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의역 3번 출구스틸컷
부천국제판타스틱영화제
미지근하게 우렸을 때 더 맛난 차처럼
<구의역 3번 출구>는 결혼부터 이혼에 이르는 둘 사이의 복잡한 이야기를 구구절절 떠들지 않는다. 조정도, 재판도, 하다못해 둘의 입을 통해 '나 잘났고 너 못났다'는 흔한 말 한 마디 흘리지 않는다. 나쁘지 않은 관계, 심지어는 좋은 누나 동생처럼 보이는 둘의 관계가 어째서 파탄에 이른지를 영화는 썩 불쾌하지 않게 자연스레 드러낸다. 때로 어떤 관계는 깊어지지 않을 때에 가장 아름답다. 미지근하게 우렸을 때 더 맛난 차가 있듯이.
설명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것이 있다. 승구와 선희가 서로를 대하는 태도에서 관객은 짐작하게 된다. 이들 사이에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왔는지는 알 것 같은 느낌이다. "내가 좀 틀려도 그냥 맞다고 해"주길 바라는 여자와 도무지 그럴 수는 없었던 남자 사이의 흔하고 어리석은, 평범하고 아쉬운 관계였을 터다.
배우들의 연기도, 감독의 연출도 좋다. 대단할 것 없는 이야기지만 모두에게 다가서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구의역 3번 출구를 지나는 1만 명 넘는 사람들에게도 모두 그런 이야기 하나 쯤은 있었을 테다. 감독은 그중 하나를 붙들어 과하지 않고 담박하게 풀어냈을 뿐이다. 가만히 지켜볼 줄 아는, 나서지 않고 기다릴 줄 아는 감독의 자세가 그의 다음 작품을 기대하게 한다.
▲구의역 3번 출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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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김창민의 다음을 보지 못하게 됐다
나는 여기서 감독 김창민의 다음이 없을 것을 알린다. 김창민 감독은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났다. 1985년생, 고작 마흔이 된 나이였다. 아직 단편밖에 발표하지 않은 그의 필모그래피는 스태프 경력으로 가득 차 있다.
2013년 <용의자> 소품팀으로 시작해, <대장 김창수> <그것만이 내 세상> <마녀> <마약왕> <천문: 하늘에 묻는다> <소방관> 등 굵직한 작품에 작화팀으로 참여했다. 미술 기반으로 영화 현장 일을 익혀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두 번째 단편으로 일반에 공개된 <구의역 3번 출구>가 미술적으로 꽤 안정감 있는 작품인 이유도 유추할 수 있다.
김창민의 이름을 마주한 건 그가 세상을 떠나고 거의 반년이 지난 최근이었다. 뜻밖에도 주변의 영화계 인사들이 보내온 사건기사를 통해서였다. 그가 아들과 함께 경기도 구리시 한 식당을 찾았다가 폭행을 당해 숨졌다는 기사였다.
▲구의역 3번 출구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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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래서야 안 되는 일이다
뒤늦게 소식을 접한 이들이 분노한 것도 당연한 일이다. 사건 처리는 정말이지 엉망진창이었다. 사람이 잔혹하게 맞아죽은 사건임에도 수사는 지지부진했다. 피해자가 숨을 거둔 뒤에도 가해자들은 세상을 자유로이 오갔다.
가해자 중 한 명이 힙합곡을 발매하고 홍보했다는 의혹까지 더해지며 분노가 커졌다. 영화계는 아까운 인재를 잃었다. 장애가 있는 아들을 키우며 성실하게 작업해온 이였다. 시민이 공공장소에서 맞아죽어도 법이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없는 세상이다.
언론에 사건이 공개되고 법무부 장관까지 목소리를 내고서야 사건이 제대로 수사될 것이란 이야기가 나온다. 이래서야 될 일인가. 이 나라가, 사회가 정말이지 이리 돌아가서는 안 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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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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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분짜리 단편영화가 마지막, 40세 감독의 어처구니 없는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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