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녀원장 만나러 가는 빌일반인의 접근이 힘든 수녀원에 들어가 원장을 만나러 가는 중인 빌
그린나래 미디어(주) 배급 스틸 컷
이 같은 상황에서 빌 부부가 수녀원의 부조리를 세상에 알리면 당장 딸들이 학교 진학에 어려움을 겪을 거라고 고민하는 건 당연하다. 더욱이 일자리는 부족하고 지역사회는 좁았으며, 교회가 큰 권위를 지닌 나라에서 교회 기관을 상대로 의문을 제기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었다.
아일랜드에서는 긴 세월 피임과 낙태가 불법이었다. 미혼 임신은 개인의 실수가 아니라, 종교적 죄였고 당사자는 가족의 수치이자 사회적 낙인 대상이었다. 피임은 1980년대부터 제한적으로 허용되었고, 지난 2018년에 이르러서야 국민투표로 낙태가 조건부로 합법화되었다. 그 이후 미혼 출산에 대한 사회적 낙인도 거의 사라져 가는 추세에 있다.
영화 속 주인공 빌의 어머니 세라는 미혼모였다. 그럼에도 운 좋게도 막달레나 세탁소에 구금되지 않았다. 큰 농장을 소유한 윌슨 부인이 거둬 주었기 때문이다. 윌슨 부인은 세라가 사망한 뒤 남은 빌을 고아원에 보내지 않고 맡아 길렀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였을까? 영화는 속 시원히 알려 주지 않는다.
그런데 윌슨의 삼촌으로 알려진 '네드'라는 인물과 빌의 관계가 예사롭지 않다. 네드는 영향력이 있는 사업가이고 빌을 어려서부터 돌봐준 인물이다. 그와 윌슨 부인은 부부인지 아니면 모자 관계, 또는 친인척인지는 불분명하다. 빌은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네드와 그의 모친 세라가 연인 관계에 가까웠음을 기억해 낸다. 이는 빌이 네드의 사생아였을 가능성을 암시한다.
하지만 네드는 빌을 아들로 공식 인정한 적 없고 그저 뒷배경이 되어 줄 뿐이다. 빌은 오랜 고민 끝에 수녀원에서 탈출을 원하는 소녀를 구출하기로 결심하고 실제로 그녀를 집으로 데려온다. 그가 이 같은 일을 결행한 핵심 요인은 자신의 어머니를 떠올렸기 때문이다. 윌슨 부인이 거둬 주지 않았다면 그와 모친도 어찌 되었을지 모를 운명이었다. 이 같은 사실을 떠올리며 빌은 마침내 과감한 행동에 나선다.
아일랜드는 2천 년대 이후 성직자 성학대 스캔들, 막달레나 세탁소 문제 폭로에 대한 충격으로 교회 권력 남용에 대한 사회적 반발이 커지면서 급격한 세속화로 치달았다. 정부의 아동학대 조사위원회가 설립돼 교회가 운영하던 시설에 대한 전면 조사가 이루어졌고, 수천 명의 아동이 신체, 성적 학대를 당하였음이 드러났다.
이 파장과 충격으로 지난 2015년 국민투표로 동성 결혼이 합법화됐고, 2018년 국민투표로 낙태 금지가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교회에 대한 신뢰가 뿌리째 흔들리면서 미사 참여율이 급락했고, 성직자의 권위도 크게 악화되었다.
이 영화는 진실을 알면서도 자기 가족과 공동체의 유지를 위해 은폐하고 침묵하는 구조를 보여주며 그것을 깨뜨려야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음을 일깨워 준다. '막달레나 세탁소' 사건을 보며 '부산 형제복지원'을 떠올렸다는 사람들이 많다. 형제복지원도 아동학대와 체벌, 암매장 등이 오랫동안 이어졌으나 원장 일가는 승승장구하였다. 이 같은 일이 어떻게 가능하였는지 살펴보면 '막달레나 세탁소 문제'와 그리 다르지 않다.
그 침묵의 카르텔을 깨뜨리는 송곳 같은 사람이 없다 보니 끔찍한 범죄가 버젓이 되풀이되곤 하였다. 영화 <아주 사소한 것들>은 침묵과 은폐의 구조를 드러내고 뚜렷한 해결책 대신 질문과 생각거리를 남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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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솔샘교회 목사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입맞추는 세상' 함께 꿈꾸며 이루어 가기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