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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쿠시마 사고 15년... 원전 밀집도 세계 1위 한국이 잊고 있는 것

[김성호의 씨네만세 1289] HBO <체르노빌>

26.03.12 10:20최종업데이트26.03.12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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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난 지 꼭 15년이 됐다. 3월 10일의 동일본 대지진, 11일의 쓰나미, 그리고 12일 폭발로 이어지는 대 참극은 원자력 발전사 최악의 사고로 남았다. 직접 사망자로 인정된 건 1명뿐이라고 하지만, 강제이주명령과 환경오염, 지역 산업 등에 미친 피해는 추산하기 어려울 만큼 큰 상처를 남겼다. 지난달 최신화된 세계원자력협회의 '후쿠시마 다이치 사고' 관련 보고서는 재해로 인한 직·간접 사망자수를 2313명으로 집계했는데, 대다수는 긴급한 강제이주명령과 그 집행으로 인한 고령층의 죽음이었다. 어디 사망자뿐이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인간이 원전을 통제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확인케 했다. 사용후핵연료의 완전한 봉인을 해낸 나라는 아직 전 세계에 단 한 곳도 없다. 2025년을 목표로 달려온 핀란드도 아직 온칼로(Onkalo)를 완공해 시운전했을 뿐 정식 운영까진 이르지 못하고 있다. 한국 등 대다수 원전 운용 국가는 고준위 방폐장 설립 계획조차 갖지 못하고 있다. 발전소 부지 내에 임시 보관 시설을 확보하고 관리하는 게 일반적이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그러했듯 바로 그 임시 시설이 해결할 수 없는 대참극을 초래할 수 있다.

지금껏 발생한 세계 주요 원전 사고는 약 10여 건이다. 공식적으로 직접 사망자가 인정된 사고는 모두 7건이고, 폐로 등 사실상 복구가 불가능한 피해를 남긴 대형 사고는 3건이다. 미국 스리마일 원전 사고, 소비에트연방 체르노빌 원전 사고, 그리고 후쿠시마 원전 사고다. 한국이 원전 26개를 운용하고 있고, 앞으로도 오랜 기간 원전 운용이 불가피한 건 당면한 현실이다. 이는 한국이 원전 사고로부터 결코 안전하지 않다는 뜻이기도 하다. 원전, 그리고 에너지 수급과 전력믹스, 에너지 정책 전반의 이야기를 우리가 알아야만 하는 이유다.

체르노빌 스틸컷
체르노빌스틸컷HBO

원전 사고 다룬 훌륭한 드라마

HBO 드라마 <체르노빌>은 원전 사고를 다룬 일군의 작품 가운데 손꼽히는 명작이다. 2019년 나온 이 드라마는 1986년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 실화를 극화했다. 5부작 드라마는 실존 인물과 창조한 가상의 인물들을 통해 원전이 가져올 수 있는 재앙을, 인간들의 실패를 그려낸다. 주인공은 쿠르차토프 연구소의 부소장이었던 발레리 레가소프(자레드 해리스 분), 사고가 있고 2년 뒤 자택에서 그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장면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발레리는 왜 죽음을 택했을까. 바로 이것이 드라마 <체르노빌>을 이끄는 동력이 된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 발생부터 대응까지를 그려내는 이 드라마는 자연스레 사고의 원인을 제공한 이들, 또 사고 뒤 사실을 은폐하려는 이들 또한 비추며 원전의 실패를 소련, 나아가 인류의 실패로 확장해 나아간다.

체르노빌 원전 4호기 노심이 안전 테스트를 진행하던 중에 폭발한다. 원전 관계자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지 못하거나 무시한다. 수습 불가능한 사태가 터진 게 아니라 늘상 일어나던 고장이 또 일어났을 뿐이라고 사건을 축소하려 든다. 하필 내가 근무하는 발전소에서 내 임기에 문제가 생겨서는 안 된다는 것, 그런 감정과 감각을 우리라고 어찌 모를까.

체르노빌 스틸컷
체르노빌스틸컷HBO

외면이 답이 되지 않음을

현실은 외면한다고 가려지지 않는다. 그저 폭발과 화재사건이라 여기고 출동한 소방관들은 사태의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 맨손으로 흑연 파편을 만지고 떨어지는 재를 무방비로 맞는다. 그 심각한 피폭이 이들을 살려두지 않을 거란 걸 오로지 화면 밖 시청자만이 안다.

사태 수습을 위해 파견된 과학자 발레리가 심각성을 인지하며 이야기는 전기를 맞이한다. 고위 공직자 보리스 슈체르비나(스텔란 스카스가드 분)가 차츰 발레리에 설득되고, 사태의 심각성을 깨닫는다. 드라마는 그렇게 사건을 축소하고 은폐하려는 자와 심각한 사태를 어떻게든 수습하려는 자가 맞붙는 이야기로 화한다. 눈앞의 이익 대신 진실을 구하는 자는 그중 후자다.

<체르노빌>이 극화를 위하여 일부 인물을 실제보다 훨씬 무능하고 부도덕하게 그린 건 사실이다. 그러나 그 맞은편에서 보리스와 발레리 같은 이들의 훌륭함 또한 빛난다. 요컨대 작품은 '소련은 후지고 우리는 그렇지 않다'는 냉전 시대의 흔한 할리우드 작품과는 다르다. 소련을, 그리고 체르노빌을 넘어 비극을 초래하고 또 그 안에서 희망을 구하는 인류와 문명의 이야기에 닿는다. 요컨대 체르노빌이 아니라 스리마일이나 후쿠시마, 그리고 어쩌면 세상 모든 원전에서 있을 수 있는 이야기임을 말한다.

체르노빌 스틸컷
체르노빌스틸컷HBO

한국도 자유로울 수 없다

원전 사고를 다룬 많은 작품이 있다. 한국에선 2016년 작 <판도라>가 대표적이다.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사고와 2016년 한국 관측사상 최대 규모를 기록한 경주 지진을 겪으며 원전 사고에 대한 경각심이 고조된 상황에서 나온 영화였다. <체르노빌>과 달리 가상의 사고를 다루고 있지만 문제를 풀어가는 방식은 대동소이하다. 구조적 실패, 또 인간적 실패로써 되돌릴 수 없는 재앙이 발생하고, 그 안에서 몇몇 이들의 영웅적 활약으로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이야기다.

이런 이야기가 반복되는 건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인간과 사회의 본성 때문이다. 인간은 눈 앞의 이익에 매몰되기 쉽고, 위험을 과소평가하며, 과거를 잘 잊는다. 심지어 우리 생각보다 어리석기도 하다. 인간의 조직은 그 설계와는 달리 오작동할 때가 많다. 관료제의 문제가 모든 조직에서 수시로 되풀이된다. <체르노빌>과 <판도라>에서 그러했듯, 또 실제 스리마일과 체르노빌, 후쿠시마에서 그러했듯이.

원전은 전력을 생산하기 위한 발전설비다. 화석연료, 신재생에너지와 함께 전력생산의 주요한 축으로 기능한다. 미국의 이란 침공 뒤 호르무즈 해협 통행이 어려워진 사태에서 보듯이, 에너지 수급과 전력생산은 경제는 물론이고 국가 안보마저 뒤흔들 수 있는 주요한 문제다. 그에 대응하는 건 국가의 역할이고 우리 국가의 정체인 민주공화정은 충분한 지성과 의지를 갖춘 시민들이 제 역할을 할 때에야 실패 없이 움직인다. 짧게는 위기대응부터 에너지 수급, 나아가 전력믹스 계획과 기술개발 등 에너지 정책 전반을 관장하는 국가에도 이와 같은 시민의 관심과 지성이 중대한 역할을 미친다.

체르노빌 포스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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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전 가동국 시민의 의무

에너지 정책 결정의 어려움은 관심 있는, 그리고 조직화된 소수의 의견과 무관심한 국민 다수의 입장 차이가 다른 선진국의 경우에 비하여 지나치게 크다는 점이다. 대다수 국민들은 사용후핵연료 처분에 관해 관심이 없기에 그 내용을 잘 알지 못한다. 기후변화에 대응하여 에너지 사용량을 줄이고, 가능하면 온실가스가 적게 배출되는 에너지원을 사용해야 한다는 점에는 동의하지만, 그에 따른 불편함을 감수하거나 비싼 전기요금을 지불해야 하는 문제를 연계하여 생각하지는 않는다. -조석, <새로운 에너지 세계> 402p 중에서

에너지 정책 전문가인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전 사장의 글이다. 에너지에 대한 시민의 관심, 또 이해는 국가 정책에 있어서도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책임이 오롯이 그를 운영하는 직원들과 일본 정부에만 있지 않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이후 원전 가동을 멈추었던 일본은 다시 원전을 재가동했다. 그저 과거 수준을 복원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는다. 2040년까지 에너지 자급률을 40%까지 높이겠다는 목표 아래 원자력발전 비율을 전원믹스에서 2할까지 높이겠단다. 지진과 쓰나미에 함락됐던 일본 원전이 앞으로는 그와 같은 실패를 저지르지 않을까. 오늘의 일본은 다시 과거와 같은, 그보다 더한 길을 걷고 있다. 그 가운데 일본 시민들의 목소리는 무관심 속에 묻혀 있는 듯 보인다.

한국은 다른가. 그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에너지 자립율은 여적 10% 내외다. 대부분의 자원을 국외에서, 그중에서도 대부분을 최근 논란의 중심에 선 걸프만을 통해 들여오는 불안정한 구조를 가졌다. 동아시아 국가가 대부분 그러했듯 한국 또한 신자유주의 체제 아래 제조업 기반으로 성장하며 막대한 전력의 안정적 보급을 필수요건으로 두었다. 전력믹스에서 3할을 넘는 원자력발전은 그 중추적 역할을 담당해왔다. 좁은 국토에서 26기의 원전을 가동하고 있는 한국은 밀집도가 세계 1위, 사고가 발생할 경우 그 피해를 감당할 수 없으리란 분석이 많다. 과연 한국 시민들은 필요한 만큼 알고 있는가. 마땅한 만큼 관심을 두고 있을까. '씨네만세'를 통해 원전 사고를 다룬 작품을 꺼내어 이야기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덧붙이는 글 김성호 평론가의 브런치(https://brunch.co.kr/@goldstarsky)에도 함께 실립니다. '김성호의 씨네만세'를 검색하면 더 많은 글을 만날 수 있습니다. goldstarsky@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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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영화평론가.서평가.기자.3급항해사 / '자주 부끄럽고 가끔 행복했습니다' 저자 / 진지한 글 써봐야 알아보는 이 없으니 영화와 책 얘기나 실컷 해보련다. / 인스타 @blly_kim / GV, 강의, 기고청탁은 goldstarsky@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