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추석에 찾은 경기도 파주의 글램핑장에 차린 식탁. (스피커와 커피는 AI로 합성)
장한이
아이들이 어릴 적부터 약속한 '식사 시간 스마트폰 보지 않기'는 글램핑장에서도 유효합니다. 스마트폰의 작은 화면에 갇혀 있던 시선이 고기로 향하고, 나머지 공간을 음악과 대화가 채워줍니다.
이제 고등학생이 되는 아들과 저 사이에는 '빅뱅'이라는 확실한 교집합이 있습니다. 아들의 플레이리스트에서 '뱅뱅뱅'이나 '거짓말'이 흘러나오면 부자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리듬을 탑니다. 고3 딸아이와는 8090년대 감성으로 하나가 됩니다. 이승환의 '화려하지 않은 고백'부터 god의 '촛불하나', 젝스키스의 '커플', 박명수의 '바다의 왕자' 같은 노래가 딸아이 플레이리스트에 담겨 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아들과 딸의 취향이 전혀 달라 여행을 떠나는 길에는 아들의 플레이리스트를 듣고 돌아올 때는 딸의 노래를 듣는 식으로 조율했습니다. 아들은 쇼미더머니 예선에 참가할 정도로 랩을 좋아해 플레이리스트에 랩 음악만 가득했습니다.
"니가 이런 노래도 들어?"
딸아이가 최근 동생 플레이리스트를 보고 한 말입니다. 아들이 고등학생이 되면서 취향이 조금씩 변했습니다. 멜로망스의 '사랑의 언어', 데이식스의 'HAPPY', 정승환의 '너였다면', 10cm의 '부동의 첫사랑' 등 아빠와 누나와 겹치는 노래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점점 가족 간의 취향 간극이 줄어들고 있었습니다.
비 오는 텐트에서 다시 만난 노래들
지난 추석에 찾았던 글램핑장 텐트 안에는 스마트 TV가 있었습니다. 비가 내려 텐트 안에서 고기를 먹으며 유튜브를 보게 됐고, 자연스럽게 음악 관련 영상으로 이어졌습니다. 텐트를 두드리는 빗소리를 배경 삼아 유튜브로 들었던 '서울가요제'의 노래들은 백미였습니다.
최정훈이 부른 '미소를 띄우며 나를 보낸 그 모습처럼'(이은하), 딘딘이 부른 '비처럼 음악처럼'(김현식), 정성화의 '회상'(김성호), 최유리가 부른 '내게 남은 사랑을 드릴게요'(장혜리) 등 학창 시절 즐겨 듣던 노래가 대거 등장해 추억에 잠기기도 했습니다.
그중에서 김숙과 송은이가 부른 '그대와의 노래'는 처음 듣는 곡이었는데, 유난히 마음에 깊이 남았습니다. 찾아보니 이 노래는 뚜라미(고은희,이정란)가 1984년 대학가요제에 출전하며 불렀던 곡이었습니다. 꾸밈없는 가사와 한 번에 귀에 들어오는 멜로디, 그리고 가창력이 뛰어난 두 사람의 목소리가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화음이 인상적이었습니다. 과장되지 않은 순수한 감정 덕분에 오히려 더 오래 여운이 남았고, 원곡과 김숙, 송은이 버전 두 곡 모두를 내려받아 지금까지도 자주 듣고 있습니다.
"아빠, 좋은 노래 발견했어요!"
딸아이는 종종 이렇게 말하며 자신이 좋아하는 노래를 제 플레이리스트에 담아줍니다. 최근에는 크라잉넛과 슈퍼주니어 노래가 추가됐습니다. 이번 설에는 글램핑장에서 가족 모두의 교집합이 된 딸의 플레이리스트를 가장 많이 듣게 될 것 같습니다.
제사와 차례가 서서히 사라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우리 가족에게는 많은 사람이 모이는 명절보다, 단출하게 고기를 굽고 음악을 틀고 스마트폰에서 잠시 해방되는 시간이 더 소중해졌습니다.
누군가에게는 이러한 명절 풍경이 낯설고 불편해 보일지 모릅니다. 하지만 장남이자 아빠로서 제가 내린 이 결정이 아이들에게 즐거운 기억을 선물해주고 있다고 믿습니다. 형식보다 중요한 건 마음이고, 과거의 의무보다 소중한 건 지금의 삶을 대하는 태도라는 사실을 명절 글램핑장에서 확인하는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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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의 모든 경험을 소중히 여기는 직장인, 아이들과 함께 성장하는 아빠, 매 순간을 글로 즐기는 기록자. 글 속에 나를 담아 내면을 가꾸는 어쩌다 어른.