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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플릭스 1위 '참교육'이 보여주는 교실의 비극

[리뷰] 넷플릭스 <참교육>을 보고

26.06.11 09:59최종업데이트26.06.11 0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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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감성을 그린 영화 <써니>에는 잊기 힘든 '야만'의 묘사가 등장한다. 교사가 손목시계까지 풀어가며 교실에서 학생의 머리를 무자비하게 후려치는 장면이다. 불과 이삼십 년 전만 해도 대중문화가 흔하게 묘사하던, 폭력이 곧 훈육의 이름으로 용인되던 낡은 시대의 한 단면이다.

그로부터 시간이 흐른 지금, 교실의 권력은 정반대로 뒤집혔다. 교사는 더 이상 매를 들지 못한다. 대신 아동학대 피소의 두려움에 떨며 학생의 눈치를 살피고, 학부모의 악성 민원 앞에 무릎을 꿇는다. 최근 넷플릭스에서 압도적인 흥행 1위를 기록 중인 <참교육>의 등장은 바로 이 지점에서 폭발력을 가진다.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 세상은 망하는 겁니다."

극 중 주인공 나화진(김무열)의 이 대사는 낭만도 권위도 사라진 채 두려움만 남은 현재 교실의 비극을 가장 정확하게 보여준다.

야만의 시대를 지나 인권의 시대로 왔다고 믿었지만, 정상적인 제도가 안착하지 못한 교실에는 '합법적 폭력'이라는 극단적 판타지가 새로운 괴물로 소환되었다. 야만의 폭력이 사라진 교실에 왜 다시 '합법적 폭력'이 필요해진 것일까.

'호랑이 선생님'에서 '감정노동자'로, 미디어 속 교사상

 드라마 <참교육>
드라마 <참교육>넷플릭스

대중문화 속 교사의 이미지는 양극단을 오갔다. 소위 '호랑이 선생님'으로 여겨지던 시절, 교사는 삶의 방향을 이끌어주는 '절대적인 권위자'였다. 체벌이 묵인되던 시대의 폭력성은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적어도 당시 미디어 속 교사는 아이들의 눈치는 보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미디어가 비추는 교사의 얼굴은 완전히 달라졌다. 학생의 인권은 가파르게 신장되었으나 교사를 보호할 제도는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 결과 미디어 속 교사들은 학부모의 악성 민원에 시달리고 입시 실적에 치이는 비정규직 노동자 혹은 극한의 감정노동자로 묘사되기 시작했다. 훈육을 빙자한 정서적 학대를 막기 위해 제정된 '아동학대처벌법'의 모호한 잣대는 역설적으로 교사들의 손발을 묶는 족쇄가 되고 만 것이다.

실제 교사노동조합연맹의 최근 설문 결과는 이 씁쓸한 팩트를 수치로 증명한다. 전국 교원의 80.8%가 아동학대 무고 피소에 대한 불안을 느끼고 있으며, 절반 이상(55.5%)이 악성 민원 등으로 사직을 고민했다고 답했다.

가상의 '교권보호국'이 선사하는 사이다

 드라마 <참교육>
ⓒ 넷플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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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도가 교사를 지켜주지 못하자, 대중은 가상의 영웅에게 눈을 돌렸다. <참교육>의 나화진이 선사하는 통쾌함의 핵심은 그의 주먹이 단순한 사적 제재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는 국가 기관 '교권보호국' 소속 공무원이며, 그의 무력은 철저히 '합법적 집행'이다.

현실에서는 교사의 숨통을 조이는 족쇄였던 '법'이 극 중에서는 촉법소년과 진상 학부모에 대항하는 '무기'가 된 셈이다. 그렇게 보면 이 작품의 흥행은 폭력을 합법화하는 국가 기관을 상상하지 않고서는 도저히 교권 회복의 길을 찾을 수 없을 만큼, 우리 사회의 교육 및 사법 체계가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함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영웅을 기다리지 않는, 상식적인 교실을 위하여

 드라마 <참교육>
드라마 <참교육>넷플릭스

결국 다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 보자. "어른이 애들을 무서워하면 세상은 망한다"는 대사는 현 교실이 처한 상황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 연장선에서 세상을 망치지 않기 위해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써니> 시절의 물리적 야만도, 나화진의 합법적 폭력 판타지도 아니다.

나화진이 선사하는 합법적 폭력의 카타르시스는 짜릿하지만 일시적인 사이다일 뿐이다. 두려움 없이 아이의 잘못을 꾸짖고 바른길로 이끄는 것은 교사 개인의 맷집이나 영웅의 주먹이 아니라, 상식적인 '제도적 울타리'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국가와 교육 당국은 이 콘텐츠의 흥행을 대중이 보내는 경고로 직시해야 한다. 가상의 교권보호국이 주는 사이다에 취해 방관할 것이 아니라, 교사가 아이와 학부모의 '기분'이 아닌 '교육의 본질'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실효성 있는 입법과 제도를 정비해야 한다. 영웅의 주먹을 기다리지 않아도 되는 교실, 폭력이 없어도 어른이 온전히 어른의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상식적인 교실을 복원하는 일. 그것이 진짜 '참교육'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도리가 아닐까.
덧붙이는 글 이 칼럼은 브런치에도 실립니다. 글쓴이(이인혜)는 12년차 대중문화 에디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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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문화·라이프스타일 분야에서 에디터로 활동하며, 오랫동안 ‘글 쓰는 일’을 업으로 삼아온 사람. 잡지와 온라인 매체, 브랜드 콘텐츠 등 다양한 채널에서 사람들의 이야기를 기획하고 다듬는 일을 해왔다. 퇴근 후에는 늘 드라마를 보며 하루를 정리하는 시청자이자, 장면과 장면 사이에 남은 감정을 오래 붙잡아두고 싶은 에세이스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