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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 영화에는 눈길을 끄는 장면이 있다. 자신에게 가장 가혹한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마음은 가장 따뜻하게 알아본다는 것. 아마도 그것은 자신의 부족함을 가장 오래, 가장 깊이 들여다본 사람이기 때문일 것이다.
꿈 앞에서 자신없어 하는 경록에게 미정은 이런 말을 건넨다. 걸음이 느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려 주는 것. 세상의 속도가 아니라 나의 속도로 살아도 된다고. 다른 사람에게는 건넬 수 있는 말을, 자신에게는 한 번도 건네지 못한 사람. 그것이 미정이었다.
자신에게 가혹한 사람이 미정만은 아니다. 백화점 주차장에서 일하는 박요한(변요한)도 있다.
"이별이 왜 슬픈 줄 알아? 헤어졌다는 고통 때문이 아니야. 잠시나마 그 사람 때문에 살아 있음을 느꼈기 때문이야."
록 음악과 고전 멜로 영화를 좋아하는 자유로운 영혼. 그는 다른 사람의 사랑을 누구보다 잘 이해하고 말로 풀어낸다.
그런데 그가 들려준 이야기가 있다. 엄마를 잃은 아이가 장례식장에서는 울지 않다가 집에 돌아와 냉장고를 여는 순간 하염없이 울었다는 이야기. 엄마가 사다 놓은 배추, 무, 파. 그것들을 꺼내고 나니 냉장고 불빛만 남았다. 깜깜한 밤, 완벽한 어둠 속에서. 그제야 눈물이 쏟아졌다. 사랑은 거기 있었는데, 그 사랑을 건네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을 그 불빛 앞에서 처음 알았기 때문에.
생각해 보면 이 영화의 인물들은 모두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버스 정류장에서, 눈 내리는 밤거리에서, 혹은 말하지 못한 마음속에서. 미정은 올지 모를 사람을 기다렸고, 경록은 미정의 마음이 열리기를 기다렸고, 요한은 자신도 모르게 누군가 자신을 찾아오기를 기다렸다.
사랑이란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는 일이 아니라, 서로의 속도를 기다려 주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이 영화에서 가장 따뜻한 순간은 누군가 사랑한다고 말할 때가 아니라, 누군가 기다리고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는 순간이다.
미정이 경록에게 말한다. "안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경록이 답한다. "그래도 기다렸잖아."
걸음이 느린 영혼이 따라오지 못할까 봐 기다려 준다는 것. 미정이 경록에게 건넸던 말이, 이번엔 미정 자신에게 돌아온다. 더 나은 사람이 돼서가 아니었다. 누군가 그냥 와줬기 때문이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다림은 언제나 보답받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럼에도 기다리는 것. 그것이 이 영화가 말하는 사랑의 전부였다.
우리 주변에도 그런 사람들이 있다. 좋아한다고 말하고 싶은데 입이 떨어지지 않는 사람들. 사랑이 뭔지 누구보다 잘 알면서, 자신은 그 사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지 끝내 묻지 못하는 사람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조건이 아니다. 그냥, 기다렸다고 말해주는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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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우리 모두, 누군가의 기다림 덕분에 여기까지 걸어온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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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 앞에서 스스로 물러서는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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