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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고 그런 영화들이 지겨울 때, '입맛 싹 도는' 별미 같은 신작

[김성호의 씨네만세 1364] <이인>

26.06.09 10:38최종업데이트26.06.09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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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글은 영화의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영화란 게 그렇다. 극화된 현실의 모방이나 재현, 혹은 현실을 그대로 기록한 다큐멘터리일지라도 관객으로 하여금 작품에 온전히 몰입하길 기대하게 마련이다. 다른 자극을 차단한 어둡고 조용한 환경에서 빛이 쏘아지는 스크린 위에 투사되는 영화란 매체는 적어도 러닝타임 동안에는 그 자체로 유일하고 가치 있는 현실로서의 자격을 얻는다. 관객은 모든 주의를 기울여서 감독이 빚어낸 스크린 위의 이야기를 봐야만 한다. 감각하고 관찰하며 이해하고 감동하길 요구받는다. 그것이 영화란 예술이 극장에서 갖는 독점적 지위다.

영화 속 인물의 기쁨과 슬픔이, 절망과 영광이 하나하나 만들어진 것일 뿐인데도, 관객은 영화 속 인물들을 따라서 소리 내어 울고 웃는다. 마치 제가 직접 영화 속 일을 겪은 것처럼, 그 모든 결과가 제 것이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는 극장을 나가면 전혀 관계없는 삶을 살 것인데도.

혹자는 영화란 그저 작가의 이야기일 뿐, 영화를 진실로 움직이는 것은 관객의 의지라고 말하기도 한다. 영화를 보고자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알아내고자 하는 관객의 의지와 관심이야말로 영화를 지탱하는 주된 동력이란 얘기다. 그는 영화 자체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보는 이에게서 비롯되는 외재적 힘이다. 그렇다면 영화의 진실한 힘은 영화 내부가 아닌 외부 관객과의 상호작용에 있는지 모른다. 중요한 건 어떻게 관객과 관계 맺는가 하는 것이지 다른 무엇이 아니란 얘기다. 영화는 크랭크업, 혹은 후반작업이 끝나는 날이 아니라 극장에서 관객이 보는 순간 완성된다는 것이겠다.

이인 스틸컷
이인스틸컷스튜디오 351

쉬운 몰입 대신에 사고와 유희를

김경래 감독의 <이인>이 최근 개봉해 관객과 만났다. 전작 <레슨>에 이어 신작까지 본 이라면 그가 독창적 영화세계를 가진 감독이란 사실을 납득할 테다. 김경래 감독의 영화에선 종종 관객이 사실이라 믿는 것을 흔드는 순간이 등장한다.

<레슨>은 영어와 피아노에 재능이 있는 남녀가 서로의 장기를 바꾸어 가르치는 일종의 재능교환을 하며 빚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작품이다. 영화는 주인공인 경민이 연인인 선희, 그리고 제게 피아노를 가르치는 여자 영원을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두 갈래로 나누어 보여준다.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통상의 서사를 가진 작품과 달리 영화는 두 관계 중 무엇이 앞이고 다른 것이 뒤인지 보여주지 않는다. 도리어 영화 속 시간이 실제 선후와 다를 수 있다는 단서를 인물의 대사 등을 통해 은근히 암시한다.

그를 통해 관객은 자연히 시간순이 아니겠느냐 하였던 선입견을 스스로 부정해야 하는 순간과 맞닥뜨린다. 제가 저 자신을 부인하며 영화가 진실로 담고 있는 이야기에 보다 다가서게 된다. 영화가 아닌 관객 안에서 빚어지는 이 같은 혼란은 관객 자신의 욕구며 오해를 동력 삼아 작품을 보다 깊이 유희하도록 이끈다. 쉬운 몰입과 공감을 바라는 게 아니라 의심과 의문을 부각해 사고하도록 이끄는 게 제 목적이라는 듯.

이인 스틸컷
이인스틸컷스튜디오 351

극과 극중극의 모호한 마주 닿음

신작 <이인>이 가진 영화적 매력 또한 이와 떨어져 있지 않다. 영화는 크게 네 개 장으로 나뉘어 있다. 각각의 에피소드에 등장하는 인물들이 서로 관련 있지만, 이야기 전체가 하나의 맥락으로 단단히 꿰어져 있다고 보기 어렵다. 첫 장은 성철(정승민 분)의 이야기다. 그는 영화를 공부했던 카페사장으로, 쉬는 날엔 교외로 나가 혼자 낚시하는 게 취미다.

이날도 평소처럼 낚시하러 나온 참인데 우연히 마주한 한 여자가 뜻밖의 도움을 청한다. 오는 길에 도로에서 야생동물을 치어 죽이고 말았는데, 그를 묻어달라는 것. 제가 죽여 놓고도 홀로 매장하길 꺼리는 여자의 요청을 착한 성철은 외면하지 못한다. 여자가 고맙다며 반드시 저녁 식사를 대접하겠다고 하여 상철은 그날 저녁 내내 연락을 기다리지만 휴대폰은 울리지 않는다.

그로부터 영화는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성철이 소리 죽여 몰래 라면을 먹고서 방에 들어가 잠을 청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웬 여자가 그를 깨우는 것이다. 코를 고는 소리가 너무 시끄럽다며 내일 출근을 해야 한다고 짜증을 부리는 그 여자가 성철의 아내란 걸 관객은 그제야 안다. 결국 밖에 나가 차에서 잠을 청하는 성철이 아침이 밝아 다시 그 차에서 쫓겨나는 과정까지를 영화는 가만히 뒤따른다. 그리고 얼마 뒤 이들이 마침내 이혼에 이르렀단 사실이 자막으로 등장하며 영화는 다음 챕터로 건너간다.

이인 스틸컷
이인스틸컷스튜디오 351

필패의 전장에서 싸우며 얻어지는 것

두 번째 챕터는 성철의 일터에서 시작된다. 대학교 동기로 영화감독이 된 정웅(강정웅 분)이 카페를 찾아와 성철과 대화하고, 그의 이야기를 제 시나리오로 써도 되겠는지를 묻는다. 영화 속 시나리오가 영화 속에 중첩될 가능성이 던져지고, 실제로도 얼마쯤은 그러한 광경이 펼쳐진다. <이인>의 이야기는 그저 관객이 마주한 영화에서 그치지 않고, 정웅의 시나리오가 시각화 된 결과물로 비춰지기도 한다. 말하자면 극과 극중극이 명찰을 달지 않고 등장하여 관객이 그를 가려낼 필요를 느끼게 된다는 이야기다.

영화와 허구를 가려내려는 시도는 그러나 필패의 결말로 귀결된다. 영화 자체가 극중극과 다를 바 없는 허구이자 관객 입장에선 매한가지의 초면인 때문이다. 서로 포개어져 독특한 무늬를 남기는 두 개의 중첩된 극이 깨끗이 해소되지 않는 의문을 남기는 탓으로, 영화는 <레슨>에서와 마찬가지로 묘한 서스펜스를 확보한다. 세 번째와 네 번째 챕터에선 이와 같은 경계를 조금씩 낮추고 심지어는 부수어내기까지 하는 탓으로, 영화 전체가 정돈되지 않은 혼란이 되어 정돈하고픈 욕망을 불러와 지탱하는 듯한 인상까지 남긴다.

서로 닿지 않는 이야기와 닿는 이야기들이 기묘하게 뒤섞인 영화다. 이혼한 성철에겐 애인이 있고, 그 애인은 성철과의 관계를 감추고서 정웅의 영화에 출연하겠다고 말한다. 첫 챕터에서 성철을 바람맞혔던 또 다른 여인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와선 어려운 부탁을 한다. 어느 소설가가 신작 발표를 앞두고 오래 사귄 애인에게 차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성공을 맛보기도 한다. 사실과 상상이 뒤섞인 여러 개의 이야기가 서로 공간을 달리하여 관객으로 하여금 진짜와 가짜, 의미 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을 구분 짓고 나누도록 한다. 그러나 그와 같은 노력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가장 확고하게 구분해 낸 관객조차 확신하기 쉽지 않다.

이인 포스터
이인포스터스튜디오 351

온통 비슷한 영화들이 지겨워질 때

결국 <이인>을 지탱하는 건 이야기다. 각각의 완결되지 않은 이야기가 거듭되는 동안 관객은 마치 세헤라자드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여 그녀의 목을 벨 수 없게 된 왕과 같은 마음으로 더 많은 이야기를 기다린다. 각 이야기가 가진 불완전성, 즉 완결되지 않은 여백이 도리어 관객을 사로잡는다. <레슨>에선 시간의 축을 뒤틀어 관객을 붙들려 했던 김경래가 이번엔 서사의 층위를 나누어 엇비슷한 효과를 도모한다. 그와 같은 수법의 정교함이며 완결성과는 별개로 적어도 러닝타임 동안만큼은 분명한 효과를 창출해 낸다.

다만 끝내 답에 이를 수 없는 미결의 영화가 갖는 단점 또한 명백하다. 보는 이로 하여금 고민하고 헷갈리게 하는 영화적 수법이 그 자체로 목적이 되고 나면, 그 반대에 선 형식적 작품들과의 비교우위 또한 사라지고 만다. 독자적인 주제의식과 지향이 불분명해 적잖은 관객이 여정에서의 즐거움보다도 길을 잃었다는 인식을 갖게 될 우려도 상당하다. 제각각의 오해가 모두 감상이 될 수 있다면 관객에게서 영화가 완성되도록 예비한 시도는 연출자가 책임을 방기하고 있다는 것과 다르지 않다. 형식만 있고 알맹이가 없다는 비판이 따를 밖에 없다.

그런데도 의미 있는 작업이라 여긴다. 우리가 영화라고 부르는 건 생각만큼 다양하지 않다. 틀에 박힌 기승전결의 선형적 서사, 관습적인 스펙터클과 거의 규범적이라 해도 좋을 클라이맥스를 거쳐서 해피엔딩으로 귀결되는 인물의 이야기가 극영화의 절대다수를 이룬다. 과연 이를 영화의 본체라 해도 좋을까.

어쩌면 우리는 그저 주조연과 장르만 바꿔가며 그렇고 그런 이야기를 확대재생산하고 마치 돼지가 사료를 먹듯 흡입하는 건 아닐까. 그와 같은 문제의식이 고개를 쳐들 때 <이인>과 같은 작품이 별미 같은 역할을 해줄 수도 있는 일이다. 정말이지 세상엔 이렇게 아무렇게나 이야기를 만드는 이들이 있는 것이다. 영화의 세계란 생각보다 훨씬 더 자유롭다며, 무법자처럼 나아가는 영화만이 갖는 매력이 분명히 존재한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이인 스튜디오351 김경래 손준영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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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