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파반느> 스틸컷
넷플릭스
<파반느>는 풍성하다. 여러 레퍼런스가 상존한다.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시청적각인 즐거움으로 가득하다. 글줄이, 소설이 줄 수 없는 영상미가, 편집의 리듬과 호흡이, 음악의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이종필 감독이 하고 싶은 것을 다 해 보리라 작정한 듯 순수예술과 대중예술의 인용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박민규 작가가 소설 표지로 인용했던 스페인 화가 디에고 벨라스케스 17세기 작품 <시녀들>은 그림과 실재의 경계를 허무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이종필 감독은 영화 속 '미술관 옆 클래식' 전시 포스터로 <시녀들>을 가져와 외모와 미추의 경계를 뛰어넘는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직접적인 은유로 활용한다.
<시녀들>에 이어 사진에 시간개념을 도입했다는 사진작가 듀안 마이클의 'this photograph is my proof'란 작품도 직접 등장한다. 해당 사진 속 남녀는 시간이 흐르며 점차 변해가는 애정을 상징하는데, 경록과 미정이 만나고 떠나고 또 다시 만날 거라는 사랑과 상상력에 대한 함축으로 읽어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이런 레퍼런스는 또 있다. <파반느>는 <아비정전>을 필두로 왕가위 감독의 유명한 명장면 속 미장센들을 오마주한다. 요한은 "결국 사랑은 상상하는 일이다. 언젠가는 다시 만나기를 꿈꾸며 살아가는 그 무엇이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상상력이 사랑을 망치기도, 헤어짐을 불러오기도 한다. 대학에 입학한 경록의 생활을 마주한 미정이 딱 그랬다. 버림받기 싫어 이별을 택하는 슬픈 연애담의 대가가 바로 왕가위 감독 아니던가.
<파반느>의 정서를 가장 크게 좌우하는 건 클래식 음악들이다. 모리스 라벨의 피아노곡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과 발퇴펠의 '스케이터스 왈츠'를 위시해 엔딩 크레디트에서 재확인할 수 있는 다수의 클래식 넘버들이 미정과 경록의 아련하고도 순수한 사랑이 청각적, 정서적 BGM이 되어준다. 예술로서의 자의식 운운한 건 다 이유가 있어서다.
아이슬란드의 오로라도, 사랑하는 순간에 하늘에 펼쳐지는 무지개도, 운명적인 순간에 내리는 폭설 모두 경록과 미정의 순애보와 함께하는 영화적인 동반자들이다. 무엇보다 말을 타고 달리다 잠시 말에서 내리는 인디언들의 배려, 즉 걸음이 느린 영혼을 기다리는 배려야말로 <파반느>가 북돋우는 '사랑의 상상력'의 요체일 것이다.
일본과 대만의 청춘멜로가 극장가를 지배하는 시대다. 그 리메이크 버전이 또 젊은 관객들을 극장으로 불러 모으는 시절이다. 바로 이때 넷플릭스라는 플랫폼을 통해 클래식을 경유해 어쩌면 멀게는 8090과 2000년대 정서에 가까운 순애보를 설파하는 <파반느>는 분명 스크린을 통해 다시 보고프게 만드는, 중층적인 순백의 멜로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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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칼럼니스트 및 시나리오 작가, '서울 4.3 영화제' 총괄기획. 전 FLIM2.0, 오마이뉴스 취재기자, 기고 및 작업 의뢰는 woodyh@hanmail.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