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트 스틸링포스터
소니 픽처스 코리아
1990년대로 돌아간 까닭
혹자는, 결코 적지 않은 이들이 이 영화를 평가절하하고는 한다. 개중엔 애로노프스키의 진지함을 추앙하던 이들이 있고, 또 그에게서 다소 결여돼 있다고 비판받던 여성주의적 감수성을 이야기하던 이들도 있다. 이만한 작품을 몇 편만 더 대어보라 하는 내게 대단한 걸작 말고는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는 비평가들조차 쉽게 <코트 스틸링>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모습과 자주 마주했다. 내가 이 영화에 대한 글을 적기로 한 것도 그래서다.
영화는 1990년대를 다룬다. 법과 정의 같은 거창한 것들은 뭣도 없는 헨리 같은 이 앞엔 아예 없다시피 하다. 그곳에서 어떻게든 각자도생하려는 헨리의 매 걸음은 그야말로 '간신히' 땅에 디뎌진다. 아무렇지 않게 터져나가는 머리통들은 부조리한 폭력이 평범한 사람 곁에 얼마나 아무렇지 않게 펼쳐져 있는가를 드러낸다. 그저 내게 일어나지 않았다 해서 없는 것이 아니다. 1990년대, 아직은 폭력이 더 선명했던 당시의 풍경들을 감독은 30년 전 그곳에 가두어 둠으로써 오락적으로 전시하고 이용한다.
그렇다고 오늘의 세상은 정말 다른가. 더욱 교묘해지고 이제는 대응조차 버거운 폭력과 부패, 부조리 앞에서 러스나 헨리 같은 송사리는 더는 정성 들여 쫓을 가치조차 없는 존재가 되었다. 저를 망친 러스를 탓하기보다 그 아버지의 죽음 앞에 애도를 표하는 헨리를 돌아본다. 사람 죽이길 모기 잡듯 하는 유태인들의 당혹스런 윤리감각은 또 어떠한가. 제 삶의 정수처럼 집착하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또 야구를 대하는 헨리의 모습이 변화하는 순간도 빼놓을 수 없다. 이 모두를 보고도 해방과 집착, 죄책감과 의미를 이 영화가 품고 있지 않다고 말할 수가 있을까.
<코트 스틸링>은 대런 애로노프스키의 역작이다. 전에 감행한 바 없는 방식으로 캐릭터를 넘어 시대라는 주제를 꺼낸 작품이다. 장르적 재미와 연출적 스타일 또한 버려두지 않았다. 도전, 그리고 성취, 얼마쯤의 실패와 도모할 가능성 또한 남겨져 있다. 그리하여 나는 대런 애로노프스키가 앞으로도 기대되는 작가라고 적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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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