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지선의 〈진흙새〉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세 번째, <진흙새>는 미래를 배경으로 하지만, 오히려 가장 현재적인 공포를 건드린다. AI 무기드론 테오, 그 시신경망을 제공한 인간, 그리고 그것을 기술과 자본의 언어로 관리하려는 권력이 공존한다. 얼핏 보면 첨단기술의 위험을 경고하는 이야기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작품이 끝내 파고드는 것은 기술보다 감각의 윤리를 중요시 한다.
얼마나 잘 맞히느냐, 얼마나 정밀하게 겨누느냐, 얼마나 빠르게 제거하느냐. 오늘의 전쟁은 점점 더 효율과 정확성의 언어를 닮아간다. 하지만 〈진흙새(clay pigeon)〉는 바로 그 지점에서 질문을 틀어버린다. 인간은 어디까지 자기 눈을 살상의 효율에 넘길 수 있는가. 그리고 언제부터 그 눈은 더는 겨누고 싶지 않게 되는가. 이 질문은 기술에 관한 것이면서 동시에 인간에 관한 질문이다(clay pigeon: 공중에 던져 올리는, 진흙으로 만든 원반 과녁).
가장 인상적인 장면은 테오가 표적을 향해 날아가지 않고 철새 떼를 따라 호수 위를 선회하는 순간이다. 멀리서 보면 드론은 새처럼 보이고, 새와 드론을 구분하지 못한 다른 무기들은 모두를 향해 사격한다. 이 장면은 설명보다 영상과 이미지로 승부를 걸었다. 인간이 만든 가장 정교한 살상 기계가 명령이 아니라 자유로운 비행을 선택하는 순간, 작품은 기계의 오작동이 아니라 인간 윤리의 실패를 말하기 시작한다. 정교해진 것은 기술이지 윤리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우리는 지금 정말 살아 있는 것인가?
세 편을 다 보고 나면 〈리브 어 라이브〉라는 제목이 다르게 들린다. 그것은 단지 "살아라"는 명령이 아니다. 누군가를 보고 싶어 하는 마음, 타인의 고통 앞에서 함부로 말하지 않으려는 망설임, 더는 쏘고 싶지 않아 하는 눈의 떨림, 폐허 속에서도 음악을 틀고 몸을 움직이게 하는 마지막 생의 충동까지 모두 품은 문장처럼 들린다.
이 작품은 전쟁을 거창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고양이 한 마리, 상자 하나, 음성메시지 하나, 강변의 대화, 새 떼의 움직임 같은 작은 이미지들을 오래 붙든다. 놀랍게도 바로 그런 사소한 것들이야말로 전쟁을 가장 정확하게 증언한다. 전쟁은 언제나 거대한 헤드라인과 숫자로 도착하지만, 결국 한 사람의 삶을 부수는 방식은 너무도 구체적이기 때문이다. 이 연극은 그 구체성을 놓치지 않는다. 그리고 바로 그 때문에, 막이 내린 뒤에도 무대 밖으로 쉽게 걸어나오기 어렵다.
지금 세계는 다시 미국과 이란의 충돌, 휴전, 재충돌의 가능성 속에서 한치 앞을 알 수 없다. 그런 때 〈리브 어 라이브〉는 조용하지만 분명하게 말한다. 전쟁은 뉴스 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그것은 누군가의 티켓이 되고, 택배 상자가 되고, 증언이 되며, 눈을 빌린 드론이 된다고. 그리고 그 모든 것을 통과한 끝에 사람은 끝내 묻게 된다.
"우리는 지금, 정말 살아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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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년간 문화예술계에서 글을 써왔다. 월간지 <문화+서울>에서 편집장(2013~2022)으로, 한겨레신문에서 필진(2016~2023)으로 취재와 예술가를 인터뷰했다. 현재는 서울 대학로 일대에서 공연, 전시 등 다양한 분야의 예술가들을 만나 이아기를 전하며, '서울문화투데이'와 '더프리뷰' 등 매체에 칼럼을 연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