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인천 계양체육관에서 열린 프로배구 2025-2026 V리그 남자부 챔피언결정전 대한항공과 현대캐피탈 2차전 경기. 5세트 현대캐피탈 필립 블랑 감독이 비디오 판독과 관련해 심판진에게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현대캐피탈은 판정 결과에 강하게 항의했으나, KOVO의 사후 판독 및 소청심사위원회에서도 심판의 판정은 '정심'으로 인정됐다. 국제 배구계의 인아웃 규정과 KOVO 로컬룰 간의 해석 차이, 비디오 판독 시스템의 격차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하지만 현대캐피탈은 판정 결과에 승복하지 못했고 이후 시리즈 분위기는 묘하게 바뀌었다. 필립 블랑 감독은 "승리를 도둑맞았다"면서 "총재와 심판위원장도 모두 같은 굴레 안에 있다고 생각한다. 대한항공도 부끄러운 승리임을 알고 있을 것"이라고 선을 넘는 발언을 했다가 사과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블랑 감독은 "우리에게는 '분노'가 승리의 기폭제가 될 것"이라고 선언하며 판정에 대한 분노를 오히려 동기 부여로 삼겠다고 밝혔다. 실제로 현대캐피탈은 판정 논란 이후 홈에서 열린 3, 4차전을 연이어 셧아웃으로 완승하며 상승세를 탔다.
또한 블랑 감독은 4차전 승리 직후에는 "우리는 이미 '비공식 우승팀'이 됐다"는 발언으로 판정 논란이 있었던 2차전을 포함하여 사실상 3승 1패로 시리즈가 끝났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기도 했다. 이는 챔프전 판세를 뒤흔들기 위한 블랑 감독의 의도된 심리전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이에 결국 KOVO에서도 최종 5차전을 앞두고 블랑 감독의 거듭된 독설에 공개적으로 '유감'을 표시하며 사실상 경고를 날렸다.
한편 대한항공은 그 과정에서 적지않은 속앓이를 해야했다. 의도치않게 휘말린 판정 논란 때문에, 정당하게 이기고도 마치 '부끄러운 승리'처럼 매도당하는 상황에 내몰리며 선수단이 압박감에 시달려야 했다. 5차전 이후 기자회견에서 대한항공 세터 한선수는 "그 사건 이후 선수들이 동요되고 흔들렸던 건 사실"이라고 여파를 인정하면서 " 왜 우리가 잘하고도 웃음거리가 돼야 하나 싶었다"며 독기를 품었다고 밝혔다.
대한항공 선수단은 신경전이나 기싸움으로 맞대응하기보다는, 경기에만 집중하는 '냉철함'을 선택했다. MVP 정지석은 "장외 신경전은 우리가 컨트롤할 수 없는 부분이었다. 다시 분위기를 우리 것으로 가져오기가 힘들었다. 외부 이야기에 신경 쓰지 말고 우리가 할 일에 집중하자고 했다"면서 "현대캐피탈이 분노로 뭉쳐있는 게 보였던 만큼, 우리도 악으로 깡으로 하는 수밖에 없었다. 다행히 인천 홈 팬분들의 응원 덕분에 경기력이 나아졌다. 너무 힘들지만 재미있었던 역대급 챔프전이었다"고 돌아봤다.
대한항공을 정상으로 이끈 헤난 달 조토 감독은 "단 한순간도 외부의 요인에 휩쓸리거나 신경 쓰지 않았다. 현대캐피탈은 무척 환상적인 팀이지만 대한항공이 더 승리할 자격이 있었다고 말하고 싶다. 우리는 컵대회 우승, 리그 1위, 챔프전 우승까지 모두 해냈다. 우리는 원팀이었고 우리 선수들에게는 우승할 자격이 있었다"라며 선수들에게 영광을 돌렸다.
준우승팀 현대캐피탈도 마지막 고비를 못 넘기고 아쉽게 2인자에 그치기는 했지만 명승부를 빛낸 또 하나의 '공동 주연'이었다. 현대캐피탈은 정규리그 2위를 기록, 우리카드와 플레이오프(PO)를 포함하여 2주 동안 7경기 27세트를 치르는 강행군을 소화해야 했고, 판정 논란 등 외부의 악재 속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발휘했다.
챔프전 내내 거침없는 독설을 날렸던 블랑 현대캐피탈 감독도 최종전 직후에는 패배를 깔끔하게 인정하고 대한항공의 우승을 인정했다. 블랑 감독은 "아직 2차전의 분노가 사그라지지 않았지만 그와 별개로 다시 한번 대한항공에 축하의 말씀을 전한다"고 밝히며 "천안에서 그랬던 것처럼 끝까지 최선을 다했지만 체력적인 한계가 있었다. 마지막 한걸음을 내딛지 못했다"며 챔프전 여정을 마친 소감을 전했다.
2026 남자배구 챔프전은 역대급 명승부로 마감했지만 이와 별개로 외국인 선수 교체 규정, 비디오판독 시스템 개선 등은 숙제로 남았다. 장외 이슈가 챔프전에 대한 화제성과 흥행을 높이는 데 기여한 긍정적인 측면도 있다. 하지만 외국인 감독과 KOVO간의 불편한 공개 설전, 국제 배구 흐름과 동떨어진 KOVO만의 기이한 '로컬룰' 등은 배구 팬들에게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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