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의 오후> 스틸
필름다빈
이제 가장 장대한 세 번째 시합이 기다린다. 숭고한 예식을 치르듯 그는 '소를 죽이는 자'에게 허용된 '빛의 의상(Traje de luces)'을 공들여 착용한다. 육체와 정신 모두 극한으로 집중력을 발휘하는 투우 마에스트로답게 몸에 바지 하나를 입는 데도 오랜 시간 공들인다. 물샐 틈이 없을 정도로 딱 붙는 복색은 소의 뿔이나 걸리적대는 장애물을 피하기 위한 '생존템'일 테다. 결전에 임하는 안드레스의 긴장이 화면 너머까지 전해지는 순간이다.
가장 긴 분량을 점유하는 이번 시합은 마타도르 안드레스의 긴장 속 상황 파악으로 출발한다. 주변 배경에 그치던 '피카도르' 동료가 초반 주역이다. 고도로 유기적인 팀플레이가 이뤄짐을 상기하며 논란에 휩싸인 투우가 오랜 전통의 산물임을 드러내는 장치로 기능한다. 스페인 내에서도 단순히 동물복지를 넘어 복잡한 역사적, 지역적 논쟁에 둘러싸인 투우의 현황을 숙지한 감독이기에 가능한 접근법이다. 섣부른 의견 제시보다 있는 그대로 보여주려는 태도다.
마침내 보고만 있어도 진이 빠지는 최종 결전이다. 첫 시합부터 연속된 특별 촬영기법이 이제 절정에 도달한다. 박진감을 끌어올리고자 배속을 돌리고픈 유혹에 빠질 법한데, 카메라는 '슬로우 시네마'를 고수하는 감독의 스타일을 계승하며 천천히 돌아간다. 다만 어떻게 가능했는진 몰라도 안드레스가 흥분해 날뛰는 황소와 정면에서 마주보듯 카메라 역시 바짝 다가선다. 디지털 기술 발전으로 망원 촬영 감도가 극한대로 높아졌기에 가능한 접근이다.
21세기 다큐멘터리가 세계의 현안을 대하는 방식
입을 쩍 벌리고 대체 승부를 지켜보는 관객은 이제 아레나 관중과 근접한 체험에 휘말린다. 마침내 결판이 났다. 경기가 끝나고 다들 집에 갈 시간, 영화의 순간도 저물어간다. 어릴 적부터 동경했던 위대한 투우사의 길을 걷는 안드레스는 자신이 전수받은 숙명을 오늘도 치른 것처럼 만감 교차하는 표정이다. 이제 관객은 피상적으로 알던 투우가 어떤 실체와 현황을 갖는지 궁금할 수밖에 없다. 찬반 논란을 초월해 모두를 쟁점으로 끌어들이는 탁월한 효능감이다.
오직 영화만이 제시할 수 있는 세상의 단면을 <고독의 오후>는 21세기 첨단기술을 적극 활용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와는 다른 각도로 극대화한다. 독립예술영화가 디지털 시대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구구절절 자막과 내레이션 설명 없이 감각적 메시지 전달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한 이들이라면 알베르 세라의 독창적 다큐멘터리를 외면하긴 힘들어 보인다.
<작품정보>
고독의 오후
Tardes de soledad
Afternoons of Solitude
2024 스페인 다큐멘터리
2026.06.03. 개봉 126분 청소년관람불가
감독 알베르 세라
수입/배급 필름다빈
72회 산세바스티안영화제 황금조개상
카이에 뒤 시네마 2025 베스트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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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사회복지영화제 프로그래머. 돈은 안되지만 즐거울 것 같거나 어쩌면 해야할 것 같은 일들을 이것저것 궁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