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옥희의 영화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영화 속 영화, 단편이 이루는 장편
'키스 왕'에 이르러 이야기는 한 걸음 나아간다. 시간이 한참을 거슬러 오른 듯, 진구는 이번엔 영화학과 학생이다. 전편에서 잠깐 등장했던 동기 옥희(정유미 분)를 열심히 따라다니는 진구의 모습이 저돌적이다. '돌아이'란 별명이 괜히 붙은 게 아닌 듯한 저돌적인 공세에도 옥희는 거리를 둔다. 옥희에겐 사실 마음에 둔 남자가 있는데, 다름 아닌 송 교수(문성근 분)다. 남몰래 유부남 교수와 연애를 하는 여대생과 그녀를 마음에 두고 공세를 펼치는 혈기왕성한 남자, 그리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송 교수가 결정하는 영화제 수상자 명단에 들지 못하게 된 진구의 모습까지가 '키스 왕'의 줄기를 이룬다.
'폭설 후'는 또 한 걸음 나아간다. 감독이자 막 대학교에 발 들인 듯한 시간강사 송 교수의 계절학기 수업시간에 온 학생은 겨우 둘 뿐이다. 옥희와 진구. 아무리 눈이 내렸다지만 무단으로 수업에 빠진 학생들에게 송 감독은 분노를 느낀다. 창작자가 되어 현장이 아닌 곳에서 헛된 지식이나 가르치고 있는 게 아니냐는 자괴감이 분노의 원인인 듯 보인다. 늦게나마 출석한 진구와 옥희를 상대로 송 교수는 소크라테스의 문답법을 떠올리게 하는 대화를 이끈다. 아마도 이 영화를 좋아하는 이라면 이 장면 또한 애정할 게 틀림없을 그런 대화가 오간다. 지극히 홍상수적인 느낌 있는 대화다.
마지막 '옥희의 영화'는 다시 시간이 흘러 옥희가 직접 만든 영화다. 송 교수, 그리고 진구와 함께 1년여의 시차를 두고 아차산에 각각 올랐던 경험을 영화로 재구성해 붙인 형식을 취한다. 극중극 가운데 옥희는 두 사내를 각기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로 호명해 제가 무엇에 집중하고 있는지 명확히 한다. 두 남자와 모두 사귀었고, 젊은 남자에겐 그 사실을 알리지 않았던 옥희의 아차산 등반이 앞의 세 작품과 맞물려 모두가 옥희의 영화인 게 아닌가 하는 생각으로 이끈다. 재현과 재구성이 실재했음이 분명한 과거의 일상과 완전히 같아지지 못했다는 고백이 동일한 배우가 같은 배역으로 출연한 앞의 작품들을 모두 옥희가 찍은 영화로 바라보게 하는 것이다. 그로부터 서로 시점을 달리 한 구성과 편집 또한 제 의도를 드러낸다.
▲옥희의 영화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찌질하다 눈살을 찌푸린대도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가 1년의 시차가 있긴 하지만 별반 차이가 없을 옥희와 각각 아차산에 오른다. 누구는 화장실에 가서 한참 있다 나오고, 다른 누구는 얼마 지나지 않는다. 누구는 멈춰서 쉬며 이야기하고, 다른 누구는 목적지에만 관심이 있다.
그러나 둘은 모두 옥희를 끌어안고, 제 나름의 방식으로 마음을 전한다. 어제와 오늘과 내일이 그러하듯이 많이 같고 또 얼마쯤 다른 반복이 영화 가운데서도 이어진다. 그 같고 다름이 진실로 중요한 것을 드러낼 것이라는 믿음은 데뷔작부터 오늘까지 홍상수 영화를 가로질러 유지되는 몇 안 되는 진실인 듯하다.
많은 이들이 홍상수 영화를 보며 남성의 찌질함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건 아마도 홍상수 감독이 인간을 바라보는 특유의 관점에 기인한 것일 테다. 나이든 남자와 젊은 남자는 세월로 인간을 구분한 결과다. 남자와 여자는 성별로써 구분한 것이다. 예쁘고 잘 생긴, 정교수와 시간강사, 또 영화감독과 감독이 되지 못한 이, 기타 등등의 구분이 그대로 인물을 형성한다. 그 특징들이 영향을 미쳐 태어난 인물들이 맺는 관계가 비슷한 특질을 가진 이들이 얼마든지 있는 우리네 삶과 얼마 다르지 않은 양태를 드러낸다.
▲홍상수 전작전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홍상수식 유우머
이중 남자는 여자, 그중에서도 젊고 예쁜 여자를 좇는다. 홍상수 영화에서 반복되는 남자들의 찌질함은 매력적인 여성을 향하는 남성의 본능적 이끌림으로부터 비롯되는데, 욕구에 지배된 남자들의 모습이 비이성적이거나 비겁하거나 비루하여 소위 '찌질함'으로 평가될 만한 순간을 이루고는 한다. 홍상수가 이를 관찰하고 드러내는 작업에 대해 누구는 질 낮다고 혹평할 수도 있겠으나, 그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의 일면임을 인정할 밖에 없다. 차이라면 홍상수는 욕구와 성애를 끌어안아 점잖 빼지 않고 전면에 드러내려 한다는 점이다. 비록 누구에겐 찌질하거나 추잡하게 보일지라도. 우리네 기대와 달리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을지라도.
채 3000만원도 들이지 않고 만든 <옥희의 영화>는 3억 원쯤은 우습게 깨지던 당대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에 비하면 훨씬 작은 규모다. 물론 해외 유력 영화제에 단골로 초청되는 홍상수의 영화가 유명 배우들을 적은 금액에 들일 수 있어 가능한 일일 테지만. <옥희의 영화>는 그해 베니스국제영화제 오리종티 폐막작으로 선정되며 그간 칸과 베를린만 오갔던 홍상수에게 3대 영화제 모두의 선택을 받는 영예를 가져다주기도 했다.
<옥희의 영화>의 해외 출품 제목은 'Oki's Movie'다. 발음하여 읽으면 '오 키스 무비'처럼 들리기도 한다. 영화 속 키스가 그렇듯이 키스도, 섹스도 우리네 기대처럼 낭만적이거나 아름답지 않을 수 있다. 그를 자유롭게 말하고 바라볼 수 있다면 영화는 더욱 현실에 가까워질 테다. 이 영화가 해내고자 한 것도 그 어딘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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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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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 키스 무비? 홍상수 영화에는 왜 지질한 남자만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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