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트로덕션스틸컷
한국영상자료원
무엇이 진짜이고 가짜인지 너는 아니?
영화는 각 장의 앞에 숫자(1, 2, 3)을 띄워가며 구분된 단편을 묶어 한 편의 장편을 이룬다. 러닝타임이 고작 66분이니, 옛 기준에선 중편영화라 해도 무방할 정도다. 분절된 세 편의 이야기를 연달아 하는 것은 무엇 때문일까. 반복과 그를 통한 달리 보게 하기는 홍상수 특유의 영화적 기술이니만큼 이 영화에서 중첩되는 인물과 사건, 상황들이 자연스레 드러내는 것이 무언지를 집중해 보아야 할 테다.
영화에선 여러 인물이 등장한다. 이들은 혈연으로든, 과거의 인연으로든 이미 아는 사이다. 부모와 자식, 또 친구와 연인, 혹은 헤어진 옛 애인이다. 그에 얽힌 사연, 구체적 관계를 아는 건 불필요하다는 듯, 홍상수의 영화가 대개 그러하듯이 그 위에 쓰이는 어떤 순간을 기록하듯 보여줄 뿐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불러놓고 챙기지 않는다(1편)거나, 어머니가 딸을 제 친구에게 소개해주는데 영 살갑지가 못하다(2편)거나, 또 다른 어머니가 제 자식을 지인에게 소개해주면서도 무관심하고 몰이해하다(3편)거나 하는 식이다. 가만히 보다보면 부자, 모녀, 모자의 관계는 그저 가족관계기록부 상에서처럼 가깝지가 않은 듯하다. 진짜로 있어야 할 게 없는 것이다.
그 사이 부각되는 또 다른 관계들이 있다. 공문서 상에선 아무것도 아닌, 아버지 한의원의 직원이 아들과 찐한 애정이 담긴 포옹을 할 때(1편) 관객은 마치 그녀가 이 젊은 남성의 엄마나 큰누나와 같다는 인상을 받는다. 지인에게 소개받은 그녀의 딸을 이제 제 집으로 들이기로 한 여성이 도리어 은근한 관심과 애정을 베풀 때(2편) 우리는 이들의 관계가 보다 안온하고 풍요로울 것임을 짐작한다. 그리고 기본적인 사실조차 알지 못하거나 보지 않는 어머니보다 오늘 처음 만난 배우가 더 진실한 다그침을 쏟아낼 때는 어떤가(3편). 보기에 따라서는 주제넘고 꼰대적일 수도 있을 그 자리 뒤에 차가운 바다 안으로 향하는 사내의 모습이 있다. 그런 그를 끌어안아주는 건 독일에서 만난 남자가 좋다고 가차 없이 떠난 연인이 아니라 친구다. 그리고 아픈 몸으로 삶 전체를 비관하게 된 여자를 보듬는 것도 그의 독일인 애인이 아니라 헤어져 아무 관계도 아니게 되어버린 남자이고 말이다(3편).
▲홍상수 전작전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흑백 화면 속에서 더 두드러지는 것
영화 <인트로덕션>은 이 같은 상황의 중첩을 통하여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이야기를 돌아보도록 한다. 대체 뭐가 중한가, 진짜와 가짜라고 믿는 것은 정말로 그러한가. 때로는 장부 위의 기록보다, 공식적이라고 인정하고 인정받는 그깟 것들보다 오가는 마음이 훨씬 더 중한 것이 아닌가. 혹자는 또한 자기변명의 반복이라 할 수 있을 그런 이야기를 홍상수는 꺼리지 않고서 다분히 홍상수 영화란 소리를 들을 영화로써 표현해낸다. 예술과 삶이 그렇게 맞닿아 오늘의 관객에게 가서 닿는다. 베를린영화제가 이 작품에 각본상을 준 건 잘 짜인 구성이 마침내 관객으로 하여금 이러한 생각에 이르도록 할 만큼의 힘을 갖췄다는 판단이었으리라.
그렇다면 서두에 적은 '인트로덕션'은 무슨 뜻일까. 우선은 소개, 사람이 다른 누구에게 제가 아는 사람을 소개해 안으로 들이는 일일 테다. 영화 내내 그러한 상황이 반복되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가 그저 그쯤에서 그치지는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영화가 제목을 '소개'가 아닌 외래어로 단 것이 여러 뜻이 중첩되어 관객에게 다가서길 바라서이기 때문이기도 하리라 여긴다.
<인트로덕션> 속 이야기는 홍상수의 영화세계가 전과는 한층 달라졌음을 알린다. 윗세대가 아랫세대를 위무하고, 흑백화면을 취하거나 화질을 고의로 떨어뜨리는 등 전에는 흔히 하지 않던 영화적 작법을 감행하는 시도 등이 그렇다. 어쩌면 홍상수는 <인트로덕션>으로 새로운 영화세계로의 도입을 꿈꾸고 있는 것은 아닐까. 적어도 나는 그러하다고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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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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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인트로덕션'이라 했을까... 한국어 좋아하던 홍상수가 낯선 제목 단 이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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