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잊지 못할 영월의 기억, '왕사남' 보고 깜짝 놀란 이유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천만 관객'이라는 공감의 숫자를 바라보다

26.03.07 18:03최종업데이트26.03.07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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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영화 <왕과 사는 남자>가 천만 관객을 넘어섰다는 소식을 들었다. 한 편의 영화가 천만 명의 관객을 만난다는 것은 단순한 흥행 기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그만큼 많은 사람들이 그 이야기 속에서 자신을 발견했다는 뜻일 것이다.

나 역시 그 영화를 우연히 보게 되었다. 휴일 오후 도서관에서 자료를 정리하고 밀린 데이터 분석을 하다가 잠시 머리를 식히고 싶어 극장으로 향했다. 제목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은 채 가장 빠른 시간의 표를 끊어 들어갔다. 그런데 스크린에 펼쳐진 장면을 보는 순간 나는 깜짝 놀랐다. 영화의 배경이 영월 청령포였기 때문이다.

영월의 맑은 기억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
<왕과 사는 남자> 포스터쇼박스

영월은 내게 잊히지 않는 이름이다. 오래 전 경상도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가 강원도로 승진 발령을 받아 영월로 부임했다. 안동에서 죽령을 넘어 단양과 영춘을 지나 굽이굽이 산길을 따라 들어가던 그 길을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한다. 5톤 트럭에 이삿짐을 싣고 운전석 옆에는 내가, 조수석 창가에는 아이 엄마가 앉아 있었다. 그 사이에는 네 살배기 아들이 끼어 앉아 있었다. 뒤쪽 좁은 좌석에는 어머니가 몸을 기대고 있었다. 계곡을 따라 이어지는 길에서 처음 동강을 보았다. 기암절벽과 아름드리 소나무 사이로 흐르는 강물은 너무 맑아 차마 그 속을 들여다보기 어려울 정도였다.

청령포는 물을 건너야만 갈 수 있는 곳이다. 어린 나이에 왕위에서 쫓겨난 단종이 유배되었던 장소다. 권력을 잃은 왕,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리. 그래서인지 우리는 그를 떠올릴 때 늘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된다. 권력의 중심에 있었지만 결국 가장 외로운 자리에 서 있었던 왕. 청령포의 강물과 절벽은 그 비통한 시간을 지금도 말없이 증언하고 있다.

나는 주말이면 가끔 단종의 길을 따라 걸었다. 청령포와 장릉, 관풍헌, 자규루를 찾았다. 단종의 시에 등장하는 두견새의 울음을 떠올리며 어린 왕의 마음을 짐작해 보기도 했다. 청령포에 서 있는 관음송은 600년의 세월을 지켜온 소나무다. '세상의 소리를 본다'는 뜻의 이름처럼 그 나무는 어린 왕의 외로움을 묵묵히 지켜보았을 것이다.

영월에서 보낸 2년은 내 인생에서 가장 맑은 시간이기도 했다. 동강과 서강의 투명한 물줄기는 늘 나의 마음을 달래 주었다. 첩첩한 태백산맥의 준령을 바라보며 나는 때로 단종의 외로움을 생각했고, 때로는 그의 시신을 거두어 장례를 치렀다는 충신 엄흥도의 마음을 떠올리기도 했다.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또 하나의 영화를 떠올렸다. 영월을 배경으로 한 영화 <라디오 스타>였다. 그 영화의 무대가 되었던 이전의 KBS 영월방송국은 지금 라디오스타 박물관이 자리한 곳이다. 한때 잘나가던 가수와 매니저, 그리고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가 작은 읍내 영월에서 펼쳐졌던 영화였다. 어딘가 어설프지만 정이 가는 군상들의 이야기였다.

그 영화를 보고 나오던 날의 기억이 지금도 아련하게 남아 있다. 잊힌 사람들의 이야기, 권력의 중심이 아닌 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영월이라는 공간은 그런 이야기들을 자연스럽게 품어내는 곳인지도 모른다. 그래서일까. 영화 속에서 유해진이 연기한 엄흥도의 모습은 낯설지 않았다. 그는 왕이 아니다. 권력을 가진 인물도 아니다. 왕의 곁에서 살아가는 평범한 사람이다. 현실 속에서 갈등하고 망설이며 살아가는 인간이다. 그래서 더 진실하게 느껴졌다.

영화 속에서 본 우리의 모습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
영화 <왕과 사는 남자> 스틸컷쇼박스

어쩌면 우리는 이 영화 속에서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본 것은 아닐까. 우리는 오랫동안 경쟁과 속도의 사회를 살아왔다. 남보다 더 잘 살아야 하고 더 앞서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달려왔다. 그 과정에서 권력에 대한 감수성, 정의에 대한 감수성, 그리고 타인을 향한 측은지심이 조금씩 무뎌진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래서 그런지 왕에게서보다 어리숙한 엄흥도에게 더 큰 공감을 느끼는 것 같다. 거대한 권력의 이야기보다 그 곁에서 살아가는 사람의 고민과 선택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오기 때문이다. 엄흥도는 불의를 보면서도 쉽게 행동하지 못하는 현실 속 인간의 모습에 가깝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 인간다운 선택을 고민한다. 그 모습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모습을 보았는지도 모른다.

천만 관객이라는 기록은 어쩌면 그런 공감의 숫자일 것이다. 수많은 사람이 이 영화 속에서 권력의 화려함보다 인간의 양심을 떠올렸기 때문이다. 왕이 중심이 되는 나라가 아니라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주인이 되는 세상. 권력의 크기보다 사람의 마음이 더 큰 힘이 되는 사회. 우리가 앞으로 만들어 가야 할 세상은 어쩌면 그런 모습일지도 모른다. 영화 속 엄흥도의 고민과 선택이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작은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며 살아갈 것인가. 동강의 맑은 물처럼, 그 질문이 앞으로도 오래 오래 우리 사회에 끊임없이 흐르기를 바란다.
엄흥도 영월 왕과사는남자 단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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