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버스스틸컷
엣나인필름
도시가 주인공이라고?
이로부터 영화는 며칠 동안 두 사람이 콜럼버스 이곳저곳을 오가며 갖는 시간으로 채워진다. 케이시가 자신이 좋아하는 건물들을 진에게 하나씩 소개하는 게 골자다. 실제 모더니즘 양식의 공공건축물이 많기로 유명한 콜럼버스다. 영화가 그 많은 건물과 그에 얽힌 얼마쯤의 사연을, 또 케이시의 감상과 그 감상이 타인인 진에게 닿아 일으키는 파문을, 둘의 만남으로부터 일어나는 교감과 변화까지로 이어지는 게 막힘없이 자연스럽다. 돌아보면 진과 케이시 사이에 가려진 담장 대신 뚫어볼 수 있는 울타리가 놓여 가능했던 일이다. 건축이란 이처럼 중하고 그 효과는 이토록 오묘하다.
<콜럼버스>의 가장 큰 특색은 여유롭다는 점이다. 모더니즘 건축이 그러하듯이 화려한 장식을 배제하고 공간감을 부여한다. 대사도, 사건도 많지 않고 비워진 공간을 배경음이 메꾼다. 풀벌레 소리며 한 대씩 지나다니는 자동차 소리가 은근하지만 분명하게 인식될 정도다. 누구 말마따나 저곳의 분위기, 조명, 온도, 습도... 모든 게 완벽히 모여 한 장면을 이룬달까. 무튼 꼭 필요한 것만 채운 덕택에 그 밖의 것들이 자연스레 나머지를 이뤄내는 조화가 <콜럼버스>의 매력이 된다. 그래서 이 영화를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평안해진다는 평이 있는 것일 테다.
건축가 루이스 설리번의 유명한 말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는 모더니즘 건축의 핵심과 통한다. <콜럼버스>가 추구하는 바도 그와 같은 모양이다. 마치 콜럼버스의 여러 건축물을 케이시와 진이라는 가이드를 따라 투어하는 듯이 영화는 이들 건축의 구조와 기능, 그리고 아름다움을 하나씩 자연스레 드러낸다. 통상적인 영화가 좀처럼 잡지 않는 앵글로 파사드(Façade·건물의 인상을 결정짓는 정면모습을 뜻하는 용어)를 보여주는 순간이 잦다. 또 케이시가 여러 건물을 좋아하는 저만의 이유를 말하는 모습을 그녀가 각별히 애정하는 건물의 구석구석과 함께 보인다. 그를 듣고 있자면 이런 건축물로 가득한 매혹적인 도시 콜럼버스가 전과는 달리 보인다. 더는 지루하고 심심한 곳이 아니게 된다.
▲콜럼버스스틸컷
엣나인필름
아는 만큼 달리 보이는
건축을 아는 이라면 반짝 웃음을 터뜨리게 되는 순간도 적지 않다. 이를테면 모더니즘 건축으로부터 파생된 브루탈리즘 양식의 건물 아래를 지나며 잔인함(Brutal)을 이야기하는 순간 같은 장면이다. 이토록 아재적인 지적유희를 코고나다 같이 진지한 감독도 참아내질 못한 것이다. 하하하.
다시 처음의 울타리, 두 사람이 만나던 순간의 밀러하우스로 돌아오자. 울타리 안에 있던 진은 그 집이 떠올리게 하는 아버지, 그리고 성공한 건축가의 아들로 짊어져야 하는 삶이 버겁고 답답하다. 그에게 울타리는 그를 둘러싸 옭아매는 경계다. 바깥에서 담배를 태우던 케이시에게 울타리 너머 밀러하우스는 동경하는 건축이 자리한 곳이다. 저는 그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막연한 꿈이라 밀어두고 있지만 그래도 틈날 때마다 흘깃 훔쳐보고 엿듣고 싶은 공간이다. 그 둘이 울타리를 따라 걷다 마침내 열린 문 앞에서 대화하는 순간은 그래서 해방이자 가능성이 된다.
다른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코고나다의 영화는 아는 만큼 달리 보인다. 이 영화 <콜럼버스>도 마찬가지다. 여백 많고 사건 적은 이 영화가 지루하고 시시해 보일 수도 있겠다. 루이스 멈퍼드가 사랑한 어느 건축물은 지나는 이 백 중 아흔아홉이 알아보지 못한다. 건축가도 영화감독도 제 작품이 보는 이에게 진실로 가서 닿기를 바라지만, 더 큰 울림을 담고 있어 더 적은 이에게 가 닿게 되기도 하는 것이다.
때로 어떤 만남은 생각을, 사건을, 운명을 바꾼다. 케이시에게 진이, 진에게 케이시가 그랬듯이. 어쩌면 영화와 건축도 누군가를 그리 이끌 수 있는 일이다. 나는 내가 쓰는 글이 또한 그러하길 바란다.
▲콜럼버스포스터
엣나인필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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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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