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농구연맹(KBL)이 이른바 '고의 패배' 의혹을 일으킨 서울SK 전희철 감독에게 제재금 500만 원을 부과했다. 사실상 당시 SK의 경기력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은 인정한 셈이다. 하지만 사안의 심각성에 비해 가벼운 처벌 수위가 부과된 결정을 두고 프로 농구계를 바라보는 팬들의 시선은 더 싸늘해진 모습이다.
KBL은 지난 10일 재정위원회를 열고 지난 8일 안양 정관장전에서 고의 패배 의혹을 산 전희철 감독에게 제재금 500만 원을 부과하고 SK 구단에는 경고 조치를 내렸다. KBL 측은 "감독과 구단이 소명했으나 오해의 여지가 있다는 점을 인정해 책임을 물었다"고 설명했다. 상대 팀인 정관장에 대해서는 특별한 조치가 내려지지 않았다.
당시 SK는 PO진출을 이미 확정 짓고 최종 순위 결정만을 남겨두고 있었다. 상대인 정관장은 이미 2위가 확정된 상황. SK는 정관장전 경기 결과에 따라 6강 플레이오프 대진 상대를 선택할 수 있었다. 만일 정관장을 이기면 3위가 되어 6위 부산KCC를 만나고, 패배하면 4위가 되어 5위 고양 소노를 만나게 되는 상황이었다.
SK는 이날 경기 시작부터 주전급 선수들을 선발에서 제외했다. 승부의 분수령이 된 4쿼터는 아예 경기에서 노골적으로 이길 의지가 없는 듯한 플레이를 보였다. 특히 65-65 동점이던 경기 종료 13초 전 SK 김명진이 자유투를 얻어냈으나 일부러 노골을 의도한 것처럼 무성의하게 공을 던졌다. 특히 두 번째 슛은 아예 림조차 맞지 않은 채 백보드만 때리고 나오는 '에어볼'이 됐다.
이어진 수비에서도 느슨하게 플레이하다가 실점을 허용한 SK는 결국 65-67로 패배했다. 충분히 이길 수 있었던 경기를 석연치 않게 패하고 결국 4위가 된 SK는 6강PO에서 고양 소노를 만나게 됐다.
SK가 이 경기를 고의패배했다는 의혹이 불거진 이유는 6강 PO에서 만날 팀들과의 상대전적 때문이다. SK는 정규시즌 KCC와의 상대 전적에서 2승 4패로 뒤졌다. KCC는 올시즌 '슈퍼 팀'이라 평가 받던 우승 후보였다. 정규 리그 중반까지 주전들의 부상으로 신음 하며 정상 전력을 발휘 하지못했고, 시즌 막바지에 최준용과 송교창 등이 복귀하면서 전력이 강화됐다. KCC는 지난 2023-24시즌에도 정규리그를 5위로 마쳤으나 주전들이 복귀한 플레이오프에서 승승장구하며 우승까지 차지한 바 있다.
반면 소노를 상대로는 4승 2패로 우위를 점했다. 창단 첫 PO진출인 소노는 정규리그 MVP 이정현에 대한 의존도가 높고, 사령탑 손창환 감독도 올해 처음 지휘봉을 잡아 PO는 처음은 초보 감독이다. 손창환 감독은 재정위 전 열린 PO 미디어데이 행사에서 "'벌집을 건드렸다'는 얘기를 듣도록 최선을 다하겠다"며 SK전을 앞둔 각오를 밝히기도 했다.
KBL은 제재금과 경고를 부과하기는 했지만 엄밀히 말하면 고의 패배 의혹 자체를 완전히 인정한 것은 아니다. 전희철 감독은 미디어데이를 통해 "논란을 일으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였다. 이에 대한 KBL의 징계는 전 감독과 SK 측이 단지 '오해를 살 만한 플레이'를 했다는 데 대해서만 책임을 물은 것에 가깝다.
비슷한 사례로 KBL 재정위원회에 회부된 대표적인 사례는 2017년 3월 고양 오리온 추일승 감독이 있다. 당시 오리온은 핵심 주전 선수를 제외하고 4쿼터에 외국인 선수를 전혀 기용하지 않은 점 등이 문제가 됐다. KBL은 추 감독과 오리온에게도 마찬가지로 제재금 500만 원과 구단 경고 조치를 내린 바 있다. SK에 대한 이번 징계도 9년전 추일승 감독과 오리온 사례를 동일한 기준으로 책정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일각의 농구팬 들의 반응은, KBL와 SK가 '솜방망이' 처분으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을 외면하고 있다며 분노를 표출하고 있다. 돈을 내고 경기장을 찾은 팬들 앞에서 '불성실한 경기'를 펼칠 것만으로도 프로 의식이 없는 행동으로 질타를 받아 마땅하다. 이는 앞으로 리그에서 비슷한 상황에 놓이는 구단들에게는, 약간의 벌금만 감수하면 불성실한 플레이를 펼쳐도 된다는 '가이드라인'을 준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비판이 나온다.
KBL은 이미 그동안 수많은 승부조작 플레이로 흑역사를 만든 전적이 있다. 2004년 시즌 최종전에서 벌어진 문경은-우지원의 '3점슛 몰아주기', 김주성의 '블록슛 몰아주기' 사건은 여론의 엄청난 지탄을 받고 개인 타이틀 수상이 폐지되는 후폭풍에도 22년이 지난 아직도 정식 기록으로 버젓이 남아있다. 2011년에는 원주 DB 감독을 지낸 강동희가 브로커에게 돈을 받고 승부조작에 가담한 혐의로 KBL에서 영구 제명을 당한 사건도 있었다.
그럼에도 KBL은 과거의 오점에서 교훈을 전혀 얻지 못한 모습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전희철 감독과 SK도 중징계는 피했을지 모르지만, '공정한 과정과 경쟁'이라는 스포츠의 가치를 훼손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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