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왕과 사는 남자> 장면
㈜쇼박스
엄흥도(유해진)는 단종의 절망을 외면하지 않는다. 그는 처음엔 마을 사람들의 입에 풀칠을 시키기 위해 단종을 받아들였지만, 시간이 흐르며 단종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된다. 압도적인 '빌런' 한명회의 그림자 아래, 엄흥도 자신도 흔들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아들이 곤장을 맞는 상황에서는 흔들리고 흔들렸을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는 부단히 단종에게 말을 걸고, 밥상을 차리고, 사소한 일상들을 전한다.
그 위로는 말로만 이루어진 것이 아니다. 좋은 밥상을 올리는 일, 마을의 소소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일, 가만히 옆에 있어주는 일을 묵묵히 해나간다. 그런 사소한 위로의 연속 속에서 단종의 눈빛은 조금씩 살아난다. 왕조의 중심에서 쫓겨난 존재가 다시 사람들의 눈을 바라보는 순간, 위로는 이미 단순한 감정이 아니라 삶을 붙드는 힘이 된다.
그리고 단종이 마지막 길로 가는 순간, 그 곁에는 엄흥도가 있다. 엄흥도는 단종의 마음을 지키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단종도 마을 사람들과 엄흥도를 지키려 애썼다. 그들의 관계는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서로의 마음을 채워 넣은 따뜻함의 증거다. 단종의 마지막이 완전히 편안했을 리는 없겠지만, 적어도 그는 혼자가 아니었다. 선택할 수 없는 삶 앞에서도, 함께 있어준 이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작은 평온이었을 것이다. 영화는 그렇게 단종과 엄흥도의 마지막을 담담하게 보여준다.
역사와 상상으로 만들어낸 따뜻한 이야기
<왕과 사는 남자>는 역사적 사실 속에서 따뜻한 포인트를 찾아내고 상상력을 덧붙여 생명력을 불어넣은 작품이다. 단종이라는 역사적 인물을 단지 비극적으로 그리지 않고, 그의 내면을 들여다보게 하는 힘이 있다. 그리고 그 힘은 영화를 보고 난 뒤 자연스럽게 과거의 역사적 사실을 찾아보게 만든다. 그것 자체가 이 영화가 우리에게 던지는 작은 선물이다.
장항준 감독은 이번 작품에서 의미와 재미의 적절한 균형을 잡았다. 이 영화가 그의 최대 흥행작이 될 가능성은 충분하다. 작품성이 뛰어난 작품은 아닐 수도 있지만, 영화를 보는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일 수 있는 영화인 건 분명하다. 관객에게 캐릭터가 느끼는 감정을 전달하고, 그 감정 위에 생각할 거리도 던져주는 구성이 인상적이다.
배우들의 연기는 이 영화에서 가장 훌륭한 포인트다. 유해진은 엄흥도 역할을 맡아 그의 모든 연기 스펙트럼을 보여준다. 코믹한 면모부터 따뜻한 위로, 절망 앞에서 흔들리는 슬픔까지, 유해진이라는 배우가 이 영화를 리드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박지훈은 여린 소년의 눈빛과 왕의 위엄을 동시에 오가는 연기를 보여준다. 아마도 앞으로도 계속 좋은 연기를 기대할 수 있는 젊은 배우일 것 같다. 유지태는 한명회라는 인물의 위압감을 화면 가득 채우며, 관객에게 긴장감을 부여한다. 세 배우의 조합은 이 영화가 가진 감정의 깊이를 단단하게 받쳐주었다.
이 영화는 단지 설 명절에 가족과 함께 보기 좋은 작품일 뿐만 아니라, 불안과 절망, 따뜻함과 위로에 대해 생각하게 하는 심리적 울림을 가진 드라마다. 과거의 역사 속 인물을 통해 지금 우리의 마음을 들여다보게 되고, 그 과정 속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조금 더 이해하게 된다. <왕과 사는 남자>는 관객 모두에게 작은 치유를 전할 영화다.이번 설 명절에 가족과 함께 관람을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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