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드 미트스틸컷
오싹엔터테인먼트
고립과 탈출... 장르 이룬 저예산 스릴러
<콜드 미트>는 대부분의 시간을 눈보라 한 가운데 갇혀 옴짝달싹 못하는 차 안에서 이끌어간다. 먹을 것도 마실 것도 없는 상황 가운데 눈보라가 언제까지 이어질지 확신조차 없다. 바깥의 도움은 구할 수 없는 가운데 안에서의 위협까지 있다. 제목처럼 '차갑게 식은 고기' 신세가 된 이에게 희망은 남아 있을까. 잘 보이지 않는 한 가닥 빛을 좇아 어떻게든 살아남으려는 이들의 발버둥을 관객은 얼마쯤은 응원하는 마음으로, 또 얼마쯤은 흥미롭게 지켜보는 것이다.
<콜드 미트>와 같은 영화는 이제는 하나의 장르를 이뤘다 해도 좋다. 고립된 환경 가운데 제한된 인원으로 풀어가는 스릴러가 여럿이다. 우선 떠오르는 건 <폰 부스>다. 조엘 슈마허의 2003년 작 영화는 사람 가득한 대도시 뉴욕 한 복판에서의 영리한 고립을 이뤄낸다. 제목에서 연상 가능하듯, 그 시절엔 많았던 공중전화박스에 갇힌 주인공(콜린 파렐 분)이 전화를 끊으면 죽여 버리겠다는 수화기 너머의 협박을 받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된다. 대도시와 고립, 테러를 소재로 쫄깃한 작품을 뽑아내는 데 도가 튼 명감독의 솜씨를 즐길 수 있는 명작이다.
장소를 공중전화박스에서 달리는 버스로 바꿔보자. 이번엔 얀 드봉, 지난 세기 말을 풍미한 빼어난 촬영감독이 처음 메가폰을 잡고 연출한 전설적 데뷔작 <스피드>다. 키아누 리브스와 산드라 블록이 주연한 1994년 작 영화는 달리는 버스를 멈추면 폭탄을 터뜨리겠다는 협박을 받은 승객들이 버스를 멈추지 않고 달려야 하는 난감한 상황을 그린다. 이 영화를 보고난 뒤 나는 아주 오래도록, 그러니까 등교며 출근 길 막히는 버스 안에서 <스피드> 속 내달리던 버스를 소환해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는 했었다.
▲콜드 미트스틸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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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작과 졸작 사이... 차이는?
어디 버스만 가능할까. 달리는 열차 안에서만 펼쳐지는 영화를 우리는 여럿 알고 있지 않은가. 열차의 특성상 사람이 좀 더 많이 등장하긴 하지만 <소스 코드>부터 봉준호의 <설국열차> 같은 작품을 이야기할 수 있겠다. 고개를 들어 비행기에서도, 저 바다 밑 잠수함에서도 같은 방식의 이야기가 얼마든지 있다.
추락한 비행기가 바다 밑에 처박혀 상어들의 위협을 뚫고 수면 위로 올라가야 한다는 설정을 둔 <노 웨이 업> 같은 영화는 둘의 장점을 합쳐 단순하게 풀어간 노골적 작품이다(관련기사:
민망하기까지 한 상어의 공격... 해양 재난영화의 퇴보인가 (https://omn.kr/29f4w)
구태여 탈 것조차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다이브: 100피트 추락>은 바다 아래 돌뭉치에 끼여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언니를 구하려 수차례 잠수를 반복하는 동생의 이야기다. 무너진 것에 묻혀 제한된 자원으로 버티며 외부의 도움을 기다리는 영화 하면 한국영화 <터널>도 떠오른다. 외부 촬영분이 많아 저예산이라 하기는 어렵지만 고립된 상황을 극적 긴장으로 이어가는 발상은 위의 작품들과 공유하는 부분이 많다.
고립된 상황 그 자체에 더욱 집중해 나머지 많은 것을 제한 극단적 작품 또한 많다. <배리드> <폴: 600미터> <127시간> 같은 작품들. 무덤에서, 높은 탑 위에서, 바위 사이에 끼인 채로 오도 가도 못하게 된 이들이 구조를 기다리는 작품들이다. <쏘우>나 <큐브> 시리즈처럼 타의에 의해 고립된 이들이 맞이한 위험을 장르적으로 살린 작품군도 살펴볼 만하다. 장소, 또 등장인물을 제한함으로써 예산을 크게 낮춘 영리한 영화들로, 규모가 결코 영화의 성패와 직결되지 않음을 확인했다.
▲콜드 미트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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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콜드 미트'는?
때로는 명작이, 때로는 졸작이 나온단 건 다른 여느 장르와 마찬가지다. 다만 제약이 상상력이 폭발하는 계기로써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 부족한 자원으로 분투하는 이들의 수고로움을 서사와는 다른 층위에서 맛볼 수 있다는 것이 이 장르를 보는 재미다. 필연적으로 따르게 되는 고립, 또 장소며 인물의 단조로움을 극복하기 위해 영화마다 마련한 승부수가 제각각이다.
어떤 작품은 전의 성공례를 고민 없이 뒤따르기도 하지만, 다른 영화는 독자적인 방안을 마련하기도 한다. <콜드 미트>는 식당과 도로, 마침내 눈보라 속에 고립되고 마는 차 안이라는 병렬적이고 별개의 에피소드를 통하여, 또 마련된 반전적 장치를 통해 관객의 관심을 사로잡으려 한다. 그 수가 새롭다 느끼는 만큼 영화는 당신에게 매력적일 테다.
여기서 더 궁금한 이가 있다면 <콜드 미트> 포스터와 76회 칸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안은 <추락의 해부> 포스터를 비교해 보라. 내가 차마 쓰지 않은 말이 무언지 단박에 이해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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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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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보라 속 고립된 차... 13일 만에 찍은 저예산 고립 스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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