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승완잡지 내지
한국독립영화협회
그런데 3호만큼은 다르다. 사실상 주인공 격인 류승완을 비롯해 김성호, 이장욱, 이미영 등 여러 이름들을 지금도 찾아볼 수 있다. 각자가 지나온 행보, 또 오늘의 위상이 3호가 나온 2000년 당시와는 다르겠으나, 오늘에도 자리한 동료 영화인의 어제를 발견할 수 있단 건 이 잡지를 다시 읽는 작업에 새로운 의미를 불어넣는다.
매 호가 그렇지만 이번 3호도 형식과 내용 모두에서 독자에게 유익함을 전하기 위해 고심한 흔적이 역력하다. 승부수는 당대 이슈의 중심에 선 인물에게 말을 거는 '말걸기', 또 '한국영화의 문제와 대화' 코너가 되겠다. 단편 <패싸움>, 또 이를 포함한 전설적 장편 데뷔작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로 이 해 한국영화판에서 가장 빛나는 이름이 된 류승완이 데뷔작 제작일지를 적어 보냈고, 잡지 기자와 충실하고 도발적인 인터뷰를 진행했다.
제작일지는 맨주먹으로 일어나 꿈에 닿는 감동적 수기다. 잡지를 보고 박찬욱을 찾아가 연출부에 합류하고, 제 영화를 찍기 위해 여기저기를 찾아다니며 동료를 모으고, 온갖 일을 마다 않고 제작비를 마련하는 과정이 하나하나 그렇다.
그가 구상한 <패싸움>이 제작되지 못하고 있는 시기에 <나쁜영화> <비트>, 여러 독립단편영화까지 온갖 10대를 다룬 작품들이 쏟아져 조급함을 느끼던 모습 또한 역력하게 느껴진다. '캐스팅했던 배우들은 점점 나이가 들기 시작하고' '연기자들이 어느새 고등학생으로 보이지 않을 정도로 나이가 들어가고 있었기에' 하는 말들에서 그가 느끼던 두려움이 그대로 묻어난다. 쫓기듯 제작비를 마련하고 친구의 당구장에서 무얼 찢고 부수지는 않을까 걱정하며 촬영한 이야기가 긴박하게 읽힌다. 어렵게 찍은 영화가 그 시절 막 태동하던 여러 영화제를 돌며 관심을 모으고 상을 받는 과정은 저 유명한 로베르토 로드리게즈가 <엘 마리아치>를 찍어 대단한 성공을 거둔 뒤 낸 수기를 연상케 할 만큼 인상적이다.
류승완은 대담을 통해 자기에게 쏟아진 여러 비판들에 솔직히 응수한다. '충무로 스태프를 데리고 영화를 저 정도 찍지 못하면 되느냐'는 숱한 비난에 대한 생각부터, 관객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동료 영화인들에 대한 질책, 또 관객들에 대한 쓴소리까지를 가리지 않고 말한다.
"난 관객의 속물근성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예전에 <희생>이나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를 보던 관객은 다 어디에 갔나. 서울단편영화제 1,2,3회 때 줄 서서 보던 사람들 다 어디 갔냐는 말이다. 그럴 땐 배신감 느낀다. <소풍>도 뉴스 나올 땐 몰리더니 이번 영화제 때는 보지도 않는다. 관객의 문제와 함께 생각해야 할 건, 앞에서 언급했듯이 아마추어리즘에서 벗어나고 독립영화가 관객을 배려해야 한다."
▲독립영화책 표지
한국독립영화협회
앞선 이의 발자국은 뒷사람의 이정표가 되리니
독립영화가 선 좁은 토양과 그를 발전케 할 방안에 대한 인식과 고민, 또 한 명의 창작자로서 돌파구를 마련하려는 발버둥, 무엇보다 영화 그 자체에 대한 열의가 느껴지는 인상적 인터뷰다. 오늘에 이르러 읽어도 시차가 없는 영화와 예술, 산업에 대한 인식이 도리어 독립영화를 저항이며 운동과 같은 좁은 틀 안에 묶어두려는 비좁은 시각들과 대비된다. 과연 류승완이 오늘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창작자 가운데 하나로 자리한 이유를 알 만 하다.
반면 그렇지 못한 이들도 여럿이다. 옥과 돌을, 찐과 짭을 가려내게 하는 20여 년에 걸친 시간의 세례 뒤에서 독자는 편히 진실과 그를 가리는 못난 태도를 읽어내게 된다. 누군가, 당대엔 꽤나 존재감 있는 어느 영화인들은 <쉬리>며 <초록 물고기>로부터 지나간 이데올로기, 안이한 구조, 낡은 형식만을 읽어낸다. 그로부터 할리우드와 경쟁하기 위한 도전과 발전, 관객에게 닿기 위한 발버둥과 유효한 메시지를 조금도 발견하지 못한다. 애써 무시하는 것인지 눈을 가린 렌즈 탓에 보이지 않았던 것인지 알 수 없는 비난들이 지금에 이르러 도리어 이들을 우스꽝스럽게 보이도록 한다.
반면 비난에 움츠리지 않고 비판을 보약삼아 전진하는 창작자들 또한 있다. <독립영화> 3호로부터 읽게 되는 것이 또한 이것이다. 누군가는 독립영화가 기성 주류 문화가 카메라를 가져다 대지 못하는 것을 살피고 영화로 제작해 대중 앞에 보이는 역할을 수행한다고도 말한다. 정말이지 그를 해내는 창작자 또한 이 안에 있다. '씨네만세'에서 조만간 살필 사북항쟁을 다룬 다큐, <먼지, 사북을 묻다>와 같은 작품이 꼭 그러하다.
<독립영화> 3호 가운데 먼저 걸어간 이들의 발자국이 선명하게 찍혀 있다. 그들 또한 우리와 같이 답을 알지 못했다. 그 밟은 자국을 이정표 삼아 오늘의 후배들이 전진한다. 나는 지난 시대와 달리 선배라 할 이들이 자리한 오늘의 토양을 달갑게 여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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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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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은 다 어디갔나"... 20여 년 전 류승완의 쓴소리에 담긴 진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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