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후에 오는 것들스틸컷
쿠팡플레이
22년 만에 이뤄진 성공한 소설의 영상화
2024년 제작된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여러모로 의미 깊은 작품이 됐다. 일본에선 2010년대 기승을 부린 혐한 기류가, 한국에선 2019년 불거진 한일 무역분쟁 이후 '노 재팬' 흐름이 일정 부분 잦아든 시점에서 한국과 일본 사이의 사랑과 우정을 다룬 작품이란 점에서 특히 그러했다. 1998년 김대중 오부치 공동선언으로 일본 대중문화가 한국에 개방된 뒤 2000년대 들어 양국 간 영화와 드라마 교류가 본격화했으나 2010년대 그 흐름이 완전히 끊겼던 점은 특히 주목할 만하다. 한국 독립영화에 일본 배우가 출연하거나 현지촬영을 하는 정도를 제외하고는 공동제작이 끊기다시피 했던 상황에서, 제작은 한국에서 했으나 주연을 양국 배우가 나눠 갖고 배급에선 양국 모두 상당히 힘을 기울인 작품이 나온 것이다.
특히 원작이 된 소담출판사의 동명소설이 2002년 '한일 국민교류의 해'를 맞아 진행된 문화적 프로젝트였단 점에서 22년 만의 드라마 제작이 더욱 반갑다. 당시보다도 도리어 얼어붙은 관계 속에서 판권 매입과 리메이크 정도 말고는 교류가 이뤄지지 않던 양국의 영상콘텐츠가 OTT 시대와 맞물려 새로운 교통의 장을 마련할 수 있으리란 기대가 일기도 했다. 22년간 변한 양국 간 관계와 사회상, 달라진 문화적 정서 등을 드라마를 통해 돌아보는 계기가 될 수도 있는 일이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은 큰 틀에서는 원작을 따르되 시대적 변화를 감안해 작가와 연출자가 적극적으로 변주한 작품이다. 원작 소설이 츠지 히토나리와 공지영, 한국과 일본의 두 작가가 각기 남자와 여자 시점에서 쓴 사랑소설이었단 점에 비추어보면 그 형식에서부터 상당한 차이를 내포했기 때문이었으리라. 암수 한 쌍으로, 둘 모두를 읽을 때에야 아귀가 맞는 재미를 증폭시키는 특수한 형식의 소설이었다.
같은 방식으로 먼저 나온 <냉정과 열정 사이>가 나카에 이사무에 의해 성공적으로 영화화됐다는 점에서 본으로 삼을 작품이 있기는 하였으나, 6편의 시리즈로 구현해야 하는 드라마의 선택이 그와 꼭 같을 수는 없었을 테다. 더구나 <냉정과 열정 사이>보다 훨씬 큰 시차를 두고 현대화를 택한 드라마적 고민 또한 가능성보다는 제약으로 작용했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스틸컷
쿠팡플레이
멀고도 가까운 한국과 일본 사이
<코리아> <임금님의 사건수첩>의 문현성이 연출하고 정해심이 각본을 맡았다. 6부작 드라마는 과거 일본과 오늘의 한국을 무대로 펼쳐지는 청춘의 사랑 이야기를 그린다. 부모의 허락도 구하지 않고 대학 졸업 후 대책 없이 일본으로 건너간 최홍(이세영 분)은 현지에서 만난 꽃미남 고학생 아오키 준고(사카구치 켄타로 분)와 사랑에 빠진다. 둘은 동거까지 하며 열렬한 사랑을 나눈다. 집으로부터 지원이 끊긴 홍과 가난한 청춘인 준고는 늘 아르바이트로 바빴다. 특히 책임감 있는 청년인 준고가 더 그러했다.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던 두 사람 앞에 닥쳐오는 현실적 문제들과 그보다 더 중차대한 일들, 또 그렇고 그런 오해가 쌓이며 이들의 관계는 깨어진다.
드라마는 5년의 시간을 건너 오늘의 한국과 닿는다. 홍은 아버지의 출판사 중추로 활약하고 있고, 준고는 저와 홍의 옛 이야기에서 모티브를 얻은 소설을 발표해 성공을 거머쥐었다. 필명으로 활동하는 준고가 한국 홍보차 내한한 자리, 홍이 그 자리에 통역으로 나선다. 드라마는 둘의 재회로부터 빚어지는 일련의 이야기를 다룬다. 어느덧 서른쯤이 된 홍은 친구였던 민준(홍종현 분)과 결혼을 앞두고 있다. 그러나 준고가 나타나자 제 전 인상이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음을 확인한다.
소설과 마찬가지로 지난 사랑이 오늘 가운데 일어나는 작품이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은 있었을 절절한 사랑이 오늘의 현실 가운데 힘을 발하는 모습이 흥미롭다. 요즈음 여성향 웹소설 가운데 '재회물'이 하나의 장르를 이룰 만큼 많이 읽힌다고 한다. 그건 재회를 기다리는, 혹은 재회가 주는 재미에 탐닉하는 이들이 적어도 한 뭉텅이는 있다는 뜻이겠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이 건드리는 것이 꼭 그와 같은 시청자층이었음이 명백하다.
드라마는 지극히 감성적인 연출로써 보는 이의 감상을 증폭하는 데 온 힘을 쏟는다. 무엇보다 이 작품으로 한국 내 가장 유명한 일본 배우, 그러니까 지난 시대 기무라 타쿠야, 오구리 슌, 츠마부키 사토시 등이 차지했던 자리를 이어받은 사카구치 켄타로의 존재감이 확실하다. 한국 내 여러 예능에까지 출연하며 여심을 사로잡은 그가 한국에선 흔치 않은 부류의 매력을 여지없이 과시한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스틸컷
쿠팡플레이
혐한, 노재팬, 급증하는 국제결혼... 그리고
그러나 드라마 자체로만 보자면 당혹스러운 구석도 많다. 한일 교류에 관심이 있는 이들의 요청으로 본 작품임에도 그런 이들조차 도저히 공감하지 못한다는 캐릭터 설정이며 서사가 잇따라서다. 원작에서 시인 윤동주를 매개로 한일 간 풀리지 않은 역사적 문제를 얼마쯤 짚어냈던 작품이 이 시대에 이르러 역사와 그에 기인한 양국 간의 감정을 거의 고려하지 않고 있단 게 당혹스럽기까지 하다. 문화적 이해가 높아진 것이 아니라 아예 신경 쓰지 않는다는 듯한 묘사가 도리어 오늘의 시대정신인 걸까. 혐한과 노 재팬 운동, 거듭 일어나는 과거사 문제를 돌아보자면 지난 시대 문학이 주목한 지점을 오늘의 드라마가 외면했다 보는 편이 더 타당한 해석일 테다.
더불어 드라마 자체가 내포한 문제도 여럿이다. 드라마는 남녀 각자의 시점에서 풀어가는 소설의 형식미를 대체하지도, 극복하지도 못한다. 통상적인 선형적 전개를 택한다는 점에서 소설의 승부수를 포기한 셈인데, 그를 대신할 어떤 장치도 예비하지 않고 있다. 심지어 역사성까지 덜어내고 그저 소설 속 인물을 시각화하는 정도로 퉁치려 든다. 그렇다면 드라마는 오로지 사카구치 켄타로가 나올 때만 성공하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겠다.
시대상에 맞게 이야기를 편집하며 부실해진 설정 또한 구멍이 숭숭 나 있다. 둘의 첫 만남과 두 번째 만남 모두가 우연과 우연의 겹침으로써 이뤄진다. 두 사람이 마주할 때면 갑자기 줄 서 있던 다른 손님들이 사라지고, 서로가 필요할 때마다 딱 그 곁에 우연히 나타나는 등의 상황이 잇따른다. 충실히 조성하지 못한 감정을 증폭해 연기하는 연출이 거듭되며 이세영이 연기한 홍의 감정선은 도무지 평범한 여성의 것이라고는 믿기 힘들 만큼 널을 뛴다.
작품을 본 이들 중 많은 수가 그녀를 이해하지 못한다는 반응을 내놓는 건 그 때문이다. 논리보다는 당위에 기우는 선택이 많고, 중요한 만남은 모조리 우연으로 이뤄진다. 원작으로부터 취해야 했을 역사와 문화를 내버리고 도무지 쓸모없는 것만 챙긴 결과가 서사의 결핍과 감정의 과잉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빛나는 배우와 한일 양국의 신선한 닿음이 담겼으니, <사랑 후에 오는 것들>에 의미가 아주 없다고는 못 하겠다.
▲사랑 후에 오는 것들포스터
쿠팡플레이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공유하기
혐한, 노재팬 뛰어넘고 탄생한 이 사랑의 의미
- 페이스북
- 트위터
- 카카오톡
- 밴드
- e메일
- URL복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