌으나 사라지지 않는 세계 변화의 순간을 길어내고 이를 기록한다. 나는 지역의 연극과 축제의 현장을 묵묵히 걷고 보면서 그 무대의 잔상과 스쳐간 감정과에 대해 적으며 동시대적 의미를 함께 나누고자 한다.[기자말]
극단 배꼽의 <서울촌놈_질들이기>(남덕현 원작, 박세환 각색, 진유리 연출)를 보기 위해 지난 12일 금요일, 청주시 서원구 수곡동에 있는 '문화공간 새벽'을 찾았다. 이 극장은 두진백로아파트 단지 내 상가 지하에 있는데, 이 극장에 한 십여 년 만에 다시 온 듯하다.

평일 저녁 소극장이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남녀노소 관객들로 가득 들어찼는데, 지하소극장의 호황이 무척 이채로울 수밖에 없다. 지역 연극제는 단순한 작품 발표의 장이 아니라, '특정한 지역'에서 바라보는 세계 인식과 그 재현의 방식을 집약적으로 드러내는 장이라 할 수 있다.

'충북민족극한마당'이 갖는 의미 역시 여기에 있다. 수도권 중심의 주류 작품 생산과 유통 구조 바깥에서, 지역 연극은 이와는 다르게 직접적인 생활 감각과 지역정서가 담긴 언어를 통해 동시대를 포착한다. 흔히 지역 연극 작품을 익숙한 연극적 관습에 안주해 수동적이고 실험성이 미흡하다고 재단하기 일쑤여서 오히려 그 연극의 정체성과 고유성을 과소평가할 때가 많다.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가 공연된 청주 수곡동 '문화공간 새벽'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가 공연된 청주 수곡동 '문화공간 새벽'조훈성

극단 배꼽은 충북 증평에 터를 잡고 2011년 창단한 극단으로 이제 꽤 세월을 먹었다. <서울촌놈 질들이기>, <결전의 때>, <달밭골 이야기>, 기록극<청주를 담다>, 인형극<동구의 고무신>, <탐이 나타났다> 등의 다양한 창작공연 활동으로 지역민을 꾸준히 만나고 있다.

이번 <서울촌놈 질들이기>는 원작이라 할 수 있는 <충청도의 힘>(*남덕현 원작 소설을 '예술공장 두레'에서 제작)과는 극중 인물의 시점 변화나 연극의 개방성에서 한걸음 더 나아갔다고 할 수 있는데, 극단 연보를 보니 2015년 박세환 작가의 각색으로 처음 무대에 올랐다.

그만큼 지금까지 숱하게 공연을 올리면서 개작이 있었을 텐데, 그 덕분인지 오늘따라 객석은 마치 가족초대석처럼 작정이나 한 듯 이 연극에 열렬한 호응을 보낸다. 제대로 한 편의 연극 만들기를 위해 소극장에 모인 이들이 극중 월전리 사람이 되었다가, 또 순식간에 밭작물이 되고, 장날 구경꾼에 이르기까지 이렇게 한마음으로 뭉친 것도 인상적이다.

이 연극은 켜지고 꺼지는 주백색 조명 스위치의 단순함만으로도, 겨우 달 하나 뜨고 지는, 마을 표지석과 작은 둔덕과 평상 하나를 놓고, 금세 무대를 충청도의 힘, '능청'으로 채워버린다. 아마도 이 연극은 극단 배꼽만이 할 수 있을 것 같고, 이 배우들 아니면, '질들이기'를 제대로 잘 할 수 없을 것 같다.

"겨우 달 하나 뜨고 지는, 마을 표지석과 작은 둔덕과 평상 하나를 놓고,
금세 무대를 충청도의 힘, '능청'으로 채워버린다."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공연이미지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공연이미지극단 배꼽

'길들이기'가 아닌 '질들이기'

연극은 충청도 시골 마을 월전리(*'월전리'가 있는지 실제 검색까지 해보니. 충북 옥천에 월전리가 있긴 하다.)에 서울에서 사위 '남서방'이 오는 데서 연극은 시작한다. 도시 사람이 촌으로 이주한다는 설정이 크게 낯설지 않지만, 제목에 포함된 '질들이기'라는 표현을 주목하지 않을 수 없다.

일반적으로 사용되는 '길들이기'가 아닌 '질들이기'는 충청도 방언의 포용적 뉘앙스를 품으면서, 표준어 질서에 균열을 내는 사소한 농담처럼 보인다. 하지만 이 언어적 차이는 사실상 관계의 방향을 미묘하게 전도시키는 신호라고 할 수 있다.

누군가를 '길들이는'것이 아니라, '질을 들인다'는 말은 단순한 훈육이나 순치(馴致)의 의미를 넘어 '버릇을 들이고 체질을 바꾼다'는 이전의 습속을 통째로 바꾼다는 것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질들인다'는 것을 억누르고 강압하는 것이 아닌 농촌공동체의 생활 밀착적인 감각을 보다 두드러지게 나타내면서 이를 순화시키고 지역성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동시에, 도·농 주민과의 관계 방향을 미묘하게 전도시키고 있다.

 극단 배꼽의 연극 <서울촌놈_질들이기> 공연 이미지
극단 배꼽의 연극 <서울촌놈_질들이기> 공연 이미지극단 배꼽

표면적으로 도시에서 온 외부자인 사위 '남서방'이 농촌 공동체에 적응하는 과정처럼 보이나 실제 무대에서 힘의 흐름을 추적하면 오히려 반대다. 남서방은 마을사람의 기준이 아니라, 자신의 기준, 즉 효율적이고 합리적인, 개인 중심의 판단을 내세우지만 번번이 고유한 마을사람의 리듬과 규범에 의해 무력화되고 만다.

내부의 '질들이기'가 어떤 '외부자'를 배제·차별하면서 전통공동체의 매운 맛, 텃세를 부리는 게 아니라, 공동체 질서 안으로 타자를 자연스레 끌어들여 본 공동체원으로 재구성하는 행위를 거듭 반복하고 있다.

이는 도농 관계에서 통상적인 위계, 즉 도시가 중심이고 농촌이 주변이라는 인식을 전복시킨다. 그래서 이제 이 연극에서 만큼은 더 이상 서울이 중심이 아니라 지금 여기 월전리가 중심이 된다. 농촌 공동체를 수동적 공간이 아닌 적극적 행위 주체로 그려내면서 특히 공동체적인 교감, 즉 집단적 움직임과 코러스적 반응을 통해 형성되는 마을의 이미지는 하나의 유기적 시스템처럼 기능한다.

이러한 집단적 결속이야말로 외부자를 압도하고 또 녹아들게 하는 힘을 보여주는데, 이 집단성은 소극장이라는 공간에서 더욱 밀도 있게 구현된다. 배우들의 리듬감 있는 호흡과 맞물려 안정적인 코미디를 만들어낸다고 할 수 있다. 관객은 평화로운 농촌 풍경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마을공동체라는 집단적 몸체가 품고 있는 고유한 규범 체계, 그 감각에 대해 경험하게 된다.

관객은 평화로운 농촌 풍경에 대한 환상이 아니라, 마을공동체라는 집단적 몸체가 품고 있는 고유한 규범 체계, 그 감각에 대해 경험하게 된다.

 극단 배꼽의 연극 <서울촌놈_질들이기> 공연 이미지
극단 배꼽의 연극 <서울촌놈_질들이기> 공연 이미지극단 배꼽

반드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연극은 우리가 그토록 바랐던 연극적 조우, '환대'의 문제를 자연스럽게 드러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환대는 타자를 내 집 안으로 맞아들이는 사건이면서 동시에 주체성의 윤리적 기초를 이루는 행위다"라고 말한 에마뉘엘 레비나스의 말처럼 <서울촌놈 질들이기>의 마을공동체는 외지인 '남서방'을 배제하지 않는다.

오히려 끊임없이 개입하고, 간섭하며, 공동체 규범을 내면화하면서 마을 사람으로 편입시키려 한다. 이 환대는 표면적으로는 충청도식의 포용과 정의 언어를 띠지만, 실질적으로는 공동체의 규칙을 내면화시키는 과정이기도 하다.

남서방은 '손님'으로 머무를 수 없으며, '우리의 질'에 맞게 조정된 존재로서 반드시 '우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즉, 이 공동체는 타자를 받아들이지만, 그 전제는 변화의 상호성이 아니라 일방향적 동화에 가깝다. 바로 '우리'가 된다는 것, 그 단서를 우리는 이 연극에서 발견할 수 있다.

코미디는 바로 이 조건부 환대를 둘러싼 마찰에서 발생한다.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불편함이나 긴장을 풀어내고자 연극은 오해, 과장, 반복 등의 연출 수법으로 이를 빠르게 해소시킨다. '남서방'의 도시적 품행은 한 충청도 시골에서 배척을 당하지만, 그것이 웃음을 만든다.

이 웃음은 갈등을 드러내기보다는 타자를 나와 닮게 만들려는 집요한 능청 백단의 마을 사람들의 포섭으로 희석되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관객이 목격하는 것은, 외부인, 타자의 등장이 공동체를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질서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의 문제로 축소된다. 그래서 '질들이기'의 언어적 지역성은 서울 중심의 표준어 질서에 대한 소극적 저항처럼 보이면서, '길들이기'가 아니라 '질들이기'라고 말하는 순간, 언어의 중심은 충청도이며, 연극의 무대는 변방이 아니라 스스로를 기준으로 삼는 장소가 된다.

"공동체를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에 대한 질문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질서에 얼마나 잘 적응하는가의 문제로 축소된다."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공연이미지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공연이미지극단 배꼽

연출적 측면에서 보자면, 이 작품은 '마당극'이라는 장르적 목표를 충실히 수행한다. 충청도 사투리는 현실 재현을 넘어서 극의 리듬과 타이밍을 만들어내는 핵심 장치로 기능하고, 반복과 어긋남의 구조는 관객의 반응을 안정적으로 끌어낸다. 배우들의 앙상블 역시 견고하다. 특히 마을 사람들의 집단적 움직임은 하나의 코러스처럼 작동하며, 개별 캐릭터의 심리보다는 관계의 역학을 전면에 드러내면서 소극장 코미디로서의 완성도를 뒷받침한다.

물론, 이 작품에서 공동체 내부의 균열을 고령화, 인구 소멸로 단순화되고 있으며, 월전리는 지나치게 단일한 목소리를 가진 공간으로 제시되고 있다. 그 안의 차이와 갈등은 거의 가시화되지 않고 있는데, 실제 공동체는 항상 복수의 이해관계와 긴장을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를 보완한다면, '질들이기'는 단순한 동화가 아니라 협상과 충돌의 과정으로 확장될 수 있다고 봐진다. 또, 더 나아가서, 환대는 언제나 환대할 수 없는 것과의 마주침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 연극이 환대 불가능성에 대한 자각 역시 동반해 그 불편한 지점을 회피하지 않고, 남서방이 끝내 마을에 완전히 흡수되지 못하는 새로운 접근도 있을 수 있다. 어쩌면 오늘의 연극은 그 환대의 실패를 보여주는 용기가 필요한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서울촌놈 질들이기>는 분명 지역어와 생활 감각을 기반으로 한 생동감 있는 무대를 만들어낸다. 또한 지역성의 위계를 뒤집는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기도 하다. '질들이기'라 언어적 장치가 제시한 질문, 누가 누구를 변화시키는가, 그리고 그 변화는 어떻게 이루어지는를 고민할 수 있게 한다. '충북민족극 한마당'에서 우리는 지역의 언어로 타자를 맞이하고, 지역의 리듬으로 관계를 조율하는 방식을 확인한다. 오늘의 연극에서 말하는 '질들이기'가, 단순히 전통 질서의 재생산이 아니라 한데 융화될 수 있는 상호적 사건으로 받아들여졌으면 한다.

월전리 사람들의 인사가 끝나고 나는 또 제일 앞서 극장을 빠져나오는데, 그 걸음이 참 가볍다. 이 극장, 모두를 마을 사람으로 만든 게, 마당극의 힘이지 하면서.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가 공연이미지
극단배꼽의 <서울촌놈 질들이기>가 공연이미지조훈성

극단 배꼽의 연극 <서울촌놈_질들이기>
원작: 남덕현 /각색: 박세환
연출: 진유리
출연: 이석규, 이성희, 오세아, 고태호, 장재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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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