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감찰관> 공연 장면
유희정
극의 중심 사건은 단순하다. 마을 사람들은 하급 관리 흘레스타코프를 진짜 감찰관으로 착각한다. 그러나 흘레스타코프는 처음부터 거대한 권력을 가진 인물이 아니었다. 그는 오히려 비어 있는 존재에 가깝다. 그 빈 곳에 권위와 두려움과 욕망을 채워 넣은 것은 마을 사람들이다.
이 지점에서 연극은 갑자기 서늘해진다. 사기꾼은 혼자 탄생하지 않는다. 속고 싶은 사람들이 있어야 사기는 완성된다. 들키고 싶지 않은 죄책감, 권력에 기대고 싶은 욕망, 자기만은 빠져나가고 싶다는 비겁함이 모여 가짜 권력을 만든다. 흘레스타코프가 감찰관이 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이 그를 감찰관으로 만들었다.
무대 위 군중은 자주 한 사람을 가운데 두고 뭉친다. 누군가는 어깨를 붙잡고, 누군가는 뒤에서 밀착하고, 누군가는 불안한 눈으로 주변을 살핀다. 그 모습은 한 사람을 보호하는 듯 보이지만, 동시에 그를 포획하는 것처럼 보인다. 가짜 감찰관은 그렇게 탄생한다. 한 사람의 거짓말 때문이 아니라, 모두의 불안이 그를 감싸고 들어 올린다. 권력은 위에서 내려오는 것 같지만, 때로는 아래에서 떠받들며 만들어진다.
악기들이 등장하는 장면도 흥미롭다. 아코디언, 플루트, 기타, 베이스, 탬버린, 색소폰 같은 악기들이 배우들의 몸과 함께 움직인다. 배우들은 익살스러운 악단처럼 모이고, 불안한 합주단처럼 흩어진다. 마을의 혼란은 비극처럼 폭발하지 않는다. 오히려 흥겨운 소동처럼 연주된다. 그래서 더 무섭다. 부패와 공포가 음악이 되고, 불안이 리듬이 되는 순간, 관객은 웃으면서도 마음 한구석이 서늘해진다.
좋은 풍자는 관객을 안전한 자리에 두지 않는다. <감찰관>이 가진 힘도 거기에 있다. 관객은 부패한 관료들을 내려다보며 웃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느 순간 연극은 거울을 객석 쪽으로 돌린다. "당신은 지금 무엇을 보고 웃고 있는가." 그 질문이 도착하는 순간, 웃음은 비로소 풍자가 된다.
소문과 공포가 권력을 만든다
▲연극 <감찰관> 공연 장면
유희정
<감찰관>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감찰관의 실체가 아니라 감찰관을 둘러싼 반응이다. 권력은 등장하기 전부터 작동한다. 사람들은 아직 아무것도 확인하지 않았지만, 이미 권력 앞에 선 사람처럼 행동한다. 감찰관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태에서 감찰관을 두려워하고, 감찰관이 무엇을 알고 있는지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죄를 먼저 짐작한다.
이것은 소문이 작동하는 방식과 닮아 있다. 소문은 사실의 자리를 대신 차지한다. 때로는 사실보다 더 빠르게 사람을 움직인다. 그리고 소문이 강해지는 곳에는 대개 불신이 있다. 제도에 대한 불신, 절차에 대한 불신, 공정성에 대한 불신, 권력의 의도에 대한 불신이다.
▲연극 <감찰관> 공연 사진
유희정
무대 위에서도 소문은 보이지 않는 바람처럼 움직인다. 한 사람이 말을 꺼내면 다른 사람들의 몸이 먼저 반응한다. 멀리 떨어져 있던 인물들이 갑자기 한곳으로 몰리고, 누군가는 무대 가장자리에서 엿듣고, 누군가는 편지를 움켜쥔 채 군중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말은 작게 시작되지만, 몸들은 크게 흔들린다. 이 연극에서 소문은 대사가 아니라 동선이다. 정보는 입에서 입으로만 이동하지 않는다. 어깨와 시선과 발끝과 구부러진 허리를 통해 번져나간다.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외부에서 온 감찰관이 아니라 자기 안에 이미 있는 부패다. 소문이 그들의 몸을 흔드는 것은 소문이 강해서가 아니다. 그들이 흔들릴 이유를 이미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작품은 단순한 관료 풍자에 머물지 않는다. 선거를 앞둔 정치권, 인사 논란 속의 문화예술계, 이전설과 개편론 앞에서 흔들리는 현장 모두에게 질문을 던진다. 감찰받아야 할 것은 권력자뿐인가. 아니면 권력의 냄새를 맡고 먼저 자세를 고치는 우리 자신도 함께 감찰받아야 하는가.
고전이 오래 살아남는 이유는 과거를 잘 보존해서가 아니다. 오늘을 불편하게 건드리기 때문이다. <감찰관>은 1836년에 쓰였지만, 2026년 한국 사회 한복판에서 여전히 묻는다. 누가 감찰관인가. 누가 감찰받아야 하는가. 그리고 우리는 왜 아직 오지도 않은 권력 앞에서 먼저 흔들리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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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문화+서울>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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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0년 전 러시아 희곡이 한국 사회에 날리는 일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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