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스틸
영화특별시SMC
마을은 시초지의 인공낙원과는 여러모로 대비되는 피난처다. 하지만 이곳에는 불편한 진실이 있다. 올리브-데이지-소피는 순차적으로 마을의 탄생 배경과 지구의 디스토피아 수립이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음을 깨닫는다. 그러나 그뿐이라면 그냥 마을에 정착해 지구로는 관심을 끄면 될 일이다. 하지만 차례대로 그들은 시초지로 향하고 그곳에 정착하려 한다. 무엇 하나 보장되지 않고 생존마저 위험할 수 있는 지구인데 말이다. 모든 위험을 감수할 이유라면?
마을의 주민들은 수업을 통해 평범한 감정에 대해 학습한다. 기술 발전으로 그들이 험한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기본 생활이 가능한 배경 조건 덕분이다. 추앙받는 건설자의 세심한 설계가 빛을 발한 셈. 하지만 인류가 문명을 발전시키며 치러온 온갖 굴곡이 이곳엔 없다. 그저 처음 계획된 그대로 계속 평탄하게 연속되는 정체된 시공간만 남는다. 게다가 기이하게 이곳에선 자연 생식이 존재하지 않는 듯하다. 인간의 본성이 과학기술로 대체될 수 있을까?
원작/영화는 공히 디스토피아 세계관에 대한 치밀한 고증보다는 우화적 풍자로 향한다. 21세기 인류가 겪는 (경제 및 사회적) 양극화 & (차별과 혐오에 바탕한) 분리주의에 대한 경고와 더불어 마을의 치명적 오류, '순혈주의'와 폐쇄적 공동체 한계 역시 비중있게 제기한다. 양분된 세계 대비라면 이미 상업영화나 만화, 드라마까지 숱하게 접하는 흔해빠진 소재일 테지만, 여기에 대안으로 보통 제시되던 공동체주의 역시 위험에 노출됨을 지적하는 시선이 예리하다.
결국엔 다시 <매트릭스>가 던진 화두로 돌아오는 셈이다. 네오와 동료들은 '빨간약'을 택하고 인간을 억압하는 기계제국과 맞서지만, 정작 평화협상 이후에도 다수 인류는 매트릭스 시스템 안에서 안주하는 '파란약' 선택에 기운다. 주체성과 의심할 자유를 포기한 대신 주어진 조건에 만족하는 인공적인 유토피아의 달콤한 유혹 VS. 능동적으로 운명을 결정하고 책임질 실존적 삶 사이에서 미래 인류 역시 고뇌할 수밖에 없다. 인공지능과 로봇 시대에 당연한 화두다.
영화는 원작의 충실한 각색에 초점을 맞췄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미래세계 묘사, 단편 원작에 걸맞게 주요 인물 위주로 구축된 이야기, 반전을 통해 모든 게 재구성되는 전복적 세계관이란 장르 정석에 크게 모자람이 없다. 하지만 독창성 면에선 시각적 이미지나 장면이 확 강하게 남진 않는다. 첫술에 배부르랴 하긴 해도 SF의 상상력 측면에서 능히 상상 가능한 풍경에 머무는 건 아쉬운 지점이다.
애니메이션 팬이라면 주의 깊게 따지는 부분, 전문 성우 아닌 배우들 출연 부분은 딱 해당 캐릭터=배우 맞춤형이라 큰 위화감은 없지만, 연기보다 캐릭터 이미지에 치중한 선택에 가깝다. 즉 연기로 상상할 지점보단 실제 배우 이미지 떠오르는 캐스팅이다. 황소윤이 맡은 음악 작업은 자매애가 넘실대는 작품 배경과 적절하게 조화롭다. 여러모로 크게 결함 없는 충실한 원작의 영상화다. 기왕이면 옴니버스 형태로 다른 단편과 동시에 나왔어도 좋았을 법하다.
<작품정보>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Pilgrims
2026 한국 감성 SF 애니메이션
2026.06.03. 개봉 60분 전체관람가
감독 허평강
출연 김향기(소피), 박지후(데이지), 이주영(올리브)
제작 21스튜디오
배급 영화특별시S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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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