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 장면
월트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나이젤(스탠리 투치)은 중심에 서지 않는다. 하지만 중심이 흔들릴 때마다 그 자리를 지탱하는 사람은 늘 나이젤이었다. 미란다의 괴팍함을 받아내면서도 흔들리지 않고, 앤디에게는 타이밍을 아는 조언을 건넨다. 갈등이 터지는 순간에도 그는 균형을 잃지 않는다. 그가 특별한 건 상황을 누구보다 정확하게 읽기 때문이다. 감정을 억누르는 사람이 아니라, 감정을 다룰 줄 아는 사람. 그래서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1편에서 나이젤은 앤디에게 손을 내밀었다. 아무것도 모르던 신입에게 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조용히 알려준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번 영화에서는 그 방향이 달라진다. 이제는 앤디가 나이젤을 돕는 순간이 온다. 그 장면이 이상하게 뭉클하다.
아무 의미 없어 보였던 관계가, 20년이 지나 서로에게 결정적인 순간이 되는 것. 사회생활이란 결국 그런 방식으로 이어진다. 나이젤과 앤디의 모습을 통해서 우리는 나의 주변에 나를 돕던 멘토를 자연스럽게 떠올리게 된다. 그런 사람은 분명히 있으니까.
포용력이라는 건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조용하고, 화려하지 않고, 그래서 자주 간과된다. 하지만 나이젤 같은 사람이 없으면 조직은 금방 갈라진다. 1인자가 아니지만, 누구도 쉽게 대체할 수 없는 존재. 그리고 그 존재의 가치를 가장 먼저 알아보는 건, 오랜 시간을 함께 버텨온 사람들이다.
20년이 지나 다시 만난 사람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2>는 단순한 속편이 아니다. 이 영화는 시간을 이야기한다. 그 시간 속에서 변한 사람들을,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들을 보여준다. 데이빗 프랭클 감독은 1편의 감각을 유지하면서도 20년이라는 무게를 억지스럽지 않게 녹여냈다. 서사가 다소 단순하게 풀리는 지점이 있지만, 이 영화의 목적은 완벽한 이야기가 아니다. 인물이 어떻게 달라졌는지, 우리는 얼마나 변했는지가 목적처럼 보인다.
메릴 스트립, 앤 해서웨이, 스탠리 투치, 에밀리 블런트 같은 배우들 역시 같은 캐릭터를 다시 연기하는 게 아니라, 그 캐릭터가 20년 동안 어떻게 살아왔고 성장해왔는지를 몸으로 보여준다. 여전히 같은 사람 같지만, 분명히 달라진 사람들. 그 미묘한 변화가 이 영화의 가장 큰 힘이다.
1편을 보던 우리는 앤디와 같이 사회 초년생이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우리는 다르다. 때로는 앤디처럼 흔들리고, 때로는 미란다처럼 선택하고, 때로는 나이젤처럼 버틴다. 직장인으로 산다는 건 하나의 얼굴로 사는 게 아니다. 상황에 따라, 시간에 따라, 우리는 여러 얼굴을 오가며 살아간다.
그래서 이 영화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나에 대한 물음으로 이어진다. 지금 우리는 어떤 얼굴로 살고 있는가. 그리고 그 얼굴은, 스스로 선택한 것인가, 아니면 남의 시선에 맞춘 것인가. 1편을 좋아했다면, 이 영화는 단순한 추억이 아니라 지금의 자신을 돌아보게 만드는 시간으로 남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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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영화와 시리즈 속 감정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영화를 단순한 이야기보다, 우리의 삶과 감정을 비추는 거울처럼 바라봅니다.
브런치에 영화 감성 리뷰와 에세이를 연재하고 있으며,
영화 속 감정을 담은 첫 에세이집 《그럴 때, 나는 그를 떠올렸다》를 출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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