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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다 어디갔나"... 20여 년 전 류승완의 쓴소리에 담긴 진심

[김성호의 씨네만세 1348] '영화와 책' <독립영화> 3호

26.05.21 10:47최종업데이트26.05.21 1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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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2일 한국독립영화협회 사무실서 열린 <독립영화> 통권 3호 다시읽기 모임엔 구성원이 얼마 모이지 않았다. 전주국제영화제 직후 열린 모임 일정이 빠듯했던 때문일 테다. 브라질 어느 영화제까지 가 있는 감독은 온라인 모임이라면 참석을 하겠다 의사를 밝혔다는데, 아쉽게도 이번 모임은 오프라인으로 서로 얼굴을 보고 진행되게 됐다. 비평가 둘과 감독 하나가 모여 26년 전, 그러니까 2000년 초에 펴낸 잡지 세 번째 호를 읽고 느낀 감상을 이야기한다.

다른 이들보다 먼저 읽고 함께 논의할 꼭지를 뽑아야 하는 발제자는 이번 호 발제가 몹시 즐거웠다고 말했다. 26년 전, 그러니까 이제는 부모뻘이 된 앞선 세대의 옛이야기가 상당히 유효한 물음을 던졌다고 더했다. 모임을 함께 시작한 감독과 배우, 비평가, 영화제 관계자들이 입 모아 말하는 것처럼, 이 잡지를 다시 읽는 작업은 우리가 처음 기대한 것보다 훨씬 더 가치 있는 일인지도 모르겠다.

이번 호는 비평으로 문을 연다. '이 계절의 독립영화들', 또 단순히 '리뷰'라 이름 붙은 섹션을 통해 1998년부터 1999년까지 나온 20여 편의 독립영화가 다뤄진다. 나는 묻는다. 오늘에 이르러 <독립영화> 잡지는 보편성을 획득한 이야기로 문을 열지 않느냐고, 어째서 이때엔 개별 작품을 소개하는 글로써 문을 여는 걸지를 묻는다. 잡지를 보는 이가 독립영화에 애정을 가졌다 해도 개별 작품은 보지 못한 이가 더 많지 않겠느냐는 질문이다. 신간 55호를 함께 만드는 과정을 통해 나는 개별 꼭지 하나의 배치에도 편집자들의 의도가 깃들어 있음을 배웠다. 개별 작품을 조금이라도 더 알리고자 하는, 글을 넘어 영화에 닿게 이끌고자 하는 만드는 이들의 마음을 우리는 한참 동안 논했다.

독립영화 다시읽기 월 2회, <독립영화> 각 호를 두고 발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
독립영화 다시읽기월 2회, <독립영화> 각 호를 두고 발제와 토론을 진행하고 있다.김성호

3호의 특별함

3호를 읽으며 각별히 흥미롭다 느낀 지점이 꽤 된다. 개중 하나는 이번 호에 언급된 창작자 중 여럿이 현시점에도 작가로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 1, 2호의 안타까움이라면 창작자 중 다수가 더는 독립영화판, 심지어 영화판 어느 곳에서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많은 창작자가 데뷔작을 낸 뒤 활동을 지속하지 못하고 저물어간다. 예술가의 삶이 대개 그러하듯, 일정 수준에 오르지 못하면 춥고 배고픈 때문일 테다. 더구나 영화는 다른 예술만큼, 혹은 그보다도 자본이 많이 드는 탓으로 오로지 열의만으로 감당하기도 쉽지 않은 분야기도 하다. 그래도 그렇지, 번번이 등장하는 이름마다 20여 년의 시간을 건너지 못하고 좌초하고 침몰한단 것은 슬픈 일이 아닌가.

류승완 잡지 내지
류승완잡지 내지한국독립영화협회

그런데 3호만큼은 다르다. 사실상 주인공 격인 류승완을 비롯해 김성호, 이장욱, 이미영 등 여러 이름들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각자가 지나온 행보, 또 오늘의 위상이 3호가 나온 2000년 당시와는 다르겠으나, 오늘에도 자리한 동료 영화인의 어제를 발견할 수 있단 건 이 잡지를 다시 읽는 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매 호가 그렇지만 이번 3호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독자에게 유익함을 전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승부수는 당대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에게 말을 거는 '말걸기', 또 '한국영화의 문제와 대화' 코너가 되겠다. 단편 <패싸움>, 또 이를 포함한 전설적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이 해 한국영화판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이 된 류승완이 데뷔작 제작일지를 적어 보냈고, 잡지 기자와 충실하고 도발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작일지는 맨주먹으로 일어나 꿈에 닿는 감동적 수기다. 잡지를 보고 박찬욱을 찾아가 연출부에 합류하고, 제 영화를 찍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동료를 모으고, 온갖 일을 마다 않고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이 하나하나 그렇다.

그가 구상한 <패싸움>이 제작되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나쁜영화> <비트>, 여러 독립단편영화까지 온갖 10대를 다룬 작품들이 쏟아져 조급함을 느끼던 모습 또한 역력하게 느껴진다. '캐스팅했던 배우들은 점점 나이가 들기 시작하고' '연기자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기에' 하는 말들에서 그가 느끼던 두려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쫓기듯 제작비를 마련하고 친구의 당구장에서 무얼 찢고 부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촬영한 이야기가 긴박하게 읽힌다. 어렵게 찍은 영화가 그 시절 막 태동하던 여러 영화제를 돌며 관심을 모으고 상을 받는 과정은 저 유명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가 <엘 마리아치>를 찍어 대단한 성공을 거둔 뒤 낸 수기를 연상케 할 만큼 인상적이다.

류승완은 대담을 통해 자기에게 쏟아진 여러 비판들에 솔직히 응수한다. '충무로 스태프를 데리고 영화를 저 정도 찍지 못하면 되느냐'는 숱한 비난에 대한 생각부터, 관객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동료 영화인들에 대한 질책, 또 관객들에 대한 쓴소리까지를 가리지 않고 말한다.

"난 관객의 속물근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예전에 <희생>이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던 관객은 다 어디에 갔나. 서울단편영화제 1,2,3회 때 줄 서서 보던 사람들 다 어디 갔냐는 말이다. 그럴 땐 배신감 느낀다. <소풍>도 뉴스 나올 땐 몰리더니 이번 영화제 때는 보지도 않는다. 관객의 문제와 함께 생각해야 할 건,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고 독립영화가 관객을 배려해야 한다."

독립영화 책 표지
독립영화책 표지한국독립영화협회

앞선 이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독립영화가 선 좁은 토양과 그를 발전케 할 방안에 대한 인식과 고민, 또 한 명의 창작자로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발버둥, 무엇보다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열의가 느껴지는 인상적 인터뷰다. 오늘에 이르러 읽어도 시차가 없는 영화와 예술, 산업에 대한 인식이 도리어 독립영화를 저항이며 운동과 같은 좁은 틀 안에 묶어두려는 비좁은 시각들과 대비된다. 과연 류승완이 오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창작자 가운데 하나로 자리한 이유를 알 만 하다.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도 여럿이다. 옥과 돌을, 찐과 짭을 가려내게 하는 20여 년에 걸친 시간의 세례 뒤에서 독자는 편히 진실과 그를 가리는 못난 태도를 읽어내게 된다. 누군가, 당대엔 꽤나 존재감 있는 어느 영화인들은 <쉬리>며 <초록 물고기>로부터 지나간 이데올로기, 안이한 구조, 낡은 형식만을 읽어낸다. 그로부터 할리우드와 경쟁하기 위한 도전과 발전, 관객에게 닿기 위한 발버둥과 유효한 메시지를 조금도 발견하지 못한다. 애써 무시하는 것인지 눈을 가린 렌즈 탓에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알 수 없는 비난들이 지금에 이르러 도리어 이들을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한다.

반면 비난에 움츠리지 않고 비판을 보약삼아 전진하는 창작자들 또한 있다. <독립영화> 3호로부터 읽게 되는 것이 또한 이것이다. 누군가는 독립영화가 기성 주류 문화가 카메라를 가져다 대지 못하는 것을 살피고 영화로 제작해 대중 앞에 보이는 역할을 수행한다고도 말한다. 정말이지 그를 해내는 창작자 또한 이 안에 있다. '씨네만세'에서 조만간 살필 사북항쟁을 다룬 다큐, <먼지, 사북을 묻다>와 같은 작품이 꼭 그러하다.

<독립영화> 3호 가운데 먼저 걸어간 이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답을 알지 못했다. 그 밟은 자국을 이정표 삼아 오늘의 후배들이 전진한다. 나는 지난 시대와 달리 선배라 할 이들이 자리한 오늘의 토양을 달갑게 여긴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독립영화 한국독립영화협회 한독협 영화와책 김성호의씨네만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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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