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이야기가의 <에라모르겠다> 공연이미지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연극은 산업재해를 다루지만, 단순한 고발극이 아니다. 오히려 사고 이후의 시간을 집요하게 따라가며, 극 중 인물들의 다양한 얼굴을 부각시킨다. 이들이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되는지를 드러낸다.
무대는 대형 공사 현장이다. 여기에 3단의 철골 비계에 컨테이너 등을 배치하고, 고된 건설 노동 현장 한복판의 사람들을 보여준다. 딱딱하게 굳은 표정의 사람들이 집단 국민체조를 한다. 2인1조 사다리 작업의 안전수칙 준수 장면 등은 공사 현장의 모습을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역할을 한다.
극에서 갓 첫 출근해 모든 게 낯설고 서투른, '부현'이라는 인물에게 닥친 '공사장 인부의 추락 사고'는 이 연극을 끌어가는 주요 사건이다. 현장은 사고로 잠시 공사가 중단되지만 사람들은 저마다 책임을 회피하기 급급하다. 구급차를 불러야 하는 응급 상황에도 관리자들은 안전서류 정리에 매달린다.
연극은 바로 이 현장에서 머뭇거리고 주저하는 사람들의 민낯을 까발린다. 이렇게 우왕좌왕하며 수습의 우선순위를 정하기 바쁜 사람들을 '부현'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다. 더구나 추락 사고를 당한 사내는 되살아나 '부현'의 눈에만 보이는데, 그 인부는 계속 반복해서 출구를 묻고 있다.
이 작품 속 인물들의 변명은 너무 익숙하다. 이미 수없이 많은 사고와 재난을 거듭하면서 우리는 같은 말을 반복해왔고 들었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책임은 분산되고, 판단은 유예되며, 감각은 무뎌진다'는 말처럼, 재난 참사의 기억은 증발되고, 남는 것은 무감각화된 개인들이다.
▲극단 이야기가의 <에라모르겠다> 공연이미지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
블랙코미디 형식의 연극은 이 과정을 더 잔인하게 보여준다. 관객은 이 말도 안 되는 상황을 바라보면서 웃다가 금세 웃고 있는 자신이 불편해질 수밖에 없다. 웃음이 멈추는 순간, 이 연극의 의도는 제대로 구현된다. 추락한 사내가 "출구가 어디냐"고 계속 묻는 건, 어쩌면 우리가 빠져나갈 수 있는 윤리적 출구, 인간으로서의 선택지를 묻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연극에서 그 어느 누구도 이에 제대로 답하지 않는 대신 '어쩔 수 없었던 일'로 치부한다. 이 거대한 자본 구조 시스템 속에서 침묵 속 회피는 그렇게 정당화되고 만다. 누구도 구할 수 없으며, 애도조차 할 수 없는 이 현장을 바라보면서 오늘의 연극 제목, '에라, 모르겠다'의 '수용적 태도'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비로소 깨닫게 된다.
▲극단 이야기가의 <에라모르겠다> 공연이미지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초짜 노가다꾼 '부현'(조부현 연기)이 넥타이를 매고 투입된 공사 현장은 위계가 없어진 것 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여전히 조직 위계가 잔존한다. 그 인물들의 관계는 무척 익숙하다. 현장을 관리하는 사람과 이들 눈치를 보며 살아남으려는 사람 모두는 우리 사회의 축소판 같다.
또 이 우습지도 않은 이 연극을 보다가 웃고 있는 자신이 섬뜩할 수밖에 없다. 극중 사장(손흥민 연기)이 반복하는 '40년 전통 국밥집 할머니는 뭐다?'라는 대사나, 극중 유일한 현장 여성인 민주임(민신혜 연기)이 어머니의 잡채가 그립다며 일찍 퇴근해야 한다고 말하면서, '엄마, 그건 사람의 도리가 아니지'라는 삽입되는 대사 등은 말 그대로 갖춰야 할 '도리'의 부재를 말한다. 노골적으로 한국 사회에서의 노동 현실을 냉소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장면이기도 하다.
▲극단 이야기가의 <에라모르겠다> 공연이미지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현장의 공사판이라는 사실적 무대배경을 바탕으로 배우들은 의도적으로 절제되고 경직된 연기 호흡을 가져간다. 그래서 오히려 연극의 흐름이 어색하지 않고 인상적이다. 등장인물을 유형화시키기 보다 각각의 개별적 캐릭터를 유지하면서도 집단적 리듬이 강조된다. 이것이 하나의 사회구조 시스템처럼 보인다.
또한 망자의 배회를 통해 현실의 경계가 뒤섞이는 장면은 이 작품의 비현실적 층위를 확장시킨다. 사고는 끝난 것이 아니며 반복되는 현재가 되는 것이다. 이는 관객에게 산업재해를 개별 사건이 아닌 구조적 반복으로 인식하게 만들고, 공사 현장을 하나의 부조리한 세계로 전환시키는 역할을 한다.
연극은 '에라, 모르겠다'의 불편한 상황 속에서 우리가 정말 무엇을 해야 할지를 진지하게 묻고 있다. 무대 위 인물들이 낯설면서 낯설지 않는 것은 그들이 비정상적인 존재가 아니라, 부조리한 구조 속에서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평범한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결국 아무도 구하지 못하는 상황을 만든다는 점에서, 우리가 어떻게 무감각화 되는지를 추적한다.
사람이 추락했다. 무대 밖의 우리는 끝까지 그 무대 위를 바라본다.
"정말,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은가."
▲극단 이야기가의 <에라, 모르겠다> 공연이미지
서울연극협회, 촬영 FOTOBE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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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전에서 나고 자랐으며, 전통연희, 굿, 마당극 등을 연구하고, 또 그 마당을 보러 다녔다. 공연장 안팎을 분주히 걷다 보니,연극, 공연 축제에 대한 글을 쓰는 일이 생업이 되었다. 지역 문화예술정책에 관심이 많아 이와 관련한 심의, 자문 등의 일도 겸하고 있다. 2024년, 『묵음_ 다음에 걸음, 그리고 스페이스바』 (그래도, 2024) 등을 발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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웃다가 섬뜩해지는 순간, 산재 현장의 민낯 보여준 연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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