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숙려캠프'의 이호선 상담가의 상담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JTBC
얼마 뒤, 생각을 바꿨습니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미안한 마음부터 전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싸웠을 때 감정적으로 쏟아냈던 말에 대한 사과였습니다. 그 이후에야 대화가 조금씩 이어졌습니다. 1년 반 가까이 이어진 침묵이 단번에 사라진 것은 아닙니다. 여전히 서먹하고 어색한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그동안 아이들에게는 "엄마 아빠가 성격이 맞지 않아 잠시 시간을 갖는 중"이라고만 설명했습니다. 부부 사이는 좋지 않았지만, 아내와 저는 각자 아이들과는 평소처럼 지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아이들에게 부모의 갈등이 그대로 전달되지 않도록 최소한의 선은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부모가 말을 섞기 시작하자 아이들이 먼저 반응했습니다. 부모의 눈치를 살피던 얼굴에 안도감이 번지는 것을 보며, 내 자존심이 가족 전체에게 얼마나 큰 불편함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이번에 아내에게 먼저 말을 꺼내면서 아이들 얘기는 일부러 하지 않았습니다. '아이들 때문이라도 화해하자'라는 말은 오히려 변명처럼 들릴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이 문제는 두 사람이 풀어야할 과제이고, 우리 관계가 풀리면 모든 게 자연스럽게 회복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부부 갈등을 이야기할 때 흔히 '성격 차이'라는 표현을 많이 사용합니다. 처음에는 뻔한 핑계처럼 들렸지만, 19년의 결혼생활을 지나며 그 말의 이면을 이해하게 됐습니다. 전문가들은 '성격 차이'라는 표현이 실제로는 소통 방식의 문제인 경우가 많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이혼숙려캠프>에 등장하는 부부들 역시 하나 같이 서로의 말을 들을 생각조차 하지 않는 모습을 보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 부부의 갈등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화가 나면 튀어나오는 제 날 선 말투가 문제였습니다. '나만 옳다'는 아집과 '상대가 먼저 숙여야 한다'는 고집이 결국 대화를 끊어버렸습니다. 부부 싸움은 흔히 '칼로 물 베기'라고 하지만, 그 칼을 너무 오래 들고 있으면 결국 서로를 다치게 한다는 것을 프로그램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기적을 이루며 사는 관계, 부부
▲많은 부부가 결혼할 때의 초심을 망각하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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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의 기간이 길었던 만큼, 회복하는 데에도 시간이 걸릴 거라고 생각합니다. 아내는 아직 서먹한 모습이지만, 저는 큰 용기를 내 먼저 다가가기로 했습니다. 이 작은 노력이 가정의 분위기를 벌써부터 환하게 밝혀주는 기분입니다. 아이들도 조금씩 돌아오기 시작한 집안의 온기를 반기는 눈치입니다.
19년을 함께 살아도 우리는 여전히 타인입니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자란 두 사람이 한 지붕 아래 사는 것은 기적에 가까운 노력을 요하는 일입니다. 1년 3개월의 공백을 메우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침묵이 길었던 만큼 이 시간도 충분히 감내할 수 있습니다.
긴 은둔을 깨고 거실로 나아가니, 늘 냉랭하던 공간에 생기가 돌기 시작했습니다. 여전히 어색한 표정의 아내에게 이런저런 말을 던지고 있습니다. 제가 툭 던진 농담에 아내가 피식 웃는 모습을 보면 기분이 좋아집니다.
TV 속 남의 집 이야기인 줄만 알았던 갈등의 해법은, 결국 자존심을 한 뼘 내려놓는 데에 있었습니다. 욕하면서 보기 시작한 <이혼숙려캠프>가 결국 제 자존심을 내려놓게 만들었습니다. 긴 침묵을 끝낸 것은 거창한 해결책이 아니라, 먼저 말을 꺼낸 작은 용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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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개월간 말 없던 부부에게 '이혼숙려캠프'가 큰일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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