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뷰티> 스틸컷
디즈니+
애쉬튼 커쳐가 연기한 CEO 바이런 포스트는 이 드라마가 비판의 날을 세우는 현대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그는 바이러스의 부작용조차 관리 가능한 상품으로 탈바꿈시킨다. 몸이 무너져가는 이들에게 고가의 관리 패키지를 제안하며 인간의 생존 본능을 영구적인 수익 모델로 만드는 그의 미소는 소름 끼치도록 현실적이다.
이 기괴한 시스템에 생생한 숨결을 불어 넣는 건 결국 배우들이다. 이들의 연기는 자칫 공상에 머물 수 있는 비현실적 설정을 우리 곁의 생생한 공포로 이식한다. 에반 피터스는 시스템의 결함을 집요하게 추적하는 수사관으로서 극의 긴장감을 유지하고, 실제 패션 아이콘인 모델 벨라 하디드가 아름다움 때문에 파멸하는 희생자로 등장하는 설정은 그 자체로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한다.
물론 <더 뷰티>에도 아쉬움은 있다. 라이언 머피 특유의 과잉된 전개와 일부 에피소드의 늘어지는 호흡은 몰입을 방해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이 작품이 끈질기게 머릿속을 맴도는 이유는 우리 시대의 가장 아픈 구석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흔히 외모보다 '내면의 진실함'이 중요하다고 믿고 싶어 한다. 넷플릭스 영화 <파반느> 속 미정이 빛났던 이유도 그녀의 겉모습이 아닌, 있는 그대로의 자아를 아껴주는 시선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뷰티>가 보여주는 현실은 그보다 훨씬 냉정하다. 이제는 내면의 가치조차 '외모의 아름다움'이라는 통행증 없이는 세상 밖으로 나오지 못한다. 매끈한 껍데기를 갖추지 못하면 알맹이를 보여줄 기회조차 얻지 못하는 시대, 우리는 이미 멈출 수도 내릴 수도 없는 인공미의 공정 속 컨베이어 벨트에 올라탄 것은 아닐까.
"불꽃이 재가 되기 직전에 가장 빛나듯, 이들은 죽기 직전에야 진정으로 빛난다"라는 <더 뷰티>의 극 중 대사는 껍데기를 위해 알맹이를 태워버리는 현대 문명에 대한 섬뜩한 예언이다. 자본이 설계한 완벽한 인형의 공정이 우리를 남김없이 삼켜버린 탓에 '나다운 생동감'을 긍정하라는 외침은 이제 매끄러운 공정의 흐름을 방해하는 불순물처럼 조용히 걸러질 뿐이다.
재가 될 줄 알면서도 화려한 타오름을 갈망하는 우리는 오늘도 다음 감염을 기다리며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속절없이 밀려간다. 지금 우리가 거울 속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 온전한 나 자신인지 아니면 타인이 정교하게 설계한 필터 뒤의 환상인지조차 잊어버린 채로 말이다.
저작권자(c) 오마이뉴스(시민기자),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탈자 신고
숨겨진 행간을 걷습니다 | 빛과 그림자 사이에서 나만의 답을 찾습니다 | 시선이 머문 자리에 색이 피어납니다 | 기사 너머의 풍성한 색깔들, 브런치에서 확인하세요 >> https://brunch.co.kr/@4indi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