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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 경기장에 울려 퍼진 "조선 승리", 그 뒤에 담긴 것들

2026 여자 아시안컵,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는 한인들의 자발적 연대

26.03.10 10:50최종업데이트26.03.10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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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 살다 보면 가끔 낯선 장면을 마주하게 된다. 이번에는 축구 경기장에서였다.

2026 여자 아시안컵이 호주에서 열리고 있는 가운데 9일(현지시간) 시드니 인근 파라마타 스타디움에서는 북한과 중국의 경기가 열렸다. 북한이 먼저 선제골을 넣었지만 중국이 연속 두 골을 넣으며 결국 2대1로 역전승을 거뒀다.

두 팀 모두 이미 8강 진출이 확정된 상태에서 치러진 경기였다. 사실상 동아시아 강호들이 조 1위를 놓고 맞붙은 승부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날 경기에서 더 인상적으로 남은 것은 결과보다 관중석의 풍경이었다.

조용했던 경기장, 그리고 교민들의 응원

약 3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경기장이지만 실제 관중은 1000여 명 수준에 불과했다고 한다. 북한의 공식 응원단도 거의 보이지 않았다.

대신 눈에 띈 것은 호주에 거주하는 한인 교민들이었다. 현지 한인 사회에서는 이번 대회를 계기로 남북을 가리지 않고 한반도 선수들을 함께 응원하자는 움직임이 자발적으로 만들어졌다고 한다.

특별한 정치적 메시지를 내세우기보다는 같은 한반도에서 온 선수들을 함께 응원해 보자는 취지였다.

실제로 현장에서는 남한과 북한을 구분하지 않고 경기를 지켜보는 교민들도 있었다. 한 교민은 "우리는 남한 사람이지만 북한도 같은 민족이니까 응원한다"고 말했다.

"조선 승리!" 외치던 서양 여성

그런데 이날 경기에서 가장 눈길을 끈 사람은 뜻밖에도 외국인 관중이었다. 관중석 한편에서 한 서양 여성 팬이 한국어로 "조선 승리!"를 외치며 북한 선수들을 응원하고 있었다.

북한 국기 색깔의 응원 소품을 들고 열정적으로 응원하는 모습이 꽤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북한 경기를 보러 온 외국인 팬이 한국어로 응원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는 장면이 아니다.

사실 일부 교민들은 한반도기를 들고 응원하고 싶어 했다고 한다. 그러나 아시아축구연맹(AFC) 규정상 정치적 상징물 반입이 제한돼 경기장 안으로 가져가기는 쉽지 않았다.

그래서 이날 경기장에서는 한반도기를 실제로 볼 수 없었다. 하지만 호주에 사는 한 교민은 이런 생각이 들었다고 한다.

"만약 그날 관중석 어딘가에서 한반도기가 조용히 펄럭이고 있었다면 어떤 느낌이었을까."

남과 북의 정치와 역사, 이념을 잠시 내려놓고 같은 민족의 선수들을 함께 응원하는 장면.

그 장면은 누군가에게는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지만,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스포츠가 전하는 작은 평화의 메시지처럼 보였을지도 모른다.

멀리 떨어진 호주에서 한반도를 바라보면, 우리가 익숙하게 느끼던 갈등도 때로는 조금 다른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이날 경기장에서 들려온 "조선 승리!"라는 낯선 응원은 단순한 승패를 넘어, 스포츠가 전할 수 있는 작은 평화의 가능성을 떠올리게 했다.

정치와 이념을 잠시 내려놓고 서로 다른 배경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의 공을 두고 마음을 모을 수 있다는 사실. 그것이 바로 축구가 지닌 힘이자 우리가 기억해야 할 의미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언젠가 한국의 어느 경기장에서 한반도기가 실제로 펄럭이며 같은 메시지를 전할 수 있기를 조용히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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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주에서 20년째 셰프로 살아가는 이민자입니다. 낯선 땅에서 꿈을 불 위에 올려놓고 하루하루를 익혀 왔습니다. 현재는 Gold Coast 6성급 호텔에서 근무하며, 세계 각국의 손님을 맞이하고 한 접시에 저의 시간과 철학을 담아냅니다. 낯선 땅에서 시작된 작은 불씨가 누군가의 기억 속 온기로 남기를 바라며, 오늘도 조용히 글을 쓰고, 불을 지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