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리스틸컷
반짝다큐페스티발
고전적 기법들로 새로움을 구하다
담긴 건 그저 어머니, 할머니와 나눈 대화들이다. 넉넉하지 못했고, 서럽거나 고되거나 괴롭거나 버거운 일들 또한 잦았다. 그런데도 열심히, 수고롭게 살았다. 제게 기댄 자식이 있어서였다. 가족이 있어서였다. 그들을 사랑했기 때문일 테다. 영화는 그렇게 어머니를 향한 아들의 이해와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으로 귀결된다. 유정천리, 정으로 메꾸는 천리의 먼 길이 된다. 중요한 건 천리의 떨어짐이 아니라 정이다. 이어짐이다.
텅 빈 객석 가운데 역시 텅 비어 있는 무대가 있다. 그곳에 배우 하나가, 이어 다른 배우 하나가 선다. 하나는 나이든, 그러니까 도입부에 엄마의 감정과 맞춘 듯한 연기를 펼친 이다. 뒤는 그녀의 자식쯤으로 보이는 젊은 여성이다. 이들이 저마다 무성영화의 주연 배우가 된 듯 고전적 연출이 가해지는 영화 위에서 저마다의 감정을 연기한다. 그리고 어느 순간 감독의 어머니와 할머니의 말이 끝나고 나면 이들 자신의 목소리가, 다분히 연극적인 대사가 돌출된다. 어머니와 할머니의 목소리가 더는 필요 없다는 듯이, 배우들이 그대로 어머니가 되고 또 감독 자신이 되어 감정이 담뿍 담긴 격한 대사들을 쏟아낸다.
표출되는 감정일랑 누구에게나 얼마쯤 있다.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고 괴로움이 있고 기대가 있고 설움이 있다. 어머니 없는 이가 없고 어머니에 대한 감정 없는 이도 없다. 그와 같은 보편적 감정이 영화 가운데 극화되어 꺼내진다. 감독 개인의 폭발하는 감성일까. 현악기의 선율과 고전영화, 또 옛 실험영화에서나 볼 법한 연출 또한 이어진다. 과하지만 아주 과하지만은 않은, 색다르지만 어디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시도다.
▲반짝다큐페스티발포스터
반짝다큐페스티발
사람과 사람 사이 오가는 마음
어머니와 자식의 대화, 또 그 속에 담긴 이야기로부터 서사를 끄집어낼 수 있는 영화다. 그러나 동시에 서사는 중요치 않은 감정과 그 표현에 집중하는 영화로 볼 수도 있겠다. 다분히 실험적인 양식이라 말할 수도 있겠으나, 또 누구는 그와 같은 실험이 일찍이 있었고 새롭지는 않다는 점에서 그저 요즘엔 흔치 않은 표현방식일 뿐이라고 할 수도 있으리라. 모두가 틀리지 않은 말이라고 여긴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삼백 년 전 어느 화가가 오늘에 살았다면 그저 화가이기만 하지는 않았을지 모를 일이다. 그림을 위해 음악을 연주하고, 그를 카메라로 찍어 영화로써 상영하며 그 곁에서 춤을 출 수도 있는 일이 아닌가. 중요한 건 담긴 내용과 표현이지 양식화된 방식은 아니다. 그리하여 나는 이 영화가 그저 영화라고만 여길 뿐이다. 유정천리, 오래되고 아직 사라지지 않은 정과 거리에 대한 영화 말이다.
안태현 감독은 연출의도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몰래 기록한 어머니와 그 어머니 말소리에는 이미지가 부재했다"고, 그래서 "미도극장 뒤편 까추 단 방을 재현하고자 했던 처음 생각은 극장으로 향했다"고 말이다. 그렇게 "배우와 대사가 따라붙었고, 막무가내 욕심을 뒤로한 채 촬영은 진행됐다"고 전한다. "혼자 영상들을 재생하자면 너무 부끄러웠다"면서도 "이름도 없는 역할을 돌파하듯 수행한 문경희와, 막중한 밤을 산책하듯 거닐던 김서휘가 있었다"며 완성하여 발표할 수 있었던 이유를 말한다. "함부로 무마되려던 영화는 그들 존재의 견인에 의해 겨우 완성된다"고 하였으니, 이야말로 과연 유정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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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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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할머니와 나눈 긴 대화, 몰래 기록한 아들의 속사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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